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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Apr 25. 2019

Wise One

John Coltrane Quartet, [Crescent]




  음악을 하는 이로 살아가며 얻게 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지금껏 음악을 업으로 삼아 생계를 꾸려갈 수 있었다는 건 분명 행운이었다. 하지만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과연 재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걸어온 인생이 내게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음악을 이전보다 더 잘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음악을 전공하며 수많은 시간 동안 울고 웃으며 보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음악을 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고작 그뿐인가 싶어 헛웃음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운이 좋은 날이라면 가슴이 터질 것처럼 벅차오르기도 한다.


  며칠 동안, 음악을 배워나가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마음 한편에 묵직하게 자리한 고민은 쉽게 떠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나 듣는 거지, 하는 생각에 도달했다. 나의 오래된 믿음이다.


  그러나 듣는다는 건 너무도 개인적인 일이라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듣는 행위에는 귀에 소리가 전해진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말을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어도...’ 하는 진부한 표현처럼, 아무리 ‘이 음악은 이러이러한 가치가 있어, 여기 이 부분 정말 멋지지 않아?’ 하며 애써 설명한다 해도 결국 그 음악을 만나는 것은 철저히 개인의 몫이다. 많은 경우에 음악은 듣는 이의 마음까지 가 닿지 못한 채 공기 중으로 사라지고 만다.


  나는 음악에서 무엇을 듣는가, 그것을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음악은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은가? 음악 안에 내재된 정신 –무어라 이름을 붙여야 할 텐데 달리 부를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청자에게 다가가 받아들여지는 과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데, 왜 타인의 경험을 엿보는 게 우리에게 필요하단 말인가? 쉽게 확신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듣는 음악을 이야기하려 한다. 지나치는 수많은 이들의 무관심과 멸시에도 어쩔 수 없이 길을 나서는 전도자처럼 말이다. 음악을 배우고 싶다면 음악을 직접 만나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밖에 없다고, 그걸 대신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전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어떤 한 사람의 마음에 음악이 가 닿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그렇다면 그 시작은 콜트레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19년 봄의 나라면 콜트레인을 말해야 한다.




  아내는 나를 이십 년 가까이 지켜보면서도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고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나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다. 원체 마음속의 감정이 표정에 다 드러나는 편이라 그쯤은 알 수 있다. 그 책이란 하루키의 소설이며 에세이고, 영화는 왕가위의 영화이다. <상실의 시대>며 <중경삼림>이라니, 물 빠진 청자켓처럼 지극히 1990년대 초반의 취향이다.


  그때의 대학생이라면 다들 전철에서 하루키를 읽고, 극장에서 왕가위 영화를 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 시절을 재즈를 들으며 보냈고 남들과 다른 취향에 제법 우쭐해했다. 학창 시절에 접했을 법한 인생의 많은 경험이 유예되었다는 걸 안 건 나중의 일이었다. 음악조차도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전공하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다. 하루키와 왕가위를 만난 건 서른이 넘어서였다.


  뒤늦게나마 1990년대의 감성을 누리는 동안 언제나 같은 문장이 마음을 건드렸지만, 종종 새로운 대사가 나타나 나를 놀라게 했다. 번뜩이는 문장은 꼭꼭 잘도 숨어 있었다. 소설도 영화도 글자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말이다. 다시 볼 때마다 ‘여태껏 대체 나는 뭘 봤던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같은 소설이며 영화를 늘 새롭게 볼 수 있었다.


  아마도 글이며 영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나를 아는 이들은 예민하기 짝이 없는 나를 기억하며 고개를 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이다. 장면 하나를 보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이내 생각이 꼬리를 물고 뻗어 나간다. 어딘가 헤매어 돌던 생각이 영화로 돌아오고 나면 정작 화면 속의 스토리는 한참 놓친 다음이다. 어쩌면 글을 읽고 싶은 게 아니라 내 생각과 감정을 촉발할 무엇이 내게 다가오기를 기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루키는, 왕가위는 어김없이 그 무엇인가를 들고 내게 다가온다.


  콜트레인도 그렇다.




  아, 제발 좀 그만둬! 하고 소리를 치고 싶다. 비밥! 하면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하고 외치는 것 말이다. 콜트레인! 하면 sheets of sound! three tonic system! Coltrane changes! 하는 것 따위 말이다. 이십 년도 전 일인데, 한 군대 동기-원래부터 마음에 들지 않던-는 내 [Giant Steps] 시디를 보고 “오오, 콜트레인! 죽이지”라고 했다. “너도 콜트레인 좋아해?”, “아니.” 재즈가 교양 상식이던 시절의 서울대생은 그랬다. 나도 프랑스 영화감독의 이름을 조금씩 외워두었으니까 별반 다를 게 없다. 지금 돌아보면 제법 부끄럽다.


  하지만 아는 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말에 갇힐 만큼 콜트레인은 작지 않다. 내게 있어 콜트레인은 감정이다. 성숙함이며, 거대한 정신이다. 그의 사운드 자체가 콜트레인이다. 이 모든 걸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콜트레인을 들으며 새삼스레 무언가를 다짐한다.


  레코드판을 돌리고 바늘을 얹어 <Wise One>을 듣는다. 번거로운 이 행위가 음악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의식이기를 바란다. 이미 시디로, 애플뮤직으로 셀 수 없이 들었으면서도 뒤늦게 레코드판으로 듣기 위해 기꺼이 몇만 원이라는 비용을 지출했다. 그러고 보면 정성스레 헌금하는 신도의 마음 같기도 하다. 콜트레인의 정신이 나를 일깨우기를 바라는 걸까.


  멜로디를 두 번, 루바토로 제법 길게 연주하고 나서 콜트레인이 뒤로 빠진다. 이내 맥코이 타이너가 블락 코드 중심의 솔로 아닌 솔로를 연주한다. 첫 곡 <Crescent>부터 계속 실수가 반복되는 지미 개리슨 때문인지, 맥코이는 제법 신경질적인 느낌이다. 종종 왼손에 필요 이상의 액센트가 붙곤 한다. 그러면 지미는 움찔하면서 뒤늦게 코드를 따라 음을 바꾼다. 그들을 지켜보면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콜트레인의 기다림을 듣는다. 잠시 콜트레인을 잊고 맥코이를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새 콜트레인이 스윽, 하고 그들 곁에 선다. 콜트레인은 한숨으로 공간을 순식간에 채워버리고, 나는 지금까지도 소리가 전혀 비어있지 않았는데, 하며 새삼 놀란다. 해마다 가을이면 왕가위의 영화를 보며 이제 곧 저 문장이 나올 텐데 하다가도 여전히 가슴을 찔리듯이, 나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콜트레인에게 굴복당하고 만다. 이쯤이면 어떤 랭귀지를 쓰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 따위는 저 멀리 사라지고 없다. 그저 소리이고 정신이다. 여전히 무심한 듯 휘적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엘빈의 심벌이며 스네어에 아주 조금씩 날이 더 서고 나는 울컥, 하며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낀다. <Wise One>을 매일같이 듣기 시작한 지 반년이 넘었는데도.  









존 콜트레인이 본 <Wise One>, 그 현자는 대체 누구였을까.  

Provided to YouTube by Universal Music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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