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outtuesday #blacklivesmatter
마음이 무거운 한 주가 지나가고 있다. 이 글을 '도쿄 일기'가 아닌 '제3문화 어른'에 쓰게 된 이유는, 그저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닌, 우리가 글로벌 시민으로서 책임을 갖고 깨달아야 할 사실이기 때문이다. 약탈과 폭동을 합리와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위가 일어난 배경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해보고 싶다.
왜 모든 인종 중에 특히 흑인만을 위주로 인종차별 반대 운동과 시위가 일어나는 것일까? 또, 왜 미국 경찰은 유독 흑인들만 과잉진압하는 것일까? 시위 관련 뉴스들을 보도하는 많은 한국 언론들이 주로 약탈과 폭동에만 초점을 맞춰있기 때문에, 조금씩 변질되어가는 이 사건을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설명하고 싶었다.
인종 사이의 갈등은 엄청나게 오래되었는데도 해결이 안 된 인간 사회의 고질병이다. 하필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일어나서 그렇지, 언젠가는 터졌을 곪고 곪은 문제이다. 혹자는 우리도 동양인, 유색인종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하지만 우리는 시위를 하지 않는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흑인들이 전 세계적으로 받는 멸시와 차별, 기회의 박탈은 우리가 감히 이해를 한다고 말할 범주가 아니다.
예전 넷플릭스에서 Chelsea Handler(첼시 핸들러: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의 다큐멘터리 쇼 중에, 어느 미국 흑인 여자의 인터뷰를 봤던 기억이 난다. 그 여자는 흑인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부러운 점이 자신과 가족의 역사를 아는 점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그 말로 인하여, 내가 그동안 얼마나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었는지 반성을 할 수가 있었다.
상황을 비교해 상상해보자면, 수백 년 전 동양인들이 백인의 존재를 몰랐을 때에 갑자기 어느 날 백인들이 쳐들어와서 국적, 민족, 성별 따지지도 않고 아시아인들을 노예로 잡아갔다고 해보자. 필리핀, 인도네시아, 일본,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안에서도 세분화된 언어, 민족성, 계급, 인종 등을 깡그리 무시하고 우리 전체를 "황인"들이라고 칭하여 하나의 그룹으로 묶은 다음, 노예해방이 될 때까지 몇백 년을 그렇게 살았다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몇백 년이 흐르는 동안, 황인들 사이에 민족과 인종이 서로 뒤섞여 더 이상 본인들의 출신을 모르게 되었을 것이다. 해방이 된 이후에도 거의 한 세기 동안을 "segregation laws(인종 차별 법)" 때문에 합법적으로 차별과 멸시를 받았다. 아무리 차별법이 폐지되었더라도, 수 백 년간에 학습되고 익혀진 인식은 아무리 황인들 중에서 대통령이 나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기반과 틀이, 백인사회를 중심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만 해도, 알게 모르게 흑인이나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을 비하하는 행동과 말을 무의식적으로 많이 한다. 그것은 어쩌면 백인 사회(특히 미국)의 틀을 롤모델로 삼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의식일지도 모른다. 이 말은, 흑인이 많은 사회건 적은 사회건 상관없이 흑인에 대한 차별이 자연스럽게 시스템에 녹아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시위가 일어난 가장 큰 계기는 George Floyd(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이다. 이러한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이 사회에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아, 그것을 무기로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바로 Amy Cooper(에이미 쿠퍼)와 Christian Cooper(크리스챤 쿠퍼)의 사건이다. 나는 이상하게도 더 큰 이슈가 되는 경찰의 과잉 진압보다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런 일이 더 크게 와 닿았다. 크리스챤 쿠퍼가 찍은 이 비디오를 보면 흑인들이 일상에서 얼마나 쉽게 억울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공교롭게도 성씨가 같은 이 두 사람은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이른 아침에 만났다. 하버드 졸업생인 크리스챤은 취미로 이른 아침 공원에서 조류를 관찰하는 중년의 bird watcher(조류 관찰자)이다. 그 장소에서 자주 조류 관찰을 하는 그는 평소에도 새들이 도망가기 때문에, 개에 목줄을 안 하는 산책객들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그래서 개 사료나 비스킷을 주머니에 항상 들고 다녔다고 한다. 그날 아침 에이미 쿠퍼는 하필 그곳을 (목줄을 하지 않은 채로 뛰어다니는) 자신의 개와 함께 지나가고 있었고, 크리스챤은 정중히 목줄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실제로 센트럴파크는 엄격하게 목줄을 해야 하는 원칙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계속 목줄을 안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크리스챤이 개를 유인하여 그녀가 목줄을 채울 수 있도록 하려고 개 비스킷을 꺼내자 그녀가 갑자기 노발대발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부터 비디오는 시작된다. 그 과정을 대충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크리스챤: 제발 가까이 오지 마세요.
에이미: 찍지 마세요. 절대 찍지 마세요. (개에 목줄을 채우고 크리스챤을 위협하듯 가까이 가며)
크리스챤: 제발 가까이 오지 마세요.
에이미: 나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크리스챤: 얼마든지 신고하세요.
에이미: 난 지금 경찰에 전화해서, 흑인 남성한테서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할 거예요!
크리스챤: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말하세요!
에이미: (경찰에 전화해서 엄청 다급한 목소리로) 난 지금 센트럴 파크 램블에 있는데 흑인 남성이 나와 내 개를 위협하고 사진을 찍고 있어요! (점점 더 다급한 목소리로) 흑인 남성이 센트럴파크 램블에서 나와 내 개를 위협하고 있다고요!!! (그 와중, 목줄을 너무 심하게 계속 당겨 개를 학대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 비디오가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분명 잘못을 한 것은 에이미 쿠퍼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녀가 공권력이 자신의 편에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서 사실까지 왜곡해가며 연기를 했다는 것이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이미 그 둘은 사라진 뒤여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만약에 경찰이 출동을 했고, 이 비디오라는 증거가 없었다면 경찰은 누구의 말을 믿어줬을까? 에이미 쿠퍼가 거짓말을 하면서라도 경찰에 전화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녀의 (백인이 흑인보다 유리하다는, 또는 경찰은 흑인을 색안경 끼고 볼 것이라는) 이유 있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더 큰 반전은, 그녀는 오바마를 응원했던 진보 지지자였다는 점이다. 물론 이 사건으로 그녀의 신상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직장에서 해고되고, 개까지 유기견 단체에 도로 뺏기기 까지 했으니, 그것이 합당한 결과였는지는 모르겠다. 크리스챤 쿠퍼도, 그녀의 인생이 이렇게 망가질 이유는 없었고 일이 이렇게 까지 된 점에 대해서는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아마도 그녀는 아주 사악한 의도를 갖고 행동을 한 것이 아닌,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단순간에 내재되어 있는 우월감과, 그것을 이용하면 자신이 싸움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치사함이 튀어나온 것일 터이다. 동양인 여자로서는 그런 상황에 놓이기가 힘들기 때문에 쉽게 겪어볼 수 없는 그들의 억울함이 와 닿았다. 이런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할까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어제(우리 시간 6/2 화요일 오후)부터 전 세계 sns에 #blackouttuesday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기관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 운동은 그동안의 자신의 무지했음 또는 무관심을 인정하고, 그들의 얘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겠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들의 울부짖음과 감히 그 입장을 전부 다 이해하고 헤아릴 수 없겠지만 관심을 갖고 노력하겠다는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폭동과 약탈로 변질될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시위 때문에 코로나가 더 퍼질 것 같은 불안감이 있지만, 그래도 '그들의 얘기를 한번 들어보자' 하며 약자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