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입구에 들어선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내 인생이 뭔가잘못 살았거나, 내가 뭔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았다. 누렇게 변색한 비닐장판이 발바닥에 끈적거리며 달라붙었고 어두운 터널 같은 복도 양쪽으로 토굴 같은 쪽방들이 붙어 있었다. 아주머니가 이 고시원에서 좋은 방이라고 보여준 곳은 A4 한 장 크기의 창문이 커다란 담벼락을 향해 나 있는 침울한 쪽방이었다. 창문이 있어 3만 원이 더 비싸다고 했다. 나는 다른 방을 보고 싶은 마음조차 없어서 그냥 그 방을 계약했다.
방안에는 책상과 일체형 책장, 의자가 전부였고 크기는 두 평이 겨우 될 정도였다. 내가 죽으면 관의 크기가 이 방 크기와 비슷하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잠을 자기 위해서는 의자를 책상 위에 올리고 책상 밑으로 다리를 뻗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합판으로 만든 가벽에서는 옆 방 사람의 기침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그 쪽방 안에서 나는 숨이 막힐 때마다 이곳에는 잠시 공부하러 왔을 뿐이고 임시로 머무는 것이라고 애써 나를 안심시켰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임용고사에 떨어지고 나는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 취업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아 회사 지원은 불가능해졌고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학원 강사 자리도 경력이 없는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사회에서 점점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자괴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밥값도 못 하면서 부모님께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여러 학원 낙방 끝에 어렵게 구한 학원 강사 자리는 학원 원장의 폐업으로 반년 만에 먼지처럼 사라졌다.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선 나는 구직의 마음을 접고, 어쩔 수 없이 임용고사를 다시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막상 시험을 보려니 시험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조급해진 마음으로 신림동 고시원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처음부터 고시원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밤이면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고 낮에도 공부는 하지 않고 멍하니 책상에 앉아 시험에 떨어지면 뭐 먹고살지를 습관처럼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차츰 고시원 생활에 적응하게 되었지만 가장 힘든 일은 아침밥을 챙겨 먹는 것이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습관 때문에 주로 새벽에 잠이 들었고 아침에 늦잠을 자니 아침밥을 거르기 일쑤였다. 고시원의 아침식사는 매일 아침 6시에서 7시에 제공되고 그 시간 이외에는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아침을 먹지 못한 날은 온종일 허기가 졌고 왠지 서글퍼서 눈물이 났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침시간이면 억지로 일어나 잠을 설쳐서 퉁퉁 부은 눈을 비비며 아침밥을 먹기 위해 지하 식당에 허겁지겁 내려가고는 했다. 아침 메뉴는 매일 콩나물과 계란 프라이, 김치가 전부였지만 허기진 속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한 끼였다. 스물여 명의 고시생들이 침침한 지하 식당에서 아무런 말 없이 밥을 먹는 모습은 언제 봐도 먹먹했다. 저마다 가슴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막막함, 불안감을 밥으로 꾸역꾸역 깊숙이 밀어 넣는 모습처럼 보였다.
아침밥을 먹고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방에 처박혀 하루 12시간씩 책상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낡은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시험일이 가까워질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과 시험에 떨어지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는 생각에 숨이 막혀 왔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 긴 밤이면 고시원 옆 언덕에 올라 아래 동네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산꼭대기 고시원 아래 번화가 술집에서는 현란한 네온사인이 아스라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곳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실없이 웃고 큰 소리로 왁자지껄 떠들던 시간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화려한 불빛을 보고 있으면 내가 인생 낙오자가 되어 세상 밖으로 밀려났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우울해졌다. 시험이 가까워져 질수록 떨어지면 영영 고시원을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졌고 자신감이 점점 쪼그라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평소 오르던 언덕의 반대편 쪽으로 무심히 발길을 돌렸다. 그러자 푸른색 형광등 빛이 강렬하게 퍼져 나오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늦은 시간 건물 전체가 불을 밝히고 있는 것이 의아해서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 불빛은 인근 고등학교 교실에서 강렬하게 쏟아지는 형광등 빛이었다. 밤 10시가 되었는데도 꺼지지 않는 불빛을 보며 절박한 마음으로 대학 입시를 위해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있을 고3 학생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예전에 저 학생들처럼 대학 입시를 위해 불안과 싸우며 책상에 앉아 있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대학 가는 것이 세상의 가장 큰 소원이었고 대학만 붙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믿었었다. 인생에서 처음 겪는 극심한 압박감으로 대학 입시를 앞두고 원형 탈모증까지 생겼던 때였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이제 또 막다른 취업 관문 앞에 서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 교실의 불빛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 고시원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서 저 아이들을 만나자.’
그리고 내가 겪은 고시원의 시간에 대해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수많은 실패가 내 앞을 가로막았고 그때마다 나는 좌절했고 자신감을 잃었고 도전이 두려웠다고 솔직하게 말해 주고 싶었다. 인생에서 빛나는 성공의 시간보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더 많은 시간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어른들도 아이들과 똑같이 실패를 두려워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사는 게 자신이 없어서 어디든 멀리 도망치고 싶다고 솔직히 말해 주고 싶었다.
나는 한참 어둠 속에서 시리게 푸른 교실의 형광등 빛을 바라보며 학생들이 품은 저마다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음습하고 비좁은 고시원 방에서 아직 이루지 못한 실낱같은 희망을 움켜쥐고 있는 고시생들을 떠올렸다. 그러자 갑자기 먹먹해져서 어슴프레 보일 듯 말듯한 이름 모를 밤하늘의 별을 묵묵히 한참 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