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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져니 Mar 05. 2018

돌아갈 곳이 없는 당신에게 <리틀 포레스트(2018)>

돌아갈 곳을 묻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이지만

이 도시는 좀처럼 고향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Pixabay, Seoul


태어나 자란 곳, 서울


누구를 위한 도시인지 통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건

소소한 행복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도시는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

서울은 그런 도시다.


그렇다면 서울은 누구를 위한 도시일까

소소한-이 아닌, 거대한-행복을 꿈꾸는 이들?

행복을 꿈꾸지 않는 이들?


<리틀 포레스트 (2018,임순례) >


얼마전부터 서울에는 "서울을 가지세요"라는 말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서울은 너무 오래 전

회색빛 건물들과 자동차 도로가 가져버렸다.

최저시급과 미세먼지가 가져버렸다.


돈을 쓰지 않고는 맘편히 앉아있을 곳마저 구하기 어려운 이 도시를

나는 차마 고향이라 부를 수 없다.


고향이라 부른다면 그것은 아마

오후 2시의 공원 광장

오전 11시반 놀이터의 재잘거림

저녁 9시의 떡볶이와 오뎅 국물

한겨울의 은신처인 붕어빵과 군고구마

이런 아이들이 가져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치킨집', 'KF94 마스크', '화장품 가게', '야근' 따위가 가져가버릴 것이다.


@Pixabay, seoul


그런 나에게 영화가 묻는다.

당신의 고향은 어디인가요?

당신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나요?




서울이라는 허기


어쩌면 서울은 어디선가 늘 고향의 얼굴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 모습들을 해가 떠있는 시간 동안 오롯이 느낄 수 없는 것 뿐. 하지만 이 얕은 희망이 우리에게 위로가 될 리 없다. '여유로운' 서울을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자가 이 도시에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우리에겐 서울의 여유가 없다.

마치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이라도 키우는 마냥 우리의 서울은 늘 시간이 부족하다.

그렇게 서울 속 우리의 시간은 늘 어디론가, 누군가에게 새어 나간다.


그리고 시간이 없으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문제가 있다: 우리는 늘 배가 고프다.

우리는 늘 배가 고파야만 한다. '허기'라는 단어는 서울을 지나치게 잘 표현해준다.


<리틀 포레스트 (2018,임순례) >


음식과 시간은 그렇게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게 많은 음식점과 배달앱이 있음에도 우리의 허기는 좀처럼 줄어들 생각이 없다.


밥을 먹을 시간이 없는,

다시 말해 저렴하고 건강한 재료를 직접 사 요리를 해 먹을 시간이 없는 우리에게

서울은 지갑에 맞는 음식을 내놓는다.


하지만 어떠한 지갑을 만나건 서울의 허기는 만족하는 법을 모른다. 그렇게 서울은 먹을 것이 넘쳐나는 배고픈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리틀 포레스트 (2018,임순례) >
"배가 고파서요."


왜 다시 돌아왔냐는 물음에 혜원(김태리)은 이렇게 답한다.

"배가 고파서요."


너무나도 맥락없는 이 대사에

관객들 중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이것이 모두의 머릿속에 깊이 남는다는 것은

우리의 서울이 얼마나 허기진 도시인가를 보여준다.


리틀 포레스트 - 당신의 작은 숲을 위하여


허기진 우리에게 영화는 줄곧 돌아가고 싶은 곳을 묻는다.


우리에게 '앞으로 떠나가고 싶은' 이란 표현은 익숙해도

'돌아가고 싶은' 곳은 무척 낯설다.

그것을 '고향'이라는 단어로 치환시키는 것은 더더욱 현대인들에게 공평할리 없다.


<리틀 포레스트 (2018,임순례) >


때문에 영화는 그 불공평함을 다른 단어로 바꾸어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에게는 돌아가고 싶은 작은 숲이 있나요?


'배고프지 않은 곳'

내가 먹을 음식을 직접 만들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

그럴 시간이 있는 곳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


기다리고 싶은 사람이 있는 곳

기다리고 싶은 내 모습이 있는 곳

돌아가고 싶은 곳

돌아올 수 있는 곳


이러한 곳이 당신에게는 존재하나요?


영화는 우리에게 혹 이러한 곳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 위로한다.


이러한 곳이 존재하는가 묻는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 당신에게 서글픔을 주기 위해서가 아닌, 그런 곳을 함께 찾아보자는 의미에서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화는 우리 스스로 돌아갈 곳을 만드는 방법들을 알려주고 있다.

없어도 괜찮아요, 앞으로 만들어가봐요.


부디 당신이 당신만의 작은 숲을 찾길 바라며




2018.02.20

돌아갈 곳이 없는 당신에게

돌아갈 곳을 묻다


다큐져니

[옆동네산책] #02

영화 <Little Forest (2018, 임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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