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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Oct 17. 2017

그 시절 그때의 나를 사랑해주어서 정말 고마워,

모든 순간 진심이었던 우리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스물셋 첫 이별의 생채기를 심하게 앓을 무렵, 함께 이별의 아픔을 공유했던 친구가 있다.


벌써 15년 지기인 그녀는, 한창 첫 연애의 달달함을 만끽하던 시절 내 룸메이트였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서로의 연인을 만나 찐하게 연애를 하고 같은 시기에 군대를 보낸 후, 평행이론 마냥 꽃신을 신자마자 이별을 맞이해야만 했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사랑도 하면 할수록 성숙해진다.


그래서인지 지금 생각하면 첫 연애는 너무나 날 것 그대로였던 것 같다. 사랑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어리숙하기 그지없어, 밀고 당기고 할 것도 없이 어찌할 바 모르는 내 마음만 표현하기 바빴다. 그때는 서로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기만을 원하여 구속과 집착도 사랑인 줄 알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날 것 그대로 서로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순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어떤 계산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은 마음 하나였다.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어찌할 줄 몰라 매일같이 봐도 또 보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마음이 들면 아이처럼 그렇게 서러워하기도 했더랬다.


지금 같으면 엄두도 못 낼 2년 여의 고무신 시절도 오직 그 마음 하나로 수백 통의 편지와 함께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고립되어있는 그를 두고 한 눈을 판다거나 거짓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어서,


나는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 시절을 고스란히 공유하고 있는 우리는 지금도 종종 그때 이야기를 하곤 한다.


같이 문구점에 가서 예쁜 편지지를 골라 나란히 앉아 편지를 쓰던 시절, 보고 싶어도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어 유난히 외롭던 날에 함께 차가운 맥주를 들이키던 여러 밤이 있었다.


면회 가기 전 날 야심 차게 3단 도시락을 만들어 보겠다며 양 손 가득 장을 보고, 새벽같이 일어나 잘 하지도 못하는 요리를 하느라고 참 부산하기도 했더랬다.


첫 이별을 겪었던 해의 마지막 날에는, 이젠 정말 다 잊어보겠다고 같이 정동진 바다 일출을 보며 가련히 두 손 모아 기도하던 날도 있었다.


참 어렸고 그래서 더 반짝이던 그 때 그 시절,

애틋했던 그 마음만큼 오래도록 아련해지는 걸까.


지금에서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 후 꽤 오랫동안도 우리는 그 이별에 대해 쉬이 가벼워질 수 없었다.





"지난 주말에 집에 내려갔더니 글쎄 말이야, 그때 받았던 편지들과 내가 썼던 일기들이 그대로 있지 뭐야, 난 진작 다 버린 줄 알았는데 박스 채로 덩그러니 남아있더라고. 첨엔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는데, 그때 그 애가 썼던 편지를 읽어보니 너무 뭉클했어.


그땐 정말 진심이었던 거야. 매일 밤 휴가를 기다리며 보고 싶어 어쩔 줄 모르던 마음도, 내가 아팠을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해 슬퍼하던 마음도, 그땐 정말이지 진심으로 나를 사랑했던 거야. 그땐 왜 그게 당연하다 느꼈었는지 모르겠어. 나는 섭섭한 마음, 부족하다 느끼는 마음만 그렇게 크게 느꼈었는데, 그땐 왜 몰랐을까."


"맞아. 그땐 참 당연한 게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가감 없이 사랑해주었던 마음이 너무 고마운 것 같아. 지금은 사실 그렇게 다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또 그걸 다 받아줬던 그 애도 대단했던 것 같고ㅎㅎ 그렇게 뜨겁게 온 마음을 던져서 사랑하고, 또 그렇게 애달픈 이별도 해보고, 그 경험 자체도 참 귀한 것 같아. 우린 아마 80살 할머니가 돼서도 그땐 그랬지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까?ㅎㅎ"


뭉클했던 친구와의 대화,


우리는 어쩌면 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때 그 마음을, 그때 그 이별을 이해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야 정말 1g의 미움 없이, 정말 고마운 마음만 담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절 그때의 나를 있는 그대로 흠뻑 사랑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모든 순간 진심이었던 우리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철없던 어린 날, 내 곁에 있어주어 정말 감사하다고,


그리고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니까 ,


앞으로의 모든 날 너에게 따뜻한 사랑이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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