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은창 Sep 26. 2023

Goodbye Pork Pie Hat

Charles Mingus, [Mingus Ah Um]




  키쓰 자렛을 먼저 얘기하긴 했지만, 사실 찰스 밍거스에 대해 쓸 생각이었다. 내 오랜 기억 속에서 거칠기 짝이 없는 소리를 가진 사람. 그의 연주를 처음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 건 학교 숙제로 <Haitian Fight Song>을 채보하게 된 때였다. 물론 그 유명한 The Quintet의 메시 홀 라이브 음반을 듣기는 했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를 듣게 되는 음반이다. 밍거스가 어떤 연주를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옛날 음반인데 베이스가 잘 들리네, 하고 생각했던 정도. 베이스가 전혀 들리지도 않는 열악한 공연 실황 녹음에다 나중에 베이스를 더빙해서 발매한 음반이라고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차라리 더 선명하다.


  하여간 그는 <Haitian Fight Song>에서 더블베이스를 마구 쳐대고 있었다. 세련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연주였다. 좋게 말하자면 원초적인 에너지가 넘쳐난다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는 느낌이 강했다. 그의 험상궂은 인상에 딱 어울리는 거친 성격에 관한 일화도 몇 개 알고 있었으니 -아마도 그는 분노조절 장애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더더욱 호감은 가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옛날 재즈에 대한 애정이 그리 크지 않았어서 굳이 이 사람의 음악을 억지로라도 듣고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래, 뭐 당시에 유명했던 사람이겠지. 하지만 요즘은 더 훌륭한 연주자들이 넘쳐나잖아? 왜 굳이 이 사람의 음악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네', 그런 심정이었다.


  그 시절로부터 시간이 이십 년 가까지 지나는 동안 간간히 밍거스의 이름은 내 주변을 스쳐 지나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는 찰스 밍거스이고 나는 재즈 베이시스트이자 재즈를 가르치는 교육자이기도 하니까. 도통 피해 가기 쉽지 않은 존재지만 나는 용케도 그의 음악을 듣지 않고 버텨왔다. 그저 <Goodbye Pork Pie Hat>을 아는 정도였는데, 그것도 그의 오리지널이 아닌 다른 이들이 연주한 버전을 들어본 게 전부였다. 유학도 가기 전, 리얼북을 펼쳐놓고 한 곡씩 피아노로 쳐보던 시절에 코드와 멜로디를 뜨덤뜨덤 연주해 보며 이건 도통 잘 모르겠는 곡이네, 하던 기억이 난다.


  BBC가 제작한 다큐멘터리였을 것이다. [1959, The Year That Changed Jazz]라는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보게 되었다. 몇 년째 재즈의 역사를 가르치다 보니 이런저런 영상자료를 늘 찾아보기 마련이고, 아마도 추천 영상으로 옆에 떴었던 걸 클릭했었을 것이다. 아니면 1959년을 The Jazz Year로 부를 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음반들이 쏟아져 나온 해라는 것을 어디선가 접하고는 검색을 했었을 수도 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 오넷 콜맨의 [The Shape of Jazz To Come], 데이브 브루벡의 [Time Out], 그리고 발매는 그다음 해에 했지만 녹음은 1959년 말에 했던  존 콜트레인의 [Giant Steps]까지 모두 한 해에 일어난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되고는 정말 크게 놀랐었다. 책으로 재즈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저자가 나누어 둔 챕터에 따라 머릿속에 정보가 저장되기 마련이었다. 스윙 다음에 비밥, 그다음에 쿨과 하드밥 하는 식으로 말이다. 모달 재즈 다음에 아방가르드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꼼꼼하게 들여다보니 1959년의 미국에서는 그동안 응축된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재즈가 대폭발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한동안 재즈계는 복잡한 화성 진행 위에 극한의 멜로디를 끝도 없이 뽑아내는 경쟁을 했는데, 마일스는 그런 코드 진행을 버리고 고작 한두 개의 코드 위에 모드를 대응시킨 걸 곡이라고 써 왔다. 오넷은 곡에 쓰인 코드 진행을 쳐도 되고 안쳐도 되고 하여간 마음대로 하라고 찰리 해이든에게 말했다. 콜트레인은 그 이전까지의 없던 코드진행을 만들어내어 몇 달이고 연습해서는 기어이 <Giant Steps>를 완성해 냈다. 브루벡은 박자를 가진 실험을 시작했다. 이 모든 게 한 해에 이루어진 음악적 결과물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진심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그 옆에 밍거스가 나란히 거론되고 있었다. 뭐라구?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그런데 다큐멘터리에 깔리는 음악은 괜찮았다. 나도 모르게 흠, 이건 나쁘지 않은데, 하고 생각했다. 음반은 [Mingus Ah Um], 앨범 재킷은 눈에 익었다. 재즈 명반 100선 같은 리스트에 웬만하면 포함되는 음반이다. 그렇다고 해도 들어본 적은 없었다. 밍거스니까, 거칠기 짝이 없는 밍거스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영상이 덧입혀져 있어서 그런가 괜찮게 들리는 거였다. 그래, 그러면 아예 이번기회에 제대로 감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원래 밍거스는 작곡자로서 위상이 높은 연주자였다. 어쩌면 베이스 연주보다 그의 곡이 더 영향력이 있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곡 자체, 앙상블 전체와 편곡에 더 관심을 기울여 들어낼 생각이었다. 일단 쭉 듣자, 들어보자 하는 심정으로 악보를 컴퓨터에 띄워놓고 음반을 듣기 시작했다.


