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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Jun 17. 2019

Lôro

Egberto Gismonti, [Sanfona]




  <Lôro>, 몇 년 전에 한 번 연주했던 곡이다. 찰리 헤이든이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 해에 작은 추모 공연이 기획되었고, 나는 1부를 맡아 그가 생전에 자주 연주하던 듀엣 편성의 곡들을 연주하게 되었다. 당연히도, 팻 메씨니와의 듀엣과 에그베르투 지스문티와의 듀엣음반에서 곡을 골랐다. 팻 메씨니와 함께 연주한 [Beyond The Missouri Sky], 그리고 에그베르투 지스문티와 함께한 [In Montreal]은 어쩌면 내 인생 음반이라고 해도 될 정도니까. 거기에다 키쓰 자렛과의 음반 [Jasmine]에서 한 곡, <Where Can I Go Without You>를 꺼내어 연주했었다.


  이 곡은 공연을 준비할 당시에도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연주해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진 다음 들으니 훨씬 더 좋다. 듀엣 버전 말고도 원곡이 있을 텐데 하며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플루트가 멜로디를 담당하고 드럼, 베이스와 피아노가 있는 밴드 편성의 곡이었다. 다시 들어봐도 브라질리언 음악 특유의 술렁이는 리듬감이 넘쳐나는 멋진 연주다.


어떤 곡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다 보면 -한번 꽂히면 몇 주에서 몇 달도 듣는데-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도대체 이 곡의 어떤 점이 이렇게 나를 사로잡는 걸까? 세상에 좋은 곡이란 수도 없이 많은데, 왜 유독 이 곡은 나에게 다가온 것일까? 나는 왜 이 곡에 이토록이나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걸까?‘ 하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계속하다 보니 내가 알고 싶던 것은 음악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란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이라고 누군가 얘기한다면 –많이들 했던 것 같다- 좀 간지러운 느낌일 텐데,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런 얘기를 하게 되었다.


  이 곡이나 다른 브라질리언 음악에서 종종 느끼는 축제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 문득 festive라는 영어단어가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 사전을 찾아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Festive, festiveness, 있다. 브라질리언 음악만큼, 아니 그 이상 좋아하는 재즈는 이제 너무 심각해져서 이런 느낌을 찾기 어려워졌다. 현대의 재즈는 스윙마저도 단정하다. 때때로 엄숙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시절 뉴올리언스의 음악은 festive 함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들은 장례식에서 돌아오는 행렬조차 축제였다. 하지만 요즘의 재즈는 그 나름대로 또 너무나 아름다운 다른 종류의 가치를 담고 있으니 내가 뭐라 할 건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 몸과 마음속 한구석에서 여전히 이런 음악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나 활기찬 곡을 들으면서 무엇인가를 상실한 것에서 오는 아련한 슬픔 같은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즘의 재즈에도 festive 함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음악을 들을 때건 연주를 할 때건 늘 축제와도 같은 기분을 느끼며 지냈다면 말이다.


  이 곡을 며칠째 반복해 들으며 만들어낸 망상이겠지만, 에그베르투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인생은 제법 슬프지만 한편으로 종종 아름답고, 우리는 그걸 감사하며 함께 누려야 한다, 축제란 그런 것이다.”라고. 언젠가 그를 만난다면 “나는 당신에게서, <Lôro>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그는 "아마도 그 말이 맞는 것 같네요." 하며 내 어깨를 툭 쳐줄 것만 같다.  






축제가 가득 담긴 음악, <Lôro>.

Provided to YouTube by Universal Music Group



그의 또 다른 곡 <Palhaço>를 오랫동안 듣고 또 들으면서 비밥이 아니고서도 얼마든지 감동적이고 설득력 있는 즉흥연주가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 템포는 연주 내내 빨라지다가 느려지기도 하고, 베이스는 종종 음정이 나가고 피아노는 계속 오타가 나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 모든 걸 뛰어넘는 거대한 음악이 있다.

Provided to YouTube by Universal Music Group



찰리 헤이든, 얀 가바렉과 함께한 트리오는 여전히 경이롭다.

Provided to YouTube by Universal Music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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