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
적갈색 눈사람
내가 떨어뜨린 것은 눈물이 아니다
우연히 선물 받고 남 주기 싫었던
만년필도 아니다
싸구려 적갈색 포도주다
손등에 퍼지는 찬 기운의 포도주
여름을 향하는 기차에 눈이 내린다
서러운 피자 한 조각에
고독 한 모금을 꿀꺽 삼킨다
눈을 슬며시 떠 보면
선홍빛으로 고인 못 건너편 유리 동굴에
고독으로 똘똘 뭉쳐진
눈사람이 보인다
동굴이어서 숨이 붙어 있는 존재로
생각의 그물에 갇힌 채
포도 향기에 취해 비틀대다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펴 놓인 노트에
두 방울의 포도주로 탈출한 빠삐용,
고독은 적갈색 눈사람이 된다
고독은 이제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