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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말랑 Oct 29. 2020

육아정보만큼 아이정보가 중요해

아이들이 음식을 구분하기 시작하자 언니는 아이들에게 원하는 점심 메뉴를 물었다. “점심때 뭐 해줄까?” 지니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치즈스케이트요!” 언니와 나는 눈이 마주쳤고 웃음이 터졌다. 치즈스케이트라니. 지니가 무엇을 말하는지 안다. 지니가 대답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해봤자 먹었던 것들 중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니는 치즈스파게티를 치즈스케이트라고 말했다. 스케이트라는 말이 스파게티라는 말보다 먼저 입력이 됐고 비슷한 발음을 하려고 할 때마다 스케이트가 자동재생됐던 것이다. 이후에 몇 번을 교정해 줘도 잘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지니가 말하는 치즈스케이트를 치즈스파게티로 이해하고 지냈다. 지니가 잘못 말하는 단어들을 알고 있으니 가끔 엉뚱한 단어를 쓰거나 발음이 어눌해도 지니가 하고 싶은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이가 막 말을 시작할 무렵,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아이의 이야기를 엄마는 신기할 정도로 잘 알아듣는 경우는 흔하다. 그것은 특별한 언어 해독 기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 아이가 수박을 뚜박이라고 발음하는지 주박이라고 발음하는지 알면 아이가 정확하게 발음하지 않더라도 소통이 된다. 아이가 자주 쓰는 단어, 잘못하는 발음, 아이가 알고 있는 것들, 아이의 요즘 관심사, 그리고 아이가 오늘 낮에 했던 일들에 대한 정보가 더해져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된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아이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로 엄마와 아이는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아이에 대해 알고 있으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 점점 자신감을 갖게 된다. 아이에 대해 안다는 것은 언어뿐만 아니라 신체적 기술이나 인성의 발달 수준을 이해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책에 나온 대로 자라지 않는다. 똑같은 네 살도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인내심 정도가 다르다. 주니는 상상하는 놀이를 좋아하고 지니는 정답을 찾는 놀이를 좋아한다. 주니는 잘 안 되는 일이 있으면 누군가 도와주길 바라고 지니는 끝까지 혼자 해 내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니 아이가 뭔가를 혼자 끙끙거리고 있을 때 어느 시점에 개입을 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응원하고 자신감을 북돋아줘야 하는지도 아이들마다 제각각이다. 정해진 정답은 없다. 우리 아이에게 맞는 방식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을수록 해 줄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



쏟아지는 육아서를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책에서는 육아정보를 줄 뿐 아이정보를 주지 않는다. 아이가 불안해할 때는 아이가 좋아하고 익숙한 물건으로 안정을 시켜주는 것이 좋다고 책에서는 말해주지만 아이에게 익숙한 것이 어떤 건지 모르면 그걸 줄 수 없다. 아이에게 필요 이상의 도움을 주는 것도 두려움을 느낄 정도의 도전을 강요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가 어느 정도 계단 높이에서 혼자 뛰어내릴 수 있는지 알고 있어야 적절한 도움을 주면서 아이가 도전할 수 있도록 북돋울 수 있다. 육아정보만큼 아이정보가 중요한 이유다.


이모는 육아정보로 완전무장하고 육아에 뛰어드는 엄마 아빠와 다르다. 육아서 한 장 펼쳐보지 못한 채 아이들 앞에 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육아정보가 한참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정보를 익히려고 애쓴 덕분이었다. 아는 육아정보가 많지 않으니 현장에서 훨씬 민감하고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허겁지겁 어떤 유행이나 모델을 따라가고 싶은 욕심도 없었다.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막혔을 때는 머릿속에 있는 어떤 이론을 뒤적이기보다는 아이 눈망울을 보며 호흡을 맞췄다. 이 나이 또래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 없이 그저 지금 내 앞에 있는 아이에 대해 알기 위해 애썼다.


아이에 대해 잘 모를 때는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멈췄다. 아이가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한 나이라면 질문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됐다. 아이가 힘들어할 때는 섣불리 손을 내밀기보다는 먼저 물어봤다. 이모가 도와줄까? 혼자 해 볼래?라고 물었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도와줬다. 아이가 토라져 있을 때도 달래려고 애쓰지 않았다. 이모가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어? 옆에 있어줄까? 혼자 있고 싶어? 아이들이 선택하면 그 선택을 전적으로 믿었다. 그리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따라 아이 정보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나는 울고 있는 다섯 살 꼬마 아이를 달래는 기술이 없다. 하지만, 주니지니가 뾰로통하거나 울고 있을 때는 어떤 이야기가 그들에게 위로가 될지 확실히 알고 있다. 그동안 눈을 맞추고 마음을 섞은 시간들이 쌓여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서 안 보이는 것들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찡그리고 있는 아이의 표정에 담긴 메시지를 해독하는 비법은 책에서 읽은 어떤 유명한 육아 이론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알려주는 기술이자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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