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나비-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음악을 들으며 읽으시기를 추천합니다.
그땐 난 어떤 마음이었길래
내 모든 걸 주고도 웃을 수 있었나
사랑은 주는 것이다. 주고 싶어서 안달 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웃는 걸 보고 싶어서 밤잠 설치는 것이다. 내 모든 걸 주고 웃을 수 있는 건, 사랑에 빠진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대는 또 어떤 마음이었길래
그 모든 걸 갖고도 돌아서 버렸나
하지만 상대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사랑이란 화력이 계속되려면, 상대의 사랑이란 땔감을 계속 넣어야 한다. 혼자 주는 사랑이란, 유효기간이 있고 불씨가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그렇게 사랑을 다 가지고 뒤돌아선 상대에 대해서 후회와 미련과, 미움과 회환과, 그리움과 애증을 모두 쏟아낸다. 그리고, 다 쏟아낸 후에는 우리는 비로소 이별을 맞이한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 품 없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누군갈 위해서
남겨두겠소
뜨거운 여름밤. 표현이 적확하다. 사랑의 이미지는 여름밤, 젊음이 손을 잡고 해변가를 걷고 밤하늘에 누군가 쏘아 올린 불꽃을 보며 웃는 것이다. 그 순간에 영원히 머물러도 괜찮을 것 같은 시절, 몇십 년 살아갈 나날에 아무래도 지금이 가장 행복할 거 같다며 고백하는 그런 나날들. 하지만 그런 뜨거운 사랑의 시절은 가고, 떠나간다. 차가워지고 남은 건 쏘아 올린 폭죽의 잔해처럼 볼품이 없다. 그대 없이 빛나는 것 하나 없는 원래의 나. 무척이나 볼품이 없어서, 나에게 원래 남아있는 것이란 고작 이런 것이었나 자괴감이 든다. 하지만, 다시금 생각한다.
또다시 찾아올 누군가를 위해 보잘것없는 나라도, 그런 나라도 소중하게, 소중하게.
다짐은, 세워 올린 모래성은
심술이 또 터지면
무너지겠지만
그런 다짐을 하지만, “사랑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 없이는 - 스스로는 어렵다. 내가 사랑받을 사람일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일까, 방황하는 내 영혼의 귀에 “아니야, 넌 사랑받고 있어. 바로 내가 줄 거야. 넘치도록 줄게. 난 너를 사랑하고 있거든.”이라고 말하는 누군가 없이는 연약한 영혼은 수없이 수없이도 무너진다. 모래성처럼.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 품 없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누군갈 위해서
남겨두겠소
그래도 기다린다. 기대한다. 볼품없는 나지만, 이렇게 연약한 영혼을 찾아오는 누군가 있기를. 누군가 나를 알아보는 만큼, 나도 그를 혹은 그녀를 알아볼 수 있기를.
그리운 그 마음 그대로
영원히 담아둘 거야
언젠가 불어오는 바람에
남몰래 날려보겠소
떠나간 사람. 사랑을 주었던 사람.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일까? 아니다. 이 노래는 사랑을 잃은 사람이 다시 사랑을 기다리는 이야기다. 그리움의 대상은, 다시금 뜨거운 여름밤을 경험하게 만들어줄 그 누군가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수없이 좌절했던 순간을 이겨내고 - 그래도 다시 한번 사랑을 꿈꾸는 사람의 노래다.
눈이 부시던 그 순간들도
가슴 아픈 그대의 거짓말도
새하얗게 바래지고
이별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그 사람은 잊힐지언정 그 감정은 잊을 수 없다. 그 순간, 그 감정, 해변가에 날아오르는 폭죽과 같은 벅참과 고양감. 그리고 무너짐과 절망의 감정들. 결국 상대는 감정으로 영원히 기억된다.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바래질 뿐.
비틀거리던 내 발걸음도
그늘아래 드리운 내 눈빛도
아름답게 피어나길
그걸 알기 때문에, 잊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더 다음 사랑이 절실하다. 비틀거리며, 그늘 아래에 멈춰있는 나의 마음이 - 불꽃처럼 피어오를 수 있는 그런 사랑. 그런 사람.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