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를 똥으로 착각한 여자

by 프롬


3년 전, 질 근처에 작은 혹이 생겨서 수술을 했다. 의사 선생님은 “꽤 오래된 혹인데. 이렇게 될 때까지 전혀 몰랐어요?”라고 물었다. 모르는 게 당연했다. 내 몸이지만 내 성기에 대해 생각한 적도, 언급한 적도, 들여다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 혹을 발견한 것도 내가 아닌 애인이었다. 몇 년간 질염을 방치했다는 사실도 그날 처음 알았다. 이목구비, 손, 팔다리, 가슴, 뱃살처럼 밖으로 드러나는 부위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관심을 쏟았지만, 성기에 관해서는 초등학생만도 못한 상식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무지의 역사는 오래됐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는데, 아랫배가 싸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속옷도 축축한 것 같았다. 뭔가 줄줄 새는 느낌까지 들어서, 빠른 걸음으로 집에 왔다. 화장실에서 교복 치마를 벗고 속옷을 확인했는데, 이게 웬걸. 갈색 이물질이 속옷에 흥건했다. 그때 마침 엄마도 장을 보고 돌아왔다. 일단 화장실 문부터 닫고,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결국 엄마에게 말을 꺼냈다. “엄마, 나 똥 싼 것 같아.” 그게 나의 첫 생리였다.


엄마는 한참을 웃었다. 생리를 똥으로 착각했다는 사실이 순진해 보였나 보다. 이런 상식은 성교육 시간에 배우긴 했지만, 다 잊혔다. 지금 생각해보니 중고등 학생 때 학교에서 받은 성교육의 주인공은 ’낙태 수술’ 비디오였다. 가위가 자궁으로 들어가자 태아는 도망 다녔고, 결국 팔과 다리가 하나씩 잘려 나가는 장면이었다. 비디오에서 던지는 메시지가 머릿속에 단단히 박혔다. “섹스하면 저렇게 된다. 저 꼴 나기 싫으면 성에 관심 끄렴.”


이 메시지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돌고 돌았다. 성교육 시간마다 보면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다들 호들갑을 떨었다. ‘섹스’, ‘질’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는 순간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굴기도 했다(무슨 볼드모트도 아니고). 중학교 때 ‘유진’은 ‘걸레’로 불렸는데, ‘쟤는 누구랑 잤다더라. 거기가 헐어서 저렇게 절뚝거리는 거래. 낙태 수술도 했다더라.’ 따위의 진위를 알 수 없는 소문이 나돌았다. 17살 땐 ‘안나’가 임신 중절 수술을 받았고, 그 사실을 아는 건 안나의 남자친구와 단짝 친구인 나뿐이었다. 며칠 동안 음식을 입에 대지도 못하고 게워내기만 하는 안나를 보고, 다들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나도 모른다고 했다. 소문이 나면 어떤 이야기가 돌지 뻔했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마치 생식기나 성욕이 없는 사람처럼 ‘성’에 관한 거라면 뭐가 됐든 외면했다.


대학에 와서 사귄 남자친구들과도 성관계는 하지 않았다. 바로 임신할 것 같았고, 임신이 아니더라도 그냥 왠지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술을 많이 마시고 나름대로 용기를 내보기도 했지만, 안나가 떠오르는 순간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취방에서 함께 나오는 커플을 볼 때마다 술자리 안줏거리로 만들던 선배들의 태도도 한몫했다. 지금 남자친구와 결혼할 것도 아닌데, 굳이 나의 순결함에 생채기를 낼 이유가 없었다. 누군가 성적인 이야기만 꺼내면 ‘하하,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라며 도망치기 바빴다.


22살, 쿠바에서 처음으로 성관계를 경험했다. 2016년 12월, 한 달간 쿠바에 체류하면서 첫 주와 마지막 주는 수도인 ‘아바나’에 머물렀다. 그때 Lester(레스테르)를 만났다. Lester는 내가 머물던 숙소 옆 식당에서 일했는데, 매일 그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안면을 텄다. 식사할 때마다 Lester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급기야는 저녁에 따로 만나 산책도 했다. 12월 23일 저녁, 내가 숙소에 들어가려고 할 때 Lester는 내게 종이로 접은 장미와 함께 쪽지를 건넸다. “내일 밤은 나랑 같이 있어 줄래?”


밤에 같이 있어 달라는 건, 섹스하자는 말이었다. 거절할 생각부터 했다. 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와 함께 보내고 싶었다. ‘내가 걔랑 자도 되는 걸까?’ 일기장을 펴고 나의 두려움을 하나씩 적어 나갔다. 어차피 나는 곧 쿠바를 떠나잖아? 결혼할 것도 아닌데 자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이렇게 ‘쉽게’ 몸을 허락하면 ‘싼 여자’가 되는 것 아닐까? 아무나랑 자고 다니는 사람으로 찍히고 싶지 않은데… 원 나잇이라니, 나도 몸 막 굴리는 걸레가 되는 건가. 적어놓고 보니 나 자신에게 ‘너는 순결해야 해. 욕망하지 마!’라고 다그치는 듯했다. 일기장에 굵은 펜으로 한 문장을 크게 적고 Lester를 만나러 나갔다. “섹스,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그날 밤 마음의 장벽 하나를 넘긴 했지만, 어딜 어떻게 만지는 게 좋냐는 그의 질문엔 끝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성욕과 성행위는 자연스러운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얼마나 좋은지 잘 알면 문란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섹스’라는 단어는 크게 심호흡한 후에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다. ‘질’, ‘유두’ 같은 단어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입안에서 삼키거나, ‘거기’라고 퉁쳐서 말한다. 결혼하지 않은 나에게 산부인과는 애 떼러 가거나, 결혼하고 임신했을 때 가는 곳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질 옆에 생긴 혹도 몇 년간 방치하다가 큰 병으로 번질 뻔했다. 자궁경부암 검진도 안 받고, 산부인과 오지도 않고, 건강 안 챙긴다며 의사 선생님께 잔소리깨나 들었다.


그만큼 평생 ‘성’을 야하거나 더럽다고 여겼다. 생식기의 이름이나 모양도 정확하게 알려 들지도 않았다. 요즘은 산부인과도 주기적으로 다니고, 관련 책도 읽으면서 성기도 그저 몸의 일부라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여자의 몸은 미래의 아이를 위한 것이라거나 순결해야 한다는 틀로 20년 넘게 내 몸을 바라보았지만, 이젠 그 틀에 조금씩 균열을 내는 중이다. 손금을 자세히 들여다본다고 아무도 더럽다고 하지 않듯이, 성기 또한 건강을 위해 챙겨야 할 가치 중립적인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걸 이젠 조금 알겠다.


최근엔 여성 성기의 정확한 명칭을 공부해 보려고 <질의 응답>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 책을 추천한 유튜브 영상에 연령 제한이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성 성기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알려주는 것뿐인데, 연령 제한은 청소년이 자기 몸을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박탈하는 거 아닌가? 이런 환경이라면, 생리를 똥으로 착각한 사람이 나뿐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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