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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Feb 03. 2024

왜 기도해야 할까? (3)

기도의 특권

[요 15:16, 새 번역]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

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 말씀대로라면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기도는 나의 간구가 아니라 주님이 열매 맺기를 위한 주님의 ‘열심’입니다.

기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택하신 증거의 ‘작동’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 기도할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선택에 의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이처럼 무서운 상황에 놓였다는 것이죠.



[요16:23-24, 새번역]

23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다. 구하여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그래서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될 것이다."


기도는 주님의 이름으로 받는 것이며 우리의 기쁨이 넘쳐야 합니다.

기도했지만 전혀 기쁘지 않은 이유는 주님의 이름으로 받을 수 없는 것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실만 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당연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이방인이 이방신에게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 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중복의 지루함이 있더라도 너무 중요해서)

기도의 결과는 우리만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것을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가 원해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선택하여 자기 열매를 맺기 위해 기도하게 하십니다.

기도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십니다.


우리의 성공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주기도문을 통해서 기도의 목적과 결과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나라가 임하시며, 뜻이 이루어 주소서]

이것이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이며, 주의 임재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는 일은 자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오실 성령님도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영광, 가치, 실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은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방인들이 이방 신에게 구하는 그런 이방인의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의 것을 소망할 수 있고, 그것을 받을 수 있으며, 주님처럼 아버지의 것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개에게는 동물의 욕구만 있습니다.

개들이 자존감 혹은 자아실현의 욕구는 없습니다.

죄인이었던 우리는 주님의 구원 이전까지 주님의 나라에 관한 소망이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갈망하고 소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서 주님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기도를 알려주셨습니다.

우리가 [감히]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 그리고 뜻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존재 그리고 우리의 관계를 알려줍니다. 

저의 딸은 저에게 모든 것을 구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살 것이 있다고 신용카드를 가지고 갔습니다. 

세상에 나의 지갑을 자기 마음대로 열 수 있는 사람은 딱 두 명입니다.

강도이거나 제 딸(가족)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다는 것, 목록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기뻐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빌3:10, 새번역]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는 그대로 응답이 되었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이 미련한 것일까요? 그가 구했던 것이 위험한 기도일까요?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구하면 안 되는가요?

왜 하나님께서 죽으면 하늘의 삼천 층을 볼 수 있는데 바울에게 미리 보여주었을까요?

그리고 바울은 어떤 기도를 하였기에 하나님은 이렇게 응답하셨을까요?


기도는 수단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어떤 관계인가에 따라서 기도는 달라집니다. 

우리의 기도 제목을 살펴보면 우리가 누구에게 기도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기 되기를 원하는 우리의 속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자기 뜻을 이루십니다. 그것이 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감히] 그분의 뜻을 이루는데 예수님처럼 그리고 성령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광이고 우리의 열매입니다.


주안에서 있다면 말씀이 우리 안에 있다면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면 [예수님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이 하늘의 능력입니다. 

그 자체가 우리의 궁극적인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시며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기도 응답을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한 중보기도를 하십니다.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권리이며,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는 존재가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참고로

저는 원천침례교회 / 민트교회(담임목사 이계원)의 교인입니다. 

https://www.wonch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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