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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Apr 14. 2024

선배처럼 되고 싶지 않다.

살아낸 시간이 길수록, 몸에 닿은 경험이 많을수록 생각은 확장한다. 그래서 늘 보고 듣던 것이라도 경험이 많아지면 달리 보이게 된다. 살아낸 시간과 경험으로 계속해서 달리 해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올해 벚꽃을 보며 처음으로 낙사 중인 잎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익숙지 않던 직장 생활은 어느덧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간사한 놈이라 그런지 이전의 삶은 마치 여행지에서 온갖 일들로 숙식을 해결하며 살았던 휴가인 듯 아득하다. 아주 오랜 시간 나는 한국에서 외지 생활을 했던 게 아닐까. 실은 지금이 내 원래의 삶이었고. 그리고 이게 꼭 싫지만은 않은 건 인심 좋은 사람들 덕분이다. 일에 대한 만족감도 만족감이지만, 무엇보다 인심 좋은 사람들 덕에 조직에 익숙하지 않은 나도 능히 직장 생활을 해 나가는 중이다. 직장이라는 게 일이든 사람이든 어느 한쪽은 꼭 어렵기 마련이라던데. 혹은 둘 다 어렵거나. 나는 어찌 됐든 지금까지는 둘 다 그저 좋을 따름이니 감사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환경이 허락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누리기로 한다.


누구 하나 모난 사람 하나 없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료들을 보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래서 누군갈 특정해 글을 쓴다고 하면 나는 제 발이 저린다. 너무 많은 동료분들이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일 것이다. 다 너무 좋아서, 다 얘기하지 못하는 마음이 자꾸만 눈앞에서 넘어진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한 선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 사람은 나를 잎처럼 살고 싶게 한다.


이제 겨우 사십 중반의 그는 이미 수년째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를 보면 팀장이라는 직함과 책임은 마치 꿈처럼 믿기지 않는다. 팀의 장이라는 이름도 무겁고, 이에 마땅한 책임을 요하는 기대들은 두렵기만 한데, 선배는 그걸 다 어떻게 감당하는 것일까, 의구심만 든다. 수개월을 본 게 고작인 나는 이미 수년을 그런 무겁고 두려운 걸 달고 살았다던 그의 삶이 경이롭다. 대여섯의 팀원을 이끌며 성과를 내야 하는 건 기본 중에 기본. 동시에 언제 어디서 흔들릴지 모르는 팀원의 사정과 정신을 들여다보고 어루만져야 한다. 선배는 이미 몇 명의 자녀와 아내, 노령의 부모님을 책임지는 와중에 이것들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나 하나 겨우 건사하며 살았던 지난 세월은 사실 내 손만으로 이뤄낸 게 아니다. 아버지의 배려로 나는 적어도 먹고 사는 데에 드는 돈은 없었다. 조금 벌어도 굶어 죽지는 않으니 악착같이 글을 쓰고, 과일을 팔며 살 수 있었다. 나의 나리는 어떠한가. 남들은 이십 대 후반, 삼십 대 초반에 어떤 회사를 다니고, 얼마만큼의 돈을 벌고 또 모았다는데, 나리는  내게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비교하지도 않았고 보채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나조차도 믿기지 않는 이유들로 매번 나를 사랑한다고 해 주었다. 아버지 덕에 잠자리 걱정 없이, 나리 덕에 사랑받지 못할 걱정 없이 살았으니 나는 사실 내 몸 하나조차 나 혼자서 지켜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사실 최근에 일어난 어머니의 문제와 나리와의 결혼 준비에 흔들리는 중이다. 생경한 업무까지 겹쳐 있어서 나는 지금 전 생애에 걸쳐 가장 큰 지진을 느끼고 있다. 선배에 비하면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는 것들에.


선배는 이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일들을 감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무서울 정도로 어떻게든 말이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데, 아무래도 선배에게는 현대 물리학이 다른 형태로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또한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이런 생각 정도는 해야 선배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 이해로 선배는 그냥 나와는 다른 사람이니까, 나는 선배처럼 어차피 될 수 없는 사람이니 괜찮다고 합리화하기로 한다. 혹시라도 선배처럼 살아야 하는 순간이 내게도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스스로를 계속해서 세뇌시키면서.


"나는 떨어지는 잎이고 싶다.

다만 계속해서 추락하는 잎이고 싶다.

내가 떨어지는 발밑엔 아무것도 없어서,

그리하여 착지하지 못하는 끝없는 공허로 떨어지고 싶다.


피었다는 영광과 감동은 알지 못해도 된다.

그러니 졌다는 슬픔도 알려주지 마라.


나는 핀 적도 진 적도 없는 삶이고 싶으니."


나는 핀 적도 진 적도 없는 삶을 살고 싶다. 영광도 모르지만 절망도 몰라서 덜 기쁜 대신 덜 슬픈 삶을 살고 싶다. 그런데 자꾸만 삶은 선배와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전성배田性培 : 1991년 여름에 태어났다. 지은 책으로는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야자 시간』 이  있다. 생生이 격동하는 시기에 태어나 그런지 몰라도 땅에 붙어사는 농부와 농산물에 지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


aq137ok@naver.com

https://litt.ly/aq137ok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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