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짙은 향의 유자 , 당신의 정情

by 전성배

계절은 입춘立春, 입동立冬같은 절기의 이름으로 그것이 도착했음을 알 수 도 있지만, '제철'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는 농수산물로도 그 때가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봄을 알리는 부산의 대저 토마토나 여름을 알리는 수박, 가을을 알리는 단감이 그 예다. 그럼 겨울은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시기가 바뀌어 버린 딸기나 귤도 있겠지만, 겨울과 가을의 구별이 모호한 11월에 찾아오는 유자야 말로 겨울을 알리는 과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얀색과 푸르스름한 색을 수시로 띠는 겨울은 차갑고 냉랭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이는 어색한 사람과 한 자리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안긴다. 하지만 그런 계절의 문턱에 찾아오는 레몬과 비슷한 색이면서도 그보단 얕고 산뜻한 향을 내는 유자는, 겨울의 냉철함을 환기시키며 등장한다.


겨울에 접어든 이 계절에 작은 봄과 같은 유자. 그 향은 그렇게 겨울을 기다리는 몇 가지 이유 중 하나가 되어준다.

와카레미치

유자


중국 양쯔강 상류가 원산지로 알려진 유자는 우리나라에서 꽤나 오래전부터 재배되어 왔다. 기록에 따르면 840년에 장보고가 당나라 상인에게 얻어 온 것을 시작으로 널리 퍼졌다고 한다. 현재는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유자는 아쉽게도 레몬과 비슷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신맛을 갖고 있어, 생식보다는 요리에 활용하거나 청을 만들어 소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유자는 신라의 무장으로써 청해진을 설치하여 당나라와 신라, 일본을 잇는 해상 무역을 주도했던 장보고가 시발점이 되어준 덕분인지, 우리나라에서는 해풍이 불어오는 전남 완도, 고흥, 장흥, 진도, 해남과 경상남도 거제, 남해, 통영 등에서 재배되고 있다. 시중에서는 고흥의 유자를 최고로 치는데, 이유는 온난한 지역이 적격인 유자가 따뜻한 남해의 해풍이 꾸준하고 풍부하게 불어오는 고흥 지역의 특성과 어우러져 나온 결과라 생각된다. 의견을 입증하듯, 고흥 유자는 타 지역에 비해 맛과 향이 진하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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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는 유자로


일교차가 극심한 요즘에는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지만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연은 감기를 보듬어 줄 좋은 약을 한 두 개쯤 계절마다 비치해 두는데 유자가 그중 하나이다. 감기는 온도가 내려감에 따라 차가워지는 공기가 사람의 기도로 들어가 혈액 공급과 면역 세포 활동을 방해하면서 발병하는 것인데, 이때 비타민C가 면역력 보호에 탁월한 효과를 지녔기에 감기에는 비타민C 섭취를 권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유자가 비타민C로 유명한 레몬, 귤과 비교해 3배 이상의 함유량을 자랑한다.


하나, 비타민C가 신맛을 내는 만큼 유자는 그 맛이 강해 청을 담가 섭취하는 방법이 가장 보편적이고 거의 유일하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소비자에게는 완제품을 사거나 직접 만들어서 먹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유자차가 알려주는 정


유자차는 그 재료인 '청'의 대량 생산과 저장 법이 개발됨에 따라,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차가 된 만큼 요즘은 카페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되었다. 하지만 공장에서 제작되어 나오는 유자청이 어머니나 할머니가 손수 썰어 담그시던 청에 비할 수 있을까? 어떤 것도, 그것이 청이 아닌 다른 것일 지라도 절대 비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릴 적 나는 감기가 유난히 잘 걸리던 아이였다. "개도 안 걸리는 여름 감기"라는 말을 툭하면 들을 정도로 계절을 떠나 감기를 자주 달고 살았다. 그래서 늘 '감기의 계절'이라 불리는 겨울이 가까워질수록 증상은 심해졌고, 그에 맞춰 할머니의 손은 분주해지셨다.


할머니는 매년 이 맘 때면 차가워지는 바람을 뚫고 시장으로 가 유자를 2~3kg 정도 사 가지고 오셨다. 그러고는 몸을 녹일 세 없이 도착하자마자 유자를 손질하고 큼지막한 유리병에 유자와 설탕을 섞어 담갔고, 약 2~3주 정도 묵혀 깔이 고운 유자청을 완성하셨다. 그럼 그것을 뜨겁게 데운 물에 한 숟갈 넣어 풀은 다음 나에게 주셨었다.


나는 그렇게 감기에 훌쩍일 때면 그 유자차를 수시로 먹었다. 느리지만 적당히 몸을 데우면서 몸에 들어온 '감기'라는 바이러스를 서서히 밀어내던 유자차는 마신 직후면 꼭 기분 좋은 졸음을 몰고 왔고, 난 단 한 번의 저항도 없이 그대로 잠에 빠졌다.

와카레미치

제 아픈 것만 알던 어린 시절, 유일하게 할머니의 사랑을 헤아릴 수 있던 것은 다름 아니라, 따뜻한 물에 직접 담그신 유자청을 한 숟가락 넣어 만들어 주시던 유자차였다.


가끔, 너무 어른이 되어버린 나를 보며 할머니는 얘기하신다. 마냥 만들어 달라며, 사달라며, 수시로 웃고 울기를 반복하고, 자신의 손길 한 번 없으면 위태롭던 어린 내가 그립다고. 할머니에게 유자청은 손주에게 본인이 필요하다는 물질적 증거 중 하나였을 것이다. 유자를 떠올리니 유난히 할머니의 생각이 더 짙어진다. 오늘 저녁에는 한 통의 전화로 본심을 전해야겠다.


이제는 수화기 넘어 전해 듣는 목소리와 한 번씩 마주해 밥을 먹는 시간만으로도 당신은 과분하게 나를 지키신다고.


본인은 그저 아쉬우시겠지만, 위로를 위해서가 아닌 내 사랑의 본심으로 전하는 말이니 부디 웃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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