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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Oct 11. 2023

재즈 스탠다드라는 장벽




  어려서부터 외우는 건 좀 잘하는 편이었다. 활자 중독 비슷한 아이였어서 책을 제법 많이 읽었는데, 거기에 더해 기억력도 나쁘지 않았으니 인생의 초반부는 쉽게 풀렸다. 물론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야 주변에 늘 있었으니 대단한 영재 그런 건 아니었고, 딱히 큰 걱정을 끼치지 않고 무난하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정도였다. 사교육이라고 해봐야 방학 때만 두어 시간 정도, 단과학원이라고 대형 강의실에 이삼백 명의 학생을 어깨가 맞닿을 만큼 몰아넣던 곳에서 수강하고 오는 게 전부였다. 아무래도 오전에 뭔가를 하고 오면 오후에 좀 빈둥거리며 지내도 마음이 덜 불편했었다.


  그건 대학생이 되고 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오전에 영어회화 학원을 가서 두어 시간을 보냈다. 그다음에 마치 노인이 소일거리 찾듯 서점에서 뒤적뒤적거렸다. 그럴 때 대형 서점은 제법 괜찮았다. 교보문고, 영풍문고, 종로서적.... 내가 들어설 때부터 빈 손으로 나갈 때까지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곳이었다. 강남역에 거대한 음반 매장, 타워레코드가 들어서고 나서는 서점보다는 타워레코드에서 시간을 보냈다. 청음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 음반을 몇 장이고 들었다.  


  대학생 시절 몇 년을 멍하니 보냈다. 굳이 방황이라고 말해야 하나 싶긴 한데, 매일같이 학교에 가긴 했으니 그 방황조차 온건했기 때문이다. 출석이라도 해야 적당한 학점이 나올 것 같았고, 그래야 부모님이 내 인생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름 전략적이었다고 할까. 무언가에 꽂혀서 앞뒤 안 살피고 달려가는 중이었다면 그렇게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인생의 방향이 잡히지 않았으니 무료한 일상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 오가는 길에는 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다. 지하철 소음을 막아낼 수 있을 만큼 시디플레이어의 볼륨은 8에서 10 사이에서 오갔다. 다행히도 여섯 정거장 정도만 가면 되는 짧은 구간이었던 게 청력에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학교 후문으로 들어가는 마을버스는 늘 만원이긴 해도 일단 그렇게까지 시끄럽지는 않았다.


  매일 아침 그날 들을 음악을 휴대용 시디 파우치에 옮겨 담았다. 케이스로직이라는 브랜드는 제법 탄탄한 열 장 들이 시디 파우치를 만들었었다. 수업 시간에는 대체로 졸거나 딴생각을 했다. 입학과 동시에 목적이 상실된 삶은 무료했다. 주변의 다른 이들이 고시 공부를 하건 아니면 대책 없이 술을 퍼마시며 놀건, 아니면 그 중간 어디쯤의 삶을 살건, 나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일부러 공강 시간이 서너 시간씩 뜨도록 시간표를 짰다. 날이 좋으면 건물 밖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어디에 들어가 음악을 들었다. 어차피 집에 일찍 돌아간다고 해도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런 삶을 몇 년 반복하다 입대를 했고, 2년이 휙 하고 지나 제대를 했다. 밀물처럼 조금씩 조금씩 내게 다가오던 인생의 무게가 그제야 갑자기 체감되었다.


  깨끗이 포기하기 위해서는 한 번 나의 전부를 걸고 도전해 볼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 몇 년이고 재즈라는 음악 주변에서 맴돌기만 했었다. 음악을 하는 인생은 도대체 어떤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해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도 막연히 있었다. 어찌 되었건 우등생 비슷한 인생을 살아왔으니 ‘내가 마음먹고 하면 어떻게든 웬만큼은 해낼 수 있다' 하는 자기 확신 같은 게 있었다. 그런 건 지금 돌이켜보면 작지 않은 재산이다.


  '일 년이다, 일 년을 온전히 투자해 보면 내가 재즈라는 음악을 할 만한 사람인지, 아니면 헛된 꿈이었는지 최소한 그걸 판단할 만큼의 경험은 생기겠지' 하고 생각했다. 음악을 하는 인생을 살 만하다는 확신이 생기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해도 후회는 남지 않을 테니 앞으로의 삶에는 도움이 될 것이었다.


