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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Dec 16. 2015

Georgia

Charles Lloyd, [The Water Is Wide]




  트위터를 제법 오래 써왔다. 하지만 일주일이 멀다 하고 주가가 폭락했네, 곧 망하네 하더니만 주인이 갑자기 일론 머스크로 바뀌고는 X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주변에 트위터를 쓰는 이들이 별로 없기 때문일 텐데, 여전히 얼마간 익명성이 느껴지기도 하고 해서 제일 편하게 사용하고 있는 플랫폼이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뭘 열심히 올리거나 그러진 않고, 그냥 꾸준히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고 있는 정도다.


 한국에 트위터가 막 서비스되기 시작되던 시절, 몇몇이 모여 시답잖은 이야기를 시시덕대던 때가 있었다.  당시의 나는 재즈 뮤지션으로 무언가 더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는 한계에 막막해하고 있었고, 재즈 이외의 음악으로 나의 길이 펼쳐질 수는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혹시 글을 쓰는 것이 나의 인생 후반부에 중요한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탐색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트위터가 조금 특별한 건 그런 기억이 온통 뒤섞여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삼십 대 중반에서 후반, 아직 꿈을 꾸던 시절의 기억 말이다.


  신기한 일인데, 재즈를 정말 좋아하는 몇몇 이들을 트위터에서 만났다. 그냥 각자의 직업을 갖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 음악을 업으로 하고 있는 이들 말고 -  깜짝 놀랄 만큼 오랜 시간 동안 재즈를 들어온 이들 말이다. 아마도 음악을 업으로 삼은 내가 그들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이런 걸 공감하고 있지? 음악을 그저 듣기만 할 뿐이면서, 하며 놀라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쩌면 그들이 가장 건강하게 음악을 듣는 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Charles Lloyd의 Georgia라면 내가 잘 아는 곡의 잘 아는 연주이다. 미국 유학 시절, 한 과목의 과제로 이 곡의 모든 악기 파트를 트랜스크라이브해서 악보로 제출한 기억이 있다. 아, 이 곡이 아니었나? 벌써 십 년이 넘어가는 얘기니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만, 이 연주의 피아노, 드럼, 베이스 파트를 거의 다 채보해 악보로 정리한 것이 집 안 어딘가에 있다.


  이제와 곰곰 생각해 보니 나는 그 과제곡으로 Oscar Peterson의 <You Look Good To Me>를 선택했었던 것 같고, 아내가 이 곡을 했었던 듯싶다. 그러나 누구의 과제곡이었는지 상관없이 나 역시 이 곡을 무척이나 좋아했었고, 싸이월드가 한창이던 당시에 이 곡에 대한 감상을 적어 두었었다. 나름 잘 썼던 글이었던 것 같은데, 하는 생각에 휴면 상태의 싸이월드 계정을 깨워 읽어보았다. 이 모든 번거로움은 트위터에서 알게 된 어떤 이가 이 곡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곡은 브래드 멜다우의 솔로 피아노 인트로로 시작한다. 클래시컬하다고 할까, 단정하고 조금은 깊은 슬픔의 정서가 깔려있는 듯한 몇 마디가 지나고 나면 곡이 시작한다. 드럼과 베이스가 등장하고 음반의 주인인 찰스 로이드가 멜로디를 분다. 찰스 로이드는 잘 안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려운 색소폰 주자이다. 1993,4년 즈음의 나는 키쓰 자렛의 수많은 음반들을 사 모으며 듣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찰스 로이드는 키쓰 자렛의 일생에 걸친 디스코그라피를 좇다가 만나게 된 연주자인데, 미국 유학 시절 종종 들렀던 중고 서점의 지하에서 어린 시절의 키쓰 자렛이 참여한 찰스 로이드의 음반을 두세 장 샀던 기억이 있다. 찰스 로이드는 내게 그 정도의 의미였다. 이 곡이 수록된 음반 [The Water Is Wide] 역시 브래드 멜다우가 참여했기 때문에 샀었다.


