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채울 수 있는 힘이 생겼을 때,
비로소 이별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거야
한 주를 마무리하고 있던 조용한 일요일 저녁, 15년 지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3년을 만난 남자 친구와의 연애에 권태기가 왔고, 여느 때와 같이 함께 보내던 주말 끝에 예고 없이 남자 친구가 이별을 고했다는 이야기.
삼십 대 초반이라는 나이는 그저 연애만 생각하기엔 시간이 너무 빠르다. 독신론자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관계에 있어 결혼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도 사실 이별이 아주 느닷없는 결론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는 연인으로는 무탈하지만 배우자로는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기에, 쉬이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이어가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표현하지 않아도 전해지기 마련인지,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먼저 그렇게 그녀의 손을 놓아버렸다.
"사실, 오히려 잘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나쁜 생각이 들긴 했어. 근데 그래도 막상 진짜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너무 두려운 거야."
"어떤 게 두려워? 오빠와의 연애가 끝나는 게 두려운 거야? 아니면 남자 친구라는 존재가 없어진다는 게 두려운 거야?"
"지금은 후자인 것 같아. 설상가상 같이 살던 룸메이트도 이번 달 말에 나간단 말이야. 그럼 철저히 혼자가 될 텐데, 무서워..
아주 뜨거운 사이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늘 곁에 있어주던 존재가 없어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그렇지, 3년이 절대 짧은 시간은 아니니까.."
"첫 이별처럼 미친 듯이 슬프고 아픈 건 아니지만, 괜찮다가도 막 심장이 두근두근 떨리기도 하고, 매일 소소한 일상이라도 나눌 사람이 없고 나를 궁금해하고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어진다는 게..
나 너무 외로울 것 같아.."
어떤 기분인지 정말이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오랜 연애 끝에는 뭐랄까, 남녀 간의 사랑 말고도, 통칭해서 '정'이라고 일컫는 우정, 우애, 가족애 같은 감정들이 생겨난다.
그 수많은 감정이 뒤섞인 나머지 이게 사랑인지 뭔지 확신할 수 없더라도, 가장 가깝던 사람이 남보다도 못한 사람이 되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함께한 시간과 추억의 힘을 떨쳐내고 관성을 이겨내는 일은, 나이가 들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픈 이별일수록 우리는 홀로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끝나버린 사랑을 충분히 애도하고, 변해버린 마음이라도 조금씩 천천히 받아들이는 시간,
'우리'에게 집중했던 시선을 오롯이 '나'에게 돌리는 시간,
홀로 있으면서 나를 충만하게 채우는 시간,
그대가 혼자 있을 때, 그대는 진정으로 홀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외로울 뿐이다.
'외로움(Loneliness)'과 홀로 있음(Aloneness)"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대가 외로울 때 그대는 타인을 생각하고, 타인을 그리워한다.
외로움은 부정적인 상태이다.
그대는 친구나 애인, 부모, 남편, 아내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대 곁엔 아무도 없다.
외로움은 타인의 '없음'이다.
홀로 있음은 자신의 '있음'이다.
홀로 있음은 매우 긍정적인 상태이다.
그것은 현존(Presence)이다.
넘쳐흐르는 현존으로 그대는 너무나 충만해서 전 우주를 가득 채운다.
그때 그대는 옆에 있어야 할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오쇼 라즈니쉬
외로움을 밖에서 채우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어쩐지 우리는 더 외롭다. 애초에 그 마음은 타인이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헤어진 연인이 채울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외롭고 헛헛한 마음에 누구라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들더라도,
일단은 '홀로 있을 자유'를 누려보자.
곁을 지켜주던 공간이 크고 깊었던 만큼,
함께한 시간이 짙고 길었던 만큼,
그 자리를 스스로 채울 수 있는 힘이 생겼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별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인생은 어차피 외길이란 흔한 말로 나는 그녀를 위로했지만, 어느 정도 진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혼자 설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다는 것을 신뢰하고 상기시켜주는 것으로 위로를 대신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똥차 가고 벤츠 맞을 준비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