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 René Magritte, <The Lovers>
하얀 천을 두른 채 얼굴을 맞댄 두 사람이 정면을 응시합니다.
어디를 보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사람들인지 전혀 알 수 없을 때, 눈에 들어온 그림의 제목은 <The LoversⅠ>.
옷차림을 봐서는 함께 휴양지에서 파티라도 갈 것처럼 잘 차려입은 것 같은데, 왜 얼굴에 흰 천을 두르고 있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급기야 <The LoversⅡ>에서 이들은 서로에게 키스를 합니다.
죽음을 앞둔 모습 같기도 하고 유령 같기도 한 상태로 사랑을 표현하는 연인의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합니다.
<The Lovers> 시리즈를 그린 르네 마그리트(1898-1967)는 현실을 넘어선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한 초현실주의 대표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검은 중절모에 레인코트를 입은 신사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는 <골콩드> 또는 <겨울비>라는 그림은 (1953) 어디선가 한 번쯤 접했을 정도로 유명하죠.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 만큼 독특한 그림을 그려내는 그라면, 연인의 모습 역시 평범할 리 없겠지만, 초현실주의자답게 예상을 뛰어넘는 그림은 꽤 충격적입니다.
하얀 천 그 너머, 이들은 어떤 표정일지, 작가는 지금 눈에 보이는 것 그 이면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The lovers> 를 해석할 때, 사람들은 마그리트가 어린 시절 겪은 어머니에 관한 사건을 종종 언급합니다.
마그리트의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다가, 그가 14살 때 강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가 발견됐을 때, 얼굴 위로 흰 천이 덮여져 있었고, 마그리트는 그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얼굴이 가려진 사람’, ‘보이지 않는 표정’, ‘감춰진 정체성’을 반복적으로 그렸습니다.
입맞춤하는 연인의 얼굴이 천으로 감싸져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일까요?
<The Lovers>는 키스하는 연인의 얼굴을 하얀 천으로 덮어 소통의 불가능, 가까움 속의 거리, 사랑의 본질적 ‘가려짐’을 보여줍니다.
가까이 있지만 마음의 거리를 느끼는 인간적 외로움에 관해 마그리트는 묻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정말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The Lovers I>, <The Lovers II>와는 달리, 이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입니다.
얼굴을 감싸던 천을 벗고 얼굴을 드러낸 두 연인의 모습은 한껏 다정해보입니다.
(4개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동일인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그림들 역시 평범하지 않습니다.
몸 전체가 드러난 여성과는 다르게 남성의 존재는 허공에 뜬 얼굴뿐이죠.
<The Lovers III> 속 남성은 여성보다 더 부드럽고 진실해보이고 여성은 남성을 다소 경계하는 듯 보입니다.
그럼에도 남성은 허공에 얼굴만 드러낸 비현실적인 모습이죠.
<The Lovers IV>에서 두 연인은 이제 더 깊이 사랑에 빠진 것 같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연인과 키스하는 여인은 온마음을 다해 그를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의 존재는 얼굴뿐이고, 몸 전체가 밝게 드러난 여성과 대조적으로 얼굴마저 더 작고 어둡고 굳은 표정으로 다가옵니다.
사랑이라 여겼던 따뜻함, 편안함, 부드러움, 행복감 같은 그 모든 것들이 하얀 천에 덮여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 그 차가운 단절을 우리는 어떻게 견뎌야할까요?
나를 숨기고 너를 속이면서, 함께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는 가식의 시간은, 서로에게 얼마나 잔인하고 비겁한 것일까요?
더욱이, 상대를 향한 사랑이 변치 않은 상황에서, 그 상대의 단절된 마음을 알게 될 때, 얼굴을 덮은 그 홑겹의 천은 얼음장만큼이나 얼마나 차고 시릴까요?
사랑은 종종 거짓과 가식, 날카로운 단절을 쏟아내고, 둘 중 하나를 바보로 만드는 배신을 토해내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차갑게 단절된 채 남기도 하고, 사랑에는 온도의 차이가 있으며, 때론 일방향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때가 한 번쯤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슬프고 착잡하더라도 말이죠.
* 표지 그림 : <빛의 제국>, 르네 마그리트, 1954. 브뤼셀왕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