  첫 곡 <Better Get It In Your Soul>은 제법 재미있었다. 흑인들의 가스펠 교회가 연상되는 분위기에 빅밴드 편곡자여서 그런지 곡을 여러 섹션으로 구분해서 이런저런 편곡적인 장치를 심어둔 게 좋았다. 굳이 따지자면 연주자 개개인이 압도적인 역량을 가진 건 아니었지만, 짜임새 있게 편곡을 해두면 그걸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음악의 다이내믹은 제법 형성되기 마련이다. 편곡이 설득력이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두 번째 곡으로는 내가 아는 곡, <Goodbye Pork Pie Hat>이 이어졌다. 아니, 내가 아는 곡이 아니었다.


  멜로디며 코드 진행을 익혀보려고 피아노 앞에서 제법 여러 시간을 보냈었고, 심지어 몇 번 연주도 해 보았었지만, '뭔가 블루지한데 잘 모르겠군' 하는 기억으로 남았던 그 곡. 하지만 원곡을 듣자 숨이 막혀버렸다. 두 대의 색소폰이 유니즌으로 멜로디를 불어가는데, 그 둘의 호흡을 듣는 것이 더없이 좋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둘은 숨 쉴 지점을 맞춰두었다. 끊이지 않고 길게 이어가는 호흡으로 늘어지듯이 연주하라고 찰스 밍거스가 정해주었을 것이다. 어떤 프레이즈는 명확하게 레이드 백 해서 표현하라고 지시했을 것이다. 고작 한 두 음에서만 둘은 성부를 나누어 연주한다.


  그 호흡과 표현, 색소폰이라는 악기가 가진 뉘앙스를 전제로 하지 않고는 곡이 완성되지 않는 듯했다. 음악의 감정 대부분은 그 끊길 듯 말듯한 호흡에 담겨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피아노로 코드와 멜로디를 눌러보는 것으로는 이 곡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밍거스는 머릿속에서 이 음악을 들어내고는 동료들을 닦달했을 것이다. 이봐, 똑바로 좀 하라구, 여기에서는 숨을 쉬지 말고, 저 음은 높은음이지만 힘을 빼고 레가토 하게 불란 말이야, 하면서.







<Goodbye Pork Pie Hat>, 긴 숨으로 끊일 듯 말 듯 이어가는 두 테너 색소폰의 프레이징이 너무도 멋지다.

Provided to YouTube by Colombia



<Haitian Fight Song> 역시 지금 들으니 제법 멋진데, 그땐 왜 그렇게 싫었을까.

Provided to YouTube by Rhino Atlantic


이전 10화 The Wind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