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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나 Oct 09. 2023

대도시에 입성하다

3. 밀라노 첸트랄레역, 스포르체스코 성

한밤중이 되어 밀라노 역에 내렸다. '이태리 소매치기'를 검색하며 머릿속으로 수십 편의 드라마를 쓴 유럽여행 초행자가 대도시에 처음 도착한 것이다. 소매치기는 사람들이 많은 곳, 특히 여행자를 주요 타깃으로 한다고 하지 않던가. 서울역을 방불케 하는 혼잡한 그곳에서 캐리어를 세 개씩이나 끌고 다니던 우리는 아주 좋은 먹잇감일 수밖에 없었다. 길었던 하루 끝에 피곤이 쌓일 대로 쌓였지만 곧바로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택시 표시가 있는 표지판을 발견하고는 오로지 거기에 집중해 걷기 시작했다. 가방은 앞으로 메고 두 손으로 캐리어를 꼭 쥔 채로.


택시 승강장에는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있었다. 피로에 긴장감이 더해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지만 대안이 없었다.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택시 한 대, 택시에 몸을 싣는 사람 둘, 느릿느릿 줄어드는 줄을 눈으로 열심히 좇고 있을 때 어디선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겁에 잔뜩 질려있었던 나에게는 소리의 근원을 파악하는 일조차 용기를 요하는 일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이럴 수가.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는 노숙자 무리에서 싸움이 붙었다. 어디선가 풍겨오던 꼬릿한 냄새도 설명이 되는 듯하다. 제발 어서 안전한 숙소로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택시에 올라탔다. 이제는 정말로 숙소에 도착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며 에어비앤비 주소를 보여주는데, 기사님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주소 뒷부분이 잘렸나? 숙소가 있을만한 위치가 아닌가? 기사님이 어디론가 운전을 하긴 하는데, 우리를 맞는 곳으로 데려다주고 있는지 도통 알 방법이 없다. 손에는 구글맵을 켠 핸드폰을 쥐고, 머릿속으로는 갱단에 납치되어 소지품을 몽땅 빼앗기는 확률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차가 멈춰 섰다. 구글맵을 보니 목적지에 맞게 도착해 있었다. 트렁크에서 짐 빼는 것을 도와주고 거스름돈까지 찬찬히 챙겨주신 기사님은 Grazie, 인사를 하고 떠나셨다. 몸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다.


짐을 대충 풀었을 때는 9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출출하기도 하거니와 그대로 잠에 들긴 아쉬워 근처 마트에 가보기로 하고 숙소를 나섰다. 생각지 못한 복병은 가장 가까운 마트였던 까르푸에 가기 위해 골목길을 지나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이렇게 겁이 많은 사람이었던가. 스스로도 웃긴 일이라고 생각하며 대로를 빠져나와 골목길에 들어선 순간, 오래된 성이 환한 불을 밝힌 채 모습을 드러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밤,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존재를 뽐내고 있는 성을 더 낭만적으로 만드는 건 그 주변에 삼삼오오 무리 지어 있던 주민들이었다. 평일 저녁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성 앞이라니, 밀라노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사람들이 경계의 대상이 아닌 일상을 사는 이들로 보였다.

까르푸에 도착해 물이며 다음날 아침 요깃거리 같은 것을 사서 나온 뒤에야 긴장이 풀린 우리는 기억도 나지 않는 시답잖은 얘기로 깔깔거리며 걷다 할로윈 장식이 된 맥도날드를 발견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들어가 남의 나라 맥도날드 탐색을 위해 버거부터 디저트까지 샅샅이 훑어본 메뉴의 Temptations 섹션에는 올리브 튀김이 있었다. 정말이지 알맞은 분류가 아닐 수 없다. 어딘가 모르게 어울리는 할로윈 장식과 올리브 튀김. 올리브를 안 먹는 남자친구가 날 위해 주문해 준 올리브튀김이 든 맥도날드 백을 소중히 품고 숙소에 돌아온 우리는 야식을 거하게 먹은 뒤 단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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