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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Nov 07. 2024

the show must go on

나듦의 계절, 인디언 서머(5)

홈쇼핑에서 의류를 판매하는 방송을 넋 놓고 지켜보게 되는 순간이 종종 있다.


“여러분, 올겨울, 진정한 따뜻함을 선사할 오리털 파카를 소개합니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에도 끄떡없도록, 이 파카는 최고급 오리털을 가득 채워 따뜻함과 가벼움을 동시에 잡았습니다. 
이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고급 오리털 충전재인데요, 일반 충전재보다 보온성이 8배가 뛰어나고, 가볍고 부드러워 오래 입어도 부담이 없습니다. 저는 아까부터 이렇게 입었는데 너무 가벼워서 입었는지를 몰랐어요. 그리고 이거 보세요. 특수 발수 가공 처리로 눈이나 비가 내려도 물이 쉽게 스며들지 않아 보온성을 유지해 줍니다. 물이 이렇게 또르르 흐르죠. 코팅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디테일에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몸에 맞춘 슬림한 실루엣으로 부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한층 세련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후드 부분에는 탈부착 가능한 고급 퍼(fur) 트리밍을 더해 캐주얼부터 포멀한 스타일까지 다양한 연출이 가능합니다.
이번 오리털 파카에는 내구성과 경량성을 모두 고려한 고급 플라스틱 지퍼가 사용되었습니다. 금속 지퍼와 달리 추운 겨울철에도 손쉽게 여닫을 수 있어 손이 시린 날씨에도 편리하게 착용하실 수 있습니다. 손가락 시린 것도 엄청 힘든 이 겨울에 플라스틱 지퍼가 필수죠. 또한, 부드럽게 작동하면서도 견고하게 제작되어 오래 입어도 변형이 없습니다. 이렇게 쓱 내려갑니다. 소리도 안 나요.”


20년 넘게 의류 수출과 패션 캐주얼 브랜드 분야에서 일해 온 나는 쇼호스트들이 하는 말의 진위를 어느 정도 가려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거짓말을 찾으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보이게 하려는 그들의 노력에 감탄하게 된다.


내가 보기에 절대 USP(Unique Selling Point)가 될 수 없는 요소들조차, 쇼호스트들은 기능적, 정서적, 상징적 이익으로 포장해 설명해낸다. 그들은 숨이 넘어갈 듯한 호흡과 리듬으로 무엇을 말할지보다 어떻게 말할지에 더 신경을 쓴다.


특히 기본적인 옷의 기능이나 원단을 극찬하며 평범한 요소들을 특별하게 표현하는 그들의 열정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진다. 저렴한 가격에 맞추느라 다소 평범하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옷을 전문 용어와 함께 열정적으로 판매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의 평범한 삶을 돌아보게 된다. 만약 내 인생과 일을 쇼호스트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 일기와 질문 노트를 쓰고, 저녁에 회고록을 쓰는 내 일상에 대해 쇼호스트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나에게는 그저 반복되는 하루일 뿐이지만, 만약 그들이 나의 하루를 홈쇼핑에서 판매한다면 어떻게 소개할까?




사진의 거인(거장, 구루)라고 불리우는 앙리 까르띠에 블레송의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도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브레송의 '생 라자르 역 뒤에서, 파리 1932']



“나에게 카메라는 스케치북이자, 직관과 자생의 도구이며, 시각의 견지에서 묻고 동시에 결정하는 순간의 스승입니다. 세상을 ‘의미’하기 위해서는, 파인더를 통해 잘라내는 것 안의 우리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다고 느껴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집중, 정신훈련, 감수성, 기하학적 감각을 요구합니다.
표현의 간결함은 수단의 엄청난 절약을 통해 획득됩니다. 무엇보다도 주제와 자기 자신을 존중하며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자기다움' 교육 과정에서는 자신의 직업과 업무를 마치 블레송처럼 묘사해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일을 홈쇼핑 쇼호스트처럼 기능과 특징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블레송처럼 그 일의 본질과 가치를 이야기한다. 하루를 묘사할 때도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쇼호스트처럼, 다른 이는 블레송처럼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는 각자가 느끼는 가치와 의미, 그리고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나 역시 어떤 일을 할 때 쇼호스트와 블레송의 두 가지 관점으로 글을 써본다. 예를 들어, 이번에 발표할 브랜드 전략 보고서를 단순한 기획안으로 작성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자료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견하는 ‘브랜드 런칭 묵시록’을 작성한다는 예언가의 마음으로 접근한다. 사업 계획서 역시 단순한 시장 보고서가 아닌, 조직원 모두가 함께 보는 교향곡의 악보라 생각하며 작성한다.


예를 들면, 시장 조사를 다루는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시작하고, 자사 제품 분석에 해당하는 제2악장은 세밀한 단어로 꼼꼼하게 풀어낸다. 경쟁 분석과 마케팅 전략을 담은 제3악장은 3/4박자의 미뉴엣이나 활기찬 스케르초처럼 경쾌하게 표현하고, 마지막 제4악장인 브랜드 런칭맵은 강렬하고 극적인 피날레로 마무리 짓는다. 이렇게 한다고 보고서가 자동으로 잘 써지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과 이성, 그리고 나의 모든 에너지를 보고서에 온전히 쏟아붓고 싶은 것이다.


