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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프 Sep 11. 2020

1. 양말 만지기


양말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양말 발목 부분의 안쪽을.


양말마다도 느낌이 다르다. 어떤 양말은 뻣뻣하고, 어떤 양말은 너무 부드럽다. 지나치게 부드러운 양말은 만지는 재미가 없으므로 부드러운 것보단 뻣뻣한 쪽이 훨씬 낫다. 물론 이건 양말이라는 것 자체가 심각할 정도로 뻣뻣한 소재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양말'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누군가는 스포츠양말을, 누군가는 페이크삭스를, 누군가는 니트양말을, 또 누군가는 트리에 달아놓을 법한 커다란 양말을 떠올릴 것이다. 땀으로 절여진 양말의 퀴퀴한 냄새를 떠올릴 수도 있고 세탁과 건조 과정을 거쳐 나는 좋은 향기를 떠올릴 수도 있다.


나는 양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손이 근질근질해진다. 당장이라도 양말을 만지고 싶어진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벌떡 일어나 양말 한 켤레를 가져오고 싶은 것을 몇 번이나 참았다.


실은, 결국 참지 못하고 가져와 신고 만지는 중이다.


양말을 만지기 가장 좋은 자세는 한쪽 무릎에 다른쪽 발을 올려놓은 모양새다. 오른쪽 무릎(양반다리를 한 상태라면 오른쪽 허벅지)에 왼쪽 발을 올리고, 오른쪽 손(주로 중지와 약지)으로 왼발의 복숭아뼈 부근에 걸쳐진 양말을 뒤집어깐다. 그렇게 드러난 양말의 안쪽을 왼손 혹은 오른손(이 경우 엄지)으로 만져준다.


왜 이런 짓을 하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떤 이유 때문에 좋은 건지 대략적으로라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냥 좋다. 성적인 쾌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그러므로 '페티시'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또 양말에만 집착하는 것도 아니다. 옷의 봉제선이나 지퍼 등을 통해서도 비슷한 수준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대개 양말의 질감이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양말을 선호한다. 내가 집에 구비해둔 양말 중 자주 신는 양말은 두 종류인데, 그 중 한 종류가 이렇게 만지기에 정말 적합하다. (지금 신은 양말도 바로 그 양말이다.)


양말을 가장 황홀하게 만질 수 있는 방법도 안다. 간장계란밥을 먹으며 만지면 된다. 이때 계란은 꼭 반숙이어야 한다. 덜 익은 계란 노른자가 입 안에서 거품을 내는 것을 느끼며 만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초등학생 때 얻은 교훈이다. 그러니 최소 1n년 이상은 이 기쁨을 누리며 살았다는 거다. (물론 이런 욕구를 느껴온 강도나 행위한 빈도가 일정했던 건 아니다.) 꼭 간장계란밥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입에 물고 우물거리며 만지면 만족감은 배가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얼마나 이상해보일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어딘가 이상한, 그렇지만 딱히 남들에게 피해주는 건 아니니 그렇구나 하고 넘겨줄 만한 구석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닐까? 엄마에 따르면, 우리언니는 어릴 때 누군가의 귓볼을 만지는 걸 그렇게도 좋아했다고 한다. (커서도 그런 건 아니라는 점이 나와 다르지만...)


그리고 하나 더. 이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된 건데, 누군가가 내게 '너는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물을 때 확신에 차서 할 수 있는 대답은 '양말 만지기' 하나 뿐이다.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 그렇다. 무인도에 떨어져도 나는 꾸준히 양말이나 옷의 봉제선이나 하다못해 바위의 자잘하게 울퉁불퉁한 부분이라도 만질 것이다.


음, 그래. 그러니까 됐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이고, 나는 앞으로도 이걸 계속 좋아할 것이다. 이 욕구가 나의 일상생활을 망치기 전까지는 고치려고 들지도 않을 거다. 그래, 그러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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