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추분(秋分) 맥코트

by 봉진

2025년 9월 23일(화)

최저온도 28°/ 최고온도 19


나는 언젠가부터 이 옷 저 옷 껴입는 걸 즐겨하면서 여름보다는 가을 겨울에 옷 입는 행위를 좋아했다.

이미 몇 주 전부터 후드를 사서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입을 날만 기다렸다.

추분(秋分). 낮에는 아직 여름 기운이 남아 시원하게 입어줘야 하는데 날이 어두워지면 금세 기온이 떨어지니 이럴 때 준비해 둔 긴팔은 요긴하다.

도시에 살 때는 늘 가을 맥코트 단추를 끝까지 채워 입는 날을 기다렸고, 그런 날은 늘 설레었다.

충분히 즐길 새도 없이 짧아진 가을이라 맥코트를 며칠 못 입기도 하거니와 여름에 입었던 옷과 다르게 맥코트를 입으면 허리도 꼿꼿해지고 몸에 딱 맞는 감싸는 기분이 좋았다. 20대 후반에 샀던 맥코트를 때가 되면 아직도 잘 입고 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맥코트는 잊지 말고 입고 싶다.


여름 이후 두 번째 방문한 친환경 벼 품종 연구를 하는 복합문화공간에 갔더니 전에 못 보던 허수아비가 생겼다. 멀리 보이는 허수아비도 가을옷은 꽤나 잘 챙겨 입은 모습이 귀여웠다. 그곳에서 너른 논, 멀리 둘러싼 산과 노을 풍경에 계절을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그날 저녁은 밤 미리 사둔 후드까지 입었으니 완벽했다.

IMG_7171.JPG


이른 모내기를 한집들은 추석 전에 추수를 한다고 해서 요즘 마을마다 벼가 얼마나 익었나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벼들을 심어놓은 자리마다 벼가 익어가는 작은 차이들이 있을 텐데 초보자가 그 차이를 알기란 참 어렵다. 노르스름하게 익어가는 벼가 익는 풍경을 볼 수 있는 시간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매일 봐도 감탄하고 지겹지 않은 이 풍경은 있을 때 부지런히 봐야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25 추분 : 치우침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