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색이 짙은 연시

벚꽃은 보지 말아요.

by 전성배

싱싱하고 단단한 모양새야 말로 신선한 과일이라 인정받는 것이 그들 사이에서는 불변의 법칙으로 자리 잡혀 있다. 본연의 색은 가을에 풍작을 맞이한 곡식보다 더 짙어야 하고, 촉감은 다부지고 고와야만 누군가의 손에 한 번이라도 더 잡힐 수 있는 것이 자신들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런 사실에서 꽤나 괴리적인 녀석이 있다.


물러야만 비로소 걸맞은 이름을 달고, 하루가 다르게 수명을 다하는 듯한 깔의 쇠함은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 빨리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녀석. 바로 '연시'이다.

연시가 되는 감은 따로 있다.


연시는 처음부터 말랑한 살을 갖고 자라는 과일이 아닌, 기존에 우리가 아는 단단한 '감'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후숙 시킴으로써 말랑하게 만든 과일을 말한다. 그리고 연시가 되는 감은 통상적으로 우리가 알던 단단한 감 '단감'이 아니다.


그렇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추석을 기점으로 많은 물량이 풀리며 현재는 저장 단계에 들어간 단감을 박스째로 구매해보았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보았을, 단단한 단감 사이에 연시 마냥 푹 익어 있는 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답은 연시가 아닌 '단감이 물러버린 상태' 정도라고 말해야 맞겠다. 연시와 비교했을 때 시간이 경과해 물러버린 단감은 색깔이 탁하고 껍질 또한 질기며, 부드러운 식감이 아닌 먹었을 때 살이 입안에서 겉도는 이질감을 준다.


'연할 연軟'에 '감나무 시柹'라는 이름으로는 '연한 감'정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아, 단감과 연시의 관계를 '익은 정도의 차이'라 오해할 수도 있지만, 엄연히 우리나라 '토종 감'만이 연시가 될 수 있다. 앞서, '농산물과 사람 간의 순환' 그 첫 번째 연재인 '단감, 가을의 마지막 피날레'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단감은 일본에서 건너온 외래종으로, 떫은맛이 없고 단맛이 강해 우리나라에서 단단한 감으로써 주로 소비된다. 반면, 우리나라 토종 감은 오래전부터 '땡감'혹은 '떫은 감'이라 불릴 정도로 떫은맛이 강해 생으로는 섭취하지 않고, 한 차례 가공을 통해 소비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연시'로 만들어 먹는 것이다.


감에서 떫은맛이 나는 이유는 '타닌'이라 불리는 성분에 의해서 인데, 이 성분이 많이 함유된 재래종은 대부분 탈삽(타닌 성분을 불용성으로 바꾸어 떫은맛을 없애고 단맛을 남기는 작용)을 통해 연시가 된다.

연시와 곶감을 결정짓는 것


탈삽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자면 떫은맛을 내는 타닌 성분을 100% 불용성으로 바꾸는 것으로, 타닌이 단맛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닌 탈삽을 통해 불용성이 된 타닌이 떫은맛을 내지 않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떫은맛이 날아간 감은 당분만이 남게 되고, 익어갈수록 연한 살과 단맛만을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탈삽은 크게 '침시'와 '건시'로 나뉘며 침시는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연시를 만드는 방법이고, 건시는 곶감을 만드는 방법이다. 재래종은 이 두 개의 방법으로 연시 혹은 곶감으로 탈바꿈한다. 침시는 연시를 만드는 몇 개의 방법을 제시하는데, 보통 시중에서 접하는 연시는 '알코올 탈삽법'과 '가스 탈삽법'을 이용해 만들어진 것으로 2011년부터는 숯을 이용한 에틸렌 가스 발생제를 이용하여 연시를 만들고 있다.


하나의 과일, 3개의 이름


연시는 연감, 홍시, 반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모두 다 말랑한 감을 일컫는 말이니 어떤 이름을 써도 무방하기는 하나, 엄밀히 따지면 그 뜻이 조금씩 다름으로 구별해서 사용하면 더 좋다.


연시는 '연할 연軟'에 '감나무 시柹'를 사용하여 말 그대로 연한 감을 뜻하며, 이것은 '연감'이라는 단어와 같은 뜻을 갖는다. 반면 홍시는 '紅붉은 홍'자를 써 주황색이 아닌 붉은색을 띠는 연시를 칭한다. 마지막으로 반시는 연시가 아닌 '씨 없는 감'을 뜻하는 단어다.


경상북도 청도는 예전부터 씨 없는 감으로 유명했고, 씨 없는 감은 연시를 만드는 데 안성맞춤이다 보니 청도는 연시의 최대 출하지로도 정평이 나있다. 당연히 출하하는 박스에 하나 같이 '청도 반시'라는 로고를 사용했고, 이는 많은 사람들이 연시를 '반시'라 부르게 된 사연으로 연결됐다. 그러나 엄연히 씨 없는 감을 가리키는 말이니, 구별해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연시를 맛보다


계절은 마치 인종과도 같이 그 모양새와 피부색을 달리한다. 여름은 초록에 극도로 치우쳐져 있고, 봄은 발그레한 분홍 빛에 매료되어 있다. 겨울이 감정 따윈 모두 다 지운 창백한 파란색으로 자신을 감춘다면, 가을은 인자한 주황빛에 모든 것을 물들여놓는데, 풍작에 다다른 곡식과 얇은 가지에 달린 노란색의 배, 주황색의 감에서 느낄 수 있다.


연시는 그 색을 죽을 만큼 취한 이를 닮았다. 건들면 터질 것 같은 가녀린 피부 안에 가을을 최대한의 욕심으로 가득 품은 이 같다. 그것은 하루살이와 진배없는 모습. 어느 하루를 최고로 반질 거리고 영롱한 색을 뽐냈더라도, 하루만 지나면 그 색을 달리하고 탁 해져 버리곤 한다. 만약 당신이 과일 가게를 지나다 짙은 주황색으로 빛나는 연시를 발견했다면, 그 연시는 오늘 가장 탐스럽게 가을을 드러낸 것이다.


나는 언젠가 가을을 가장 예쁘게 품은 연시 하나를 샀다. 주황빛을 사방으로 곱게 뽐내고 있어 반으로 가르기가 아까운 녀석이었다. 그래도 먹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과일인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양손을 이용해 녀석을 반으로 갈랐다.


서울 인사동의 명물 '꿀 타래'가 이보다 더 달콤한 향과 실 같은 속살을 자랑할 수 있을까? 갈라진 섬유질이 수천 가닥은 되어 보일 만큼 촘촘했다. 반으로 쪼개진 연시를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누르니, 촉촉한 살이 껍질에서 들떠 나왔고 그것을 입안에 한숨에 넣고 씹었다.


실낱 같은 살들이 이와 이 사이에서 계속해서 끊어졌다. 달콤함은 마치 푸딩과도 같이 촉촉하게 퍼졌다. 기분 좋은 감의 향은 입안에서 점점 몸집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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