이런 감정이입으로 일하는 것은 나에게 종교 예식과도 같다. 매일 새벽과 늦은 저녁, 수도승처럼 내 방에 들어가 스탠드 조명을 켜고 오늘의 일기(대본)을 점검하며, 내일의 계획(대본)을 리딩해본다.

나는 블레송과 같은 마음으로 만년필을 고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글을 쓸 때 나는 골퍼들이 거리와 상황에 맞춰 클럽을 고르듯, 여러 개의 만년필을 꺼내 든다. 주제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에 맞는 펜을 고르고, 감동의 경사와 기억의 흐름에 따라 만년필을 선택한다. 때로는 하나의 만년필로 글을 끝까지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 중간에 멈춰 새로운 시작을 위해 만년필을 바꾼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글이 술술 써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나만의 글쓰기 예전(禮典)이다. 잘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며 내 생각을 온전히 음미하기 위해서다.


손에 잉크가 묻어날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칼에 베인 손가락에 묻은 혈흔처럼, 생각이 손에 스며든 듯한 기분이다. 산소가 있는 동맥은 선홍색으로 보이고, 산소를 잃어 이산화탄소가 흐르는 정맥은 검붉은 색을 띤다. 손등 위로 솟아오른 정맥이 파란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검붉은 정맥이 피부를 통해 파랗게 비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만년필로 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마치 내 심장에서 피가 뿜어져 푸른 정맥을 따라 손등과 손가락을 거쳐 펜촉(nib)으로 흘러나오는 듯한 ‘착각’ 때문이다. 글을 쓸 때마다 손등 위에 씰룩이는 정맥은 마치 스포이트로 짜낸 파란 피처럼 보인다. 그래서 내가 즐겨 쓰는 잉크는 로열 블루다.


볼펜은 볼을 굴려 잉크를 종이에 바르고, 연필은 흑심을 종이에 비벼 칠하며 쓴다. 만년필은 펜촉으로 종이를 긁어 잉크를 적시며 쓴다. 만년필을 좋아하는 이유는, 펜촉을 갈아 내 글씨체에 맞춰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라미 만년필의 EF촉이라 해도, 글의 주제와 종이에 따라 시간이 흐르면 전혀 다른 촉이 된다. 강성이 있는 스테인리스 촉은 마치 연필 흑심처럼 금방 닳지는 않지만, 오래 써야 비로소 내 글씨체에 맞는 펜촉이 완성된다. 때로는 1년에서 길게는 3년이 걸리기도 한다.


몽블랑의 금촉은 종이에 긁지 않고 조심스럽게 잉크를 묻혀 쓰기 때문에 몇 년을 써도 여전히 몽블랑만의 감각을 유지한다. 하지만 라미는 내 필압을 온전히 받아들여 시간이 흐르며 나만의 글씨에 맞게 펜촉이 변해간다.

마치 구석기 시대 동굴에서 고대인이 뾰족한 돌창을 만들 듯, 나는 만년필을 종이에 문지르며 나의 글씨체를 다듬어 간다. 펜촉은 종이에 닳아가며 어느새 나를 닮은 글씨체를 만들어 준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며 늙어가도 내 글씨체는 오히려 젊어지는 느낌이다.


만년필을 좋아한다고 해서 바둑판 같은 원고지에만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만년필로 쓰는 글은 초고에 가깝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키보드로 화면을 보며 작업한다.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본다고 생각이 절로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키보드를 칠 때는 마치 피아노를 연주하는 기분으로 키보드를 고른다.


나는 손가락의 압력으로 생각을 눌러 글을 찍어내는 듯한 감각을 주는 기계식 키보드를 쓴다. 피아노마다 건반의 압력이 다른 것처럼, 글의 주제에 따라 갈축, 청축, 적축, 황축, 저소음 적축 등 다양한 키보드 스위치를 고른다. 이렇게 여러 개의 키보드를 사용하는 것도 글을 잘 쓰기 위한 수집은 아니다.


자전거나 사진 장비에서는 '장비빨'이 도움이 되었지만, 글쓰기에는 장비가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 같다. 다만 글쓰기를 음악처럼 즐기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최면을 걸며 그런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글을 쓰는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피아노를 치듯 키보드를 두드릴 때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키보드로 글을 쓰는 가장 큰 매력은 눈을 감고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손가락이 자판 위치를 기억하고 있어 눈을 감은 채로 글을 느끼며 힘을 빼고 쓸 수 있다. 마치 피아니스트가 악보 없이 눈을 감고 연주하듯, 나도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생각을 더듬으며 글을 쓴다. 눈을 감고 글을 쓰는 감각은, 마치 박쥐가 초음파를 통해 방향을 잡는 ‘반향위치결정법(echolocation)’처럼, 어둠 속에서 글자를 낚아채는 묘한 맛이 있다.


