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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Apr 27. 2022

독일에서 셀프 이사는 처음이라서요

새 놀이엔 새로운 행운이! 


1년간의 주말부부 생활을 청산하고 재작년 여름에 네덜란드 근처 슈토프로 이사했어요. 남편이 새롭게 다니게 된 직장에서 6개월의 수습 기간probezeit을 거쳐 정규직이 됐거든요. 독일 회사는 최소 3개월에서 6개월의 수습 기간을 통해 회사와 직원의 합을 맞춰요. 경력직도 예외 없이 그 기간을 무사히 통과해야 정식 계약서에 사인을 해요. 그제서야 남편도 한시름 놓고 떨어져 살던 가족이 합체할 수 있겠다며 남매의 새 학년이 시작하기 전, 여름 방학에 이사하려고 집을 본격적으로 알아봤어요.


남편이 1년간 묵었던 에어비앤비 주인도 슈토프에 집이 없다고 걱정하셨어요. 선택할 수 있는 집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어쩌다 나온 집 중 마음에 드는 걸 고르는 일도 쉽지 않았어요. 4인 가족에게 적당하면서 위치도 회사나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의 집Einfammilienhaus을 몇 달 만에 e-bay에서 발견했어요. 


독일은 집주인이 인터뷰를 통해 원하는 세입자를 선택해요. 세입자를 한번 들이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함부로 내보낼 수 없고 월세도 올릴 수 없게 법이 세입자를 보호하니 최대한 신중해요. 회사 계약서와 월급 명세서(월세 지불 능력 확인용) 그리고 신용 등급 서류까지 꼼꼼하게 살펴요. 정확히 몇 명이나 인터뷰를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높은 경쟁률을 뚫고 오케이 사인을 받기까지 얼마나 조마조마했게요. 


이사 업체 도움 없이 짐을 직접 싸고 풀고 옮기는 모든 과정 그리고 남매의 학교를 알아보고 새로운 동네에 적응할 일까지 걱정하자면 끝이 없어요. 해외 이사에 혀를 내두르면서 이사는 절대 못하겠노라고 다짐했는데 4년간 이사 없이 살며, 또 1년 동안의 주말부부 생활에 망각했나 봐요. 해외 이사도 해봤는데, 까짓것 아무 것도 아닐 거라고 호기롭게 의지력을 다졌어요. 




처음 살았던 슈바니비데는 운 좋게 가전, 가구부터 소소한 부엌살림까지 모두 갖춰져 있었어요. 알고 보니 가구가 갖춰진 집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었어요. 대신 가구 유무는 월세에도 영향을 미쳐요. 새로 이사할 곳은 인덕션, 냉장고, 오븐과 식기세척기가 포함된 부엌을 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전 세입자로부터 인수받았어요. 보통은 부엌도 떼어가는데 새로 들어올 세입자가 인수할 경우 서로 떼고 붙이는 공사를 줄일 수 있으니 피차 좋은 일 같아요. 3년 사용한 부엌을 1200유로(150만 원)에 인수했으니 가격은 적당하고 상태는 양호했어요.


전에 살던 집주인 피터는 우리에게 필요한 가구나 물품은 가져가도 좋다고 했어요. 마리타가 돌아가신 후 혼자 살던 피터는 살던 집을 처분하고 작은 집으로 옮긴다고 했거든요. 이삿짐을 옮기는 일도 피터의 도움을 받았는데 몽땅 다 실을 수는 없으니 꼭 필요한 것들만 엄선했어요. 독일은 이사 업체의 도움으로 이사하는 경우 비용이 많이 들어요. 주변에 서로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여럿이고 이삿짐도 각자 알아서 옮기는 분위기라 애당초 알아볼 생각도 없었지만요. 화물 차량(대형 트럭LKW 면허증은 필요)을 대여해서 직접 짐을 옮기는 경우도 다반사고요. 


이삿짐 박스(왼쪽)와 벼룩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득템함 가구들(오른쪽) 


이사하기 두 달 전, 최대 30kg까지 가능한 종이 박스 40개를 마트 Aldi에서 샀는데 테이프 없이 조립해서 쓸 수 있는 편리한 박스에요. 깨끗하게 쓰고 e-bay에 다시 저렴하게 팔았어요. 짐을 다 꺼내기 전에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됐지만 결과적으로 얼추 맞았어요. 포장 이사에 익숙해서 집기류를 모두 직접 포장하고 옮기고 정리하기까지 하는 건 처음이라 겁도 나고 엄두가 안 났지만 해보니 이것도 가능하더라고요. 


집 고치는 일을 하는 피터가 일할 때 쓰는 차와 동료의 차까지 총 두 대 정도 가용할 수 있다길래 그 한도 내에서 가구를 골랐죠. 덩치가 큰 식탁이나 소파는 일찌감치 포기, 분해가 가능한 침대만 세 개를 챙겼어요. 지인 통해 차량만 해결해도 큰 행운이에요. 미리미리 준비해야 마음이 놓이는 나와 달리 남편은 이틀이면 충분하다고 해서 갈등이 잦았어요. 집중적으로 일을 가장 많이 한 건 이사 전 일주일이지만요. 남편의 여름휴가는 이삿짐을 싸고 새로운 집에 짐을 풀고 가구를 조립하는 데 몽땅 썼어요.


이사를 직접 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몇 달 전부터 혼자만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없었는데 일감 목록 리스트를 짜고 매일 조금씩 버릴 건 버리면서 짐을 싸다 보니 이사하는 날은 당도했고 또 지나갔어요. 다시는 독일에서 셀프 이사는 못하겠다고 힘들어 죽겠다는 엄마, 아빠에게 딸은 "아빠랑 같이 살려면 이 정도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냐"라는 그럴듯한 말도 했고요. 그렇죠. 가족이 함께 살기 위해서 우린 어쩔 수 없이 힘든 이사를 선택한 거예요.  



그 해 여름의 테라스 카페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에 인터뷰를 거뜬히 통과하고 이사까지 무사히 마친 게 감사해요. 친구는 이사 간다는 제게 행운을 빈다며 "Neues Spiel, neues Glück(새로운 놀이엔 새로운 행운이!)"이라는 말을  해줬어요. 새로운 놀이를 할 땐 다른 방식에 따른 새로운 운이 필요한 것처럼, 새로 이사한 곳에서 많은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는 의미예요. 하긴 의외의 조커를 발견하고 환한 미소를 짓게 될지도 모르죠. 오누이가 학교에서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 즐겁고, 친절한 이웃을 만나면 좋겠어요. 네 식구 살기엔 충분히 넓고 보면 볼수록 마음에 쏙 드는 집에서 또 다른 행운과 함께 추억이 차곡차곡 쌓이길요!



*독일에서 이사할 때 챙길 일     

-이사하기 최소 3개월 전에는 주인에게 알리기     

-수도, 전기(마지막 날 검침 숫자 적기), 쓰레기 회사에 전화해서 이사 날짜 알리고 해지하기     

-우체국에 새로운 집 주소 알리고 우편물 제대로 받기 

-이사하자마자 시청에 전입 신고하기     

-인터넷 신청(최소 한 달은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겁먹었는데 2주 만에 설치)     

-아이들 전학은 학교만 정하고 전 학교에 이사할 곳의 집 주소와 학교명 전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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