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여운_당신을 그리는 기다림

요하네스 베르메르 Johannes Vermeer

by 예가체프

한 여인이 창가에 서서 편지를 읽고 있군요.

투명한 햇살이 열린 창문을 지나 여인의 얼굴을 부드럽게 비칩니다.

창문 너머에서 불어온 바람이 커튼을 흔들고, 탁자 위엔 과일이 담긴 그릇이 조용히 놓여 있습니다.

겉으로는 평온한 오후의 한 장면이지만, 그녀의 시선과 표정에는 단순하지 않은 감정이 스며 있는 것 같습니다.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 1657–1659.


그림 속 편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그림을 보며, 잠시 여인의 마음을 상상을 해봅니다.

그녀의 옆모습이 밝지 않아서인지, 편지의 마지막쯤을 읽어가는 여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듯 느껴집니다.

편지에는 이별을 고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걸까요?

어쩌면 멀리 떠난 연인의 진심이 숨어 있는 이별의 편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둘은 신분의 차이로 함께할 수 없었지만, 서로를 잊을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의 편지가 그녀에게 도착합니다.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시간은 우리를 멀리에 두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그날 창가에 머물러 있습니다.”




베르메르의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은 오랫동안 ‘비밀스러운 편지’의 그림으로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 덧칠된 벽면에서 숨겨져 있던 큐피드의 초상화가 발견됩니다.

사랑의 신 큐피드가 활을 들고 서 있었던 것이죠.

수백 년 동안 가려졌던 큐피드가 복원되었다는 건 미술사적 사건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랑의 복원,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가 완성된 것이었죠.

베르메르는 사랑이 불가능했던 시대에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희망을 화폭에 새겼습니다.

그 둘의 사랑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며, ‘언젠가 다시 이어질 운명’임을 믿었기에, 작가는 큐피드를 그림에 남겨둔 게 아닐까 합니다.

(좌) 큐피드의 모습이 복원된 모습, (우) 복원 전 원본 그림.


이처럼 베르메르의 그림에서는 ‘사랑의 여운’이 느껴집니다.

이별 후에도 남은 마음, 그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시간의 아름다움...


이제 여인은 편지에 답장을 적어 내려갑니다.

“기다림의 끝에 당신을 만날 수 없어도 나는 여전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남아 있어요. 우리의 사랑이 끝나있다 해도...”




기다림의 위로 message.

그림 속 여인을 바라보고 있으면, 누군가를 기다리던 시간이 떠오릅니다.

소식이 끊긴 사람, 잊으려 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켠에 남은 사람.

그리움은 상대를 그리며 고요히 기억하는 의식입니다.

그리고 기다림은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을 여전히 그 자리에 두는 용기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아주 먼 훗날이라도 그의 발걸음이 이 빛 아래 다시 멈추기를.

그때, 서로의 얼굴에 묻은 세월을 바라보며 미소 짓기를.

기다림은 이별 후를 위로하는, 기댈 수 있는 소망을 남기는 치료약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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