피아니스트는 악보를 보지 않고 외워 연주하는데, 이를 '암보(暗譜)'라 한다. 1837년, 클라라 슈만(1819~1896)은 18세에 음악 역사상 처음으로 암보 연주를 선보인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를 악보 없이 외워 연주했고, 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외워서 연주하면 힘차게 날갯짓하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분입니다.”


슈만이 눈을 감고 연주할 때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꼈다면, 나는 박쥐가 어두운 동굴에서 사냥하듯, 어둠 속을 헤매며 쓸 만한 단어와 기억을 찾아 다닌다.

거듭 말하지만, 글을 쓰는 펜이든 키보드든 여전히 어렵고 두렵다. 키보드 연주(?)와 박쥐처럼 더듬는 글쓰기는 그저 글을 즐기기 위한 나만의 착각과 환상일 뿐이다. 하지만 그 환상이 글쓰기에 작은 즐거움을 더해준다.






자신의 삶을 쇼처럼 보여주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쇼를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다. 우리는 직장에서 보여주기 위한 일과 남들에게 보여주는 삶을 산다. 곧 시작될 인사고과도 결국 1년 동안의 삶을 평가자에게 ‘쇼’처럼 펼쳐 보이는 시간이다. 우리는 스스로 광대가 되어 각자의 무대에서 평가받기 위한 쇼를 한다.


반면, 후자는 자신의 준비된 쇼(공연)를 삶으로 보여준다.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타인을 위해 꾸며진 쇼를 할 필요가 없다. 은퇴나 퇴직 후에 비로소 이러한 자유를 얻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이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려 애쓴다. SNS에 놀랍지도 않은 일상을 특별한 의미로 꾸며 올리고, 사람들의 박수를 받기를 바란다. 광대와 같은 습성이 몸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제는 삶을 꾸며 보여주기보다는, 내가 진정으로 준비한 나만의 쇼를 통해 내 삶을 표현해보자.

나만이 할 수 있고,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나의 쇼는 무엇일까?

은퇴했다고 쇼가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라, 나만의 무대에서 내가 나에게 보여줄 쇼를 준비해보자. 평범한 일상에도 스스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여, 내가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는 나만의 쇼를 만들어가자.





 아래 교육 과정은 [더 이상 일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와 [두 번째 나] 책을 모두 읽으신 사람을 위해 2025년에 시작될 [두 번째 나를 위한 자기다움 워크숍]입니다.


1주 차. 발견과 인정 (Uncover & Accept)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결정할 때 비로소 나답게 살 수 있듯이, 중장년의 전환기를 인정해야 비로소 성장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이 듦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나답게 사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이 듦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여정을 시작하자.


2주 차: 발견과 개발 (Discover & Develop)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직업명으로 그려진 목표였다. 중장년이 되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일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직업이 아닌 진짜 나의 정체성으로 답할 때가 되었다.


3주 차: 정의와 습관 (Define & Habit)

삶의 중요한 부분은 습관으로 이루어진다. 직업과 역할을 넘어선 정체성을 정의하고, 작은 습관을 통해 진정한 자기다움을 구축하자. 정체성은 반복된 선택과 습관에서 피어난다. 내가 되는 습관을 통해 자기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4주 차: 변화와 일상 (Change & Routine)

하루의 작은 변화가 인생의 혁신을 만든다. 하루를 설계하고 기록할 수 있는 종이와 연필만 있다면 충분하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가면 단순히 나이 들어갈 뿐이지만, 변화를 통해 내가 될 수 있다.


5주 차: 리셋과 설치 (Reset & Install)

나이 들어가는 것은 단순한 업그레이드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평가하며 진정으로 나다운 삶을 시작할 준비가 필요하다. 내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실천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자.


6주 차: 탄생과 명명 (Birth & Naming)

새로운 시작은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할 때 완성된다. 이제 새로운 정체성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자. 그것이 바로 자기다운 삶이다.


7주 차: 회상과 성찰 (Recollection & Reflection)

과거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과정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준비다. 실수와 성공을 회상하며 얻는 교훈은, 현재 나를 성장시키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8주 차: 기억과 창조 (Memory & Creation)

미래의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도구다. 상상을 통해 떠올린 기억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자.


9주 차: 목적과 유산 (Purpose & Legacy)

나의 유산을 정의할 때,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기억될 것인지가 분명해진다. 지금까지 나답게 살아온 삶을 정리하며 나의 인생 황금기를 준비하자.


10주 차: 연결과 공동체 (Connection & Community)

진정한 공동체는 혈연이나 학연이 아닌 같은 목적과 소명을 공유하는 사람들 속에서 찾아진다. 중장년의 삶은 직장인의 정체성을 넘어, 나와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부족의 일원이 되어가는 여정이다.








관련 사이트 


https://www.unitaslife.net/



https://www.theunitas.net/



https://www.goodbrandgoodecosyste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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