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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말랑 Nov 01. 2020

시작글

나는 언니네 쌍둥이 남매를 7년 동안 같이 키웠다. 아니, 같이 살았다. 친구들은 쌍둥이 이모라 불렀고 육아 현장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날이면 나에게 연락했다. 그렇게 내 아이가 아닌 아이를 보살피면서 이모로 지낸 시간이 10년이 쌓였다. 한두 달 아기 안아주다가 끝날 줄 알고 시작했는데 장맛비에 고무신 떠밀려가듯 여기까지 왔다. 휩쓸려 건너온 그 시간들을 하나씩 꾹꾹 돌려 감아 보며 이 책을 썼다.



어쩌다 보니 아이를 키우는 게 큰 집안일이 됐다.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육아라는 가사 장르는 없었다. 어른들은 각자 자기 생활을 했고, 아이들은 아이들의 일을 열심히 했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것이 아이들의 일이었다. 여유가 되는 사람이 안아주고, 시간 맞는 사람이 놀아주고, 집에 있는 사람이 밥을 먹이고, 일찍 들어오는 사람과 잠이 들었다.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일 뿐 따로 아이들을 키운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알아서 쑥쑥 컸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을 안아줄 만큼 여유가 되는 사람도 없고, 시간이 맞는 사람은 너무 멀리 있다. 엄마 아빠가 늦는 날에는 아이들 저녁을 챙겨줄 만한 사람도 따로 구해야 한다. 모두가 흩어져 살다 보니 서로 오고 가며 시간을 나누던 사람들과 마음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나라에서는 각종 수당을 주고 보육환경을 개선해 나가려고 애쓰고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점점 두렵고 버거운 일이 되어간다. 24시간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아빠 엄마 중에 누군가는 자신의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시간을 먹는 하마가 됐다.


나는 조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이모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언니와 동생네 아이들 뿐만 아니라 가까이 사는 친구들과 그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일상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이모육아는 훨씬 더 다양해졌다.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놀이터에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도 이모가 되어줄 수 있다. 또, 아이를 키우는 어른들을 위해 이모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더 많았다. 양육자들에게 잘해 주는 것이 그 날의 기분이 되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이 된다는 걸 알기에 나는 어른들을 위한 사소한 일들에도 공을 들였다. 이 책은 그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은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이모가 되는 시간에서는 이모가 육아 현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든 집은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고 가정마다 필요한 도움도 다르다. 누구든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와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2장 이런 이모가 되어줄게에서는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의무감과 책임감을 덜어낸 육아의 현장이 얼마나 명랑하고 유쾌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담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려는 노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것인가? 대신에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잘 어울려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지금 육아 현장이 직면한 문제는 어떤 간단한 테크닉으로 해결할 수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향해 마음을 열고, 연약한 존재를 위해 손을 내밀어 친절을 베푸는 일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알게 될 때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는 비로소 육아의 버거움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안위만을 돌보던 어떤 한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깨울 수 있다면 좋겠다. 육아 현장에서 벌어지는 따뜻한 이야기를 읽다가 주변에 있는 어떤 아이가 떠오르고 이런 일이라면 나도 누군가의 육아에 참여하고 싶다고 마음먹어 준다면 뿌듯하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모여 우리 사회가 거대한 돌봄 사회가 되길 감히 바래 본다.


이모로서의 하루하루는 충분히 빛났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사이사이의 묵직한 깨달음들은 결혼 임신 출산 없이도 나를 훌쩍 성장시켰다. 내가 많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해 준다고 생각했는데 되돌아보면 내가 얻은 것이 더 많다. 이모육아는 내가 시간을 들여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고마운 시간들이 빛 속으로 나온 걸 환영한다. 더 많은 이모 고모 삼촌들이 육아를 취미생활처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아이들의 추억을 위해. 엄마 아빠의 손과 가슴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무엇보다 자신의 반짝이는 성장을 위해.



+ 책 속의 사례는 실화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다만, 사례 주인공의 바람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을 썼고(*), 일부 내용은 재구성했음을 밝힌다.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꺼내 놓아준 친구들의 우정과 자발적 노력에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좋은 이야기로 그들의 마음에 보답하고 싶다. (*쌍둥이 조카는 애칭인 주니와 지니로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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