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구내식당에서 혼밥을

커버 사진 @ 영국국립도서관

by 구디너프

나는 혼밥을 좋아한다. 특히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먹는 혼밥은 부담이 없어 더 좋다. 점심시간에 일반 식당에서 혼밥을 한다 치자. 일인용 자리가 준비된 식당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곳에선 주인이 주는 눈칫밥도 함께 먹어야 할 것이다.


나는 밥을 천천히 먹는 편이기에 빨리 먹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밥을 삼키게 된다. 삼킨 밥은 소화가 잘되지 않아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방귀로 나오게 되고…(이런 말까지 여기 쓸 필요는 없지 않나? 내 글을 읽은 도서관 동료가 ‘샘 밥 빨리 먹으면 방귀 낀다면서요?’ 라고 물으면 어떻게 할텐가. 그럴 땐, ‘먹고 끼는 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 아니니?’ 라고 답해줘야지.) 아무튼 그렇고, 이야기를 하면서 먹으면 밥 고유의 맛을 모르고 먹게 된다. 나는 밥과 나, 일대일 데이트를 좋아한다.


그것 말고도 내가 구내식당에서의 혼밥을 즐기는 이유는 또 있다.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식당은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혼자 먹는 사람도 함께 먹는 사람도 있다. 함께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먹고, 혼자인 사람은 대부분 폰을 보면서 먹는다. 나처럼 멀뚱거리며 먹는 사람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그래서 타인과 눈 마주칠 염려 없이 나는 마음껏 사람들을 관찰한다.


일반 도서관 구내식당과 다르게, 철도 씹어먹을 한창때의 학생들이 있는 대학에는 셀프 코너가 있다. 달걀 후라이도 해 먹고 싸구려 식빵 조각이지만 구워서 딸기 잼도 발라 먹을 수 있다. 혼밥을 할 때 나는 일부러 셀프 코너 가까이 앉아 달걀 후라이 하는 사람들을 본다.


오늘은 아이돌처럼 차려입은 학생이 와서 세심하게 기름을 두르고 살살살살 달걀을 깨뜨렸고, 달걀이 익을 때까지 노래 한 곡 들으며 침착하게 기다렸다가 조심조심 그릇에 덜어갔다. 뉘 집 자식인지 번듯하게 잘 자랐다. 다음 아저씨는 저돌적이다. 셀프 코너에 있는 3대의 버너 중에 2대를 차지하고선 재빠르게 불을 켜고 달걀을 깨뜨려 넣는다. 급하게 하다 보니 깨진 달걀물이 테이블을 적신다. '한 번에 3개의 달걀이라…' 갸웃거리는데 동행이 다가온다. ‘아, 함께 온 사람에게 얼른 후라이를 해주고 싶었던 거구나.’ 아저씨는 입꼬리를 귀까지 끌어올려 웃으며 말한다. ‘이것도 나중에는 추억이 될 거야.’(사실 멀어서 잘 안 들렸지만 대충 그러한 말이었던 것 같다.) 세 번째로 온 사람은 초로의 남성. 특이한 점은 없었다. 군더더기 없이 아주 차분하게 후라이를 해갔다.


달걀 하나를 부치는 태도조차 사람들은 모두 너무나 다르다. 달걀을 테이블에 깨는 사람, 버너에 깨는 사람, 달걀끼리 부딪혀 깨는 사람. 후라이팬을 닦는 사람, 터는 사람, 아무 것도 안하는 사람. 달걀 노른자를 온전히 보존하는 사람, 휘젓는 사람. 완숙을 좋아하는 사람, 반숙을 좋아하는 사람.(나는 후라이팬을 닦지 않고 버너에 달걀을 깨 노른자를 휘저어 완숙을 해먹는 사람이다. 당신은 어떤가?)


자리에 앉아 밥을 씹는 사람들을 보며 다시 생각한다. 다르긴 한데 우리는 또 같지 않은가? 너도 나도, 어쩌다 이 세상에 와서 먹고살려고 밥을 욱여넣으며 애쓰는 중이잖은가. 우리는 이렇게 같고 또 이렇게 다르구나. 가슴 어디에선가 뜨거운 무엇이 올라온다. 나는 구내식당에서, 특히 모두가 검정 패딩을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겨울철에, 옹송그리며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며 떠먹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뜨거워진다. 연민이다. 연민은 타인의 고통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게(너는 나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 또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오전에 나를 화나게 했던 과장도 용서가 되고, 답답하게 만들었던 앞자리 동료도 이해가 된다. 입술과 잇몸 사이, 잇몸과 이 사이에 낀 음식 찌꺼기를 혀로 빼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 모두가 같은 존재라는 동질감을 다시 한번 느낀다.


오늘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데 책이 그 자리에 없어 화가 났다면, 조용히 집중해서 책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 자료실에서 큰 소리로 전화를 받아 시끄러웠다면, 내가 매일 앉는 자리인데 오늘은 웬 낯선 이의 소지품만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당황했다면, 종이책으로 읽고 싶은데 사서가 그 책은 훼손이 우려되어 보존용 서고에 들어가 있으니 대신 디지털 자료를 이용해 달라고 해서 짜증났다면, 너무 춥거나 더워서 불편했다면… 그럴 땐 혼자 구내식당으로 가서 천천히 밥을 먹으며 사람들을 관찰해보자.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또 같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면 곧 따뜻한 마음이 일어, 날 선 감정을 사르르 녹여버릴테니까. 나를 믿고 한 번만 해보시라.(아, 잘 안됐다고 민원 들어오면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