  이 음반이 재미있는 것이, 찰스 로이드와 드러머 빌리 히긴스는 비슷한 연배인데 비해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와 베이시스트 래리 그레나디어는 한참 주가를 올리는 젊은 뮤지션이라는 점이다. 아마 나이가 두 배 정도는 차이가 났을 것이다(관점에 따라서는 절반).


  이 세대의 차이는 발라드를 접근하는 방법에서 확연히 드러나는데, 빌리 히긴스는 지극히 전통적인 옛날 방식으로 발라드를 연주하려고 했다. 옛날 옛적, 댄스 플로어를 가정한 발라드는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을 수 있을 정도의 템포까지만 느려질 수 있었다. 혹은 그보다 더 느린 템포의 곡이라면 더블 타임 필을 바닥에 깔아주어 여전히 사람들이 춤을 출 수 있게 했어야 했다. 빌리 히긴스는 짧은 브래드 멜다우의 인트로 뒤에 바로 8분 음표를 연주한다. 곡의 템포보다 두 배 빠른 느낌을 제시해서 그 박자에 사람들이 발을 맞출 수 있게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아무도 그 리드를 따라오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침착한 발라드의 분위기를 셋업한 브래드 멜다우는 물론이고 멜로디를 담당한 찰스 로이드 역시 굳이 스윙 필을 따라가지 않는다. 아마도 한 스튜디오 안에서 브래드 멜다우는 콘서트홀을, 빌리 히긴스는 댄스 플로어를 상상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빌리 히긴스의 드럼 연주는 그래서인지 적극적인 스윙 필로 가지 못하고 조심스레 더블 타임 필을 던져보기도 하다가 뒤로 물러서기를 반복하며 멜로디가 끝날 때까지 시간을 보낸다. 둘 사이에 끼어 있는 래리 그레나디어의 베이스는 스윙을 연주하기도 하고 발라드를 연주하기도 하며 둘 사이의 공간을 채운다 .


  그리고는 브래드 멜다우의 피아노 솔로가 시작된다. 그때쯤이면 빌리 히긴스의 '이제는 정말 스윙으로 가야 하지 않겠어?' 하는 목소리가 들릴 지경이다. 조금씩 조금씩 브래드 멜다우 피아노가 움직인다. 연주는 어느새 발라드에서 스윙으로 넘어가 있다. 언제인지 시점을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점진적으로, 부드럽게 전환한 것이다. 곡의 브릿지 부분에 도달해 브래드 멜다우는 블락 코드를 연주하고 빌리 히긴스는 기뻐 화답한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도 전에 나는 이렇게 감상을 적었었다.


".... 이게 싫었다. 난 발라드는 발라드로 연주하는 게 좋거든. 멜다우도 버티다 버티다 '정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리지요' 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드럼 베이스를 카피해 보면서 계속 들으니까 그 둘 사이의 긴장이 매력으로 느껴졌다.

처음엔 '이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이러면서 딸려가지 않으려던 멜다우가 결국 빌리 히긴스를 인정하고 솔로에서 조금씩 조금씩 더블타임을 암시하다 결국 명확하게 더블타임을 인정하고 연주하니까 그게 반가운 빌리 할아버지는 멜다우의 블락 코드를 대번에 맞받아서 치고....

꼭 젊은 사람과 그 나이의 두세 배 되는 할아버지 사이의 대화하는 모습 그대로 같다. 처음엔 서로 절대 말이 통할 거 같지 않다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나서 기쁜 대화 상대가 되는 거. 그럴 때 젊은 사람이 좀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까지도. 긴장에서 화해로 향해가는 그런 과정이 이 곡 안에 담겨 있다."







  

나이가 한참 더 든 나는 이제 더블타임 필이 깔린 발라드 연주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Provided to YouTube by Universal Music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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