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을 벼르다 시작한 테니스
오래된 아파트에 이사 오니 관리 사무소 옆 귀퉁이에 반듯한 테니스 코트가 있었다. 누군가 말끔히 비질해서 흙바닥이 잘 정리되어 있고 하얀 라인이 그려져 있는 황토 코트였다. 이사 올 때 힐끗 지나가다 보고 '테니스장이 있네. 나중에 기회 되면 한 번 배워야지' 생각만 하고 2년이 지났다. 가끔 지나가다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을 언뜻 보며 부러움 마음이 들었지만 '내가 무슨 테니스야'라고 생각했다.
몇 주 전 테니스장 근처에 주차하다가 우연히 '테니스 회원 모집, 레슨 무료'라는 현수막을 보았다. 최근의 나를 생각해 보았다. 나이가 들수록 회사 일은 버겁고 뜻대로 되는 일은 점점 없다. 체력도 몸도 예전 같지 않다.
퇴근하고 돌아보면 물 먹은 하마처럼 몸이 무겁다. 나의 삶은 언제부터인가 단조로운 직선의 삶이었다. 직장의 책상과 집 안의 침대가 내 일상의 궤적이 되었다. 일상이 마르고 버석버석한 낙엽처럼 바스락거렸다. 새해도 다가오고 변화가 필요한 임계점이 다가왔다.
'나도 테니스 한번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생각과 실행의 거리는 원래 지구와 태양의 거리보다 멀다. '내가 테니스를 잘 칠 수 있을까?'라는 걱정부터 테니스 라켓이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 그리고 '얼마나 오래 칠 수 있을까?'라는 부정적 생각이 들어 테니스 레슨을 망설였다.
테니스 레슨을 고민하다가 오랫동안 테니스를 해 온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지금 테니스 배우기에는 늦지 않았을까?"
"당연히 늦었지. 그런데 지금 배우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늦은 거야. 지금 우리 나이는 잘하기는 어렵지만 즐기며 오래 하기에는 좋은 나이야."
"테니스 배우기 어렵다는데 잘할 수 있을까?"
"지금 필요한 건 자신감이 아니라 겸손하게 배우려는 자세야. 시작부터 잘하겠다는 마음 내려놓고 시작해 봐. 실제 레슨을 받으면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거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저절로 더 노력하게 돼. 내가 쓰던 라켓 줄 테니 일단 시작해 봐. 운동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어서 못 하는 사람이 더 많아. 배부른 소리 그만하고."
마음의 장애물을 넘는 방법
친구에게 받은 중고 테니스 라켓을 들고 평소에 신던 운동화를 신고 윔블던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처럼 굳건한 마음으로 아침 일찍 테니스장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벌써 운동하고 있는 회원들에게 어색한 인사를 하고 코트 한 쪽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코트를 바라보니 노란 테니스 공이 쇼핑 카트에 가득하다. 이미 레슨을 받는 회원들이 입김을 뿜고 숨을 헉헉대며 코트를 뛰어다닌다. 아직 초보라 라켓에 맞은 공은 방향을 잃고 사방으로 튄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데 좀처럼 공을 맞히지 못한다. 레슨을 해 주던 코치가 갑자기 나를 부른다.
"안녕하세요. 처음 오셨죠! 테니스 배운 적 있으신가요?"
"처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오늘은 기본 자세를 연습하고 가볍게 공을 쳐 보시죠."
테니스 레슨의 첫 단계는 네트 앞에서 손으로 던져준 공을 라켓으로 쳐서 넘기는 단순한 동작이다. 보기에는 정말 쉬운 동작이다. 그런데 코트에서 공을 받아보니 네트에 걸리면 다행이고 빗맞은 공은 사방을 튀었다. 공 몇 개를 쳤는데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코치가 말을 건넨다.
"공 맞히기 어렵죠? 하지만 꾸준히 연습해서 시합 때 원하는 곳으로 공을 보내면 짜릿해요! 강하게 치려고 하지 말고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쳐보세요."
인생도 힘 빼고 부드럽게
힘 빼기는 운동의 핵심이다. 하지만 초보는 자신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웃으며 코치에게 물었다.
"빨리 실력이 느는 방법은 없나요?"
"실력이 빨리 늘기를 바라면 시간 투자가 최고죠. 실력이 금방 안 는다고 마음이 조급해지면 지쳐서 쉽게 포기하게 돼요. 사람마다 자세가 조금씩 다르니 본인만의 편한 자세를 찾아보세요.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나오세요. 저도 처음에는 네트를 못 넘겼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신기하게 공이 네트에 걸리지 않고 넘어가더라고요. 그때가 언제라고 확신할 수 없지만 자세가 익숙해지면 공은 결국 네트를 넘어가요."
돌이켜 보니 인생에서 수많은 네트를 만났었다. 네트에 걸려서 좌절하기도 하고 네트를 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네트를 피해서 돌아가는 방법을 찾기도 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국 네트를 넘을 수 있는 나의 방법을 겨우 찾아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누구에게나 심리적 네트가 있다. 한 번에 넘을 수 없고 매번 걸려서 넘어지는 네트가 있다. 하지만 수십 번 시도하면 열 번에 한 번은 네트를 넘을 수 있고 그 경험이 쌓여 네트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할 수 있다.
테니스를 배우기 위해서는 여러 심리적 네트를 넘어야 했다. 나이, 창피함, 나태함, 조급함, 미루기 등 심리적 네트를 넘어서 겨우 테니스 코트에 설 수 있었다. 아파트 테니스 첫 레슨은 발목과 무릎, 허리와 어깨 통증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테니스장 코트에 선다. 지금 라켓에 맞은 공이 네트에 걸려도 괜찮다. 다음 공이라는 기회가 다시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강하게 직선으로 날아간 공은 네트에 쉽게 걸리지만 부드럽게 포물선을 그리는 공은 여유 있게 네트를 넘어간다. 이제부터 더 유연하게 부드러운 마음으로 살아봐야겠다. 앗! 저기 공 날아 온다. 나 이제 테니스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