  몇 달이 지나자 ‘아니 고작 이런 거였어?’ 하는 느낌이 들었다. 재즈는 오랜 시간 동안 도무지 어떻게 연주하는지 알 길이 없던 음악이었다. 그런데 고작 몇 달, 누군가에게 그 뒤에 깔려있는 음악적 논리를 좀 배우고 나니 이건 할 만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이야 서투르다고 해도 -이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앞으로 몇 년,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나면 어떻게든 해 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물론 그게 엄청난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몇 년도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외형을 갖추는 것까지는 금방이었다. 베이스라는 악기가 그렇다. 다른 이들이 8분 음표며 16분 음표를 연주할 때, 우리 베이스 주자들은 고작 4분 음표를 연주한다. 딱히 화려하지도, 재미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심지어 악기도 크고 무겁다. 사람들이 선호할 이유라고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그거 첼로예요?” 하는 질문을 받곤 한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저거 더블베이스야,” 하고 아는 체하는 남자의 목소리에는 은근 자부심 같은 게 섞여있다. 그만큼 비주류의 악기다.


  정작 인기는 없는데, 재즈 밴드에는 꼭 필요한 악기가 더블베이스였다. 몇 달 연습을 하고는 클럽에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20여 년 전의 서울 재즈 씬은 고작 그 정도였다. 더블베이스를 잡고 워킹베이스를 연주하면 일단 오케이, 그런 시절이었고 덕분에 나는 많은 기회를 얻었었다. 리얼북이라고 하는 몇 백 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악보집을 들고 다니며 그중 이삼십 곡 정도의 레파토리 안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의 연주가 돌고 도는 중이었다. <Stella By Starlight>, <My Romance>, <All The Things You Are>, <Corcovado>....


  그러니 곡을 외워야 한다는 말을 듣고도 뭐 그런가 보군, 하고 넘겼었다. 다들 리얼북을 펼쳐놓고 연주하던 시절이었다. 재즈 클럽에는 표지가 너덜너덜해진 리얼북이 여분으로 한두 권씩 있었다. 누군가가 놓고 간 다음 까먹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곡을 못 외워도 상관이 없었다. 연습이라고 해도 고작 몇 번씩 쳐보는 정도면 큰 문제없이 긱을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외워야 한다면 외워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이삼십 곡 정도라면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됐다. 씨 마이너 쎄븐 다음 에프 쎄븐 다음 비플랫 메이저 쎄븐.... 하며 외우거나 비플랫 키의 투 파이브 원, 하고 외우거나 별 상관이 없었다. 외우고 난 다음 공식을 이해하는 것과 공식을 먼저 이해하고 암기하는 것 정도의 차이였다.




  그런데 유학을 가고 나니 요구되는 레파토리의 수가 갑자기 열 배는 늘어나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는 열두 키로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고들 말했다. 코드 진행뿐 아니라 멜로디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가사가 있는 곡이면 가사를 외우라고도 했다.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연습하고 또 해내는 걸 옆에서 보았다. 그건 암기과목의 요점을 쓱 눈에 바르듯이 하며 시험 전에 벼락치기로 외우는 방식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새로운 곡을 외우며 한 주를 보내면 이전에 외웠다고 믿었던 곡이 자꾸 기억 속에서 흐려졌다. AABA의 형식을 가진 곡이면 B가 늘 기억나지 않았다. <Giant Steps>는 한 달 동안 꼬박 그 곡만 연습했다. 그러면 훨씬 쉬운 다른 곡들이 잊혀져서 연주하다가 얼굴이 빨개지기 마련이었다.


  음악에는 음악을 암기하는 방식이 따로 있다는 것을 점점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소리를 알아야 한다고들 했다. 굳이 멜로디며 코드 진행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 만큼 명확하게 들려야 한다고 했다. 처음 듣는 음악도 한 번 듣기만 하면 바로바로 파악해 내는 인간들이니 그들에게는 머릿속으로 곡이 명확하게 들리게만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 중 하나가 아니었고, 이는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만 겨우 비슷하게 흉내를 내는 정도라는 뜻이었다.


  재즈를 처음 배울 시절에는 모든 곡이 새로웠었다. 재즈 팬으로 몇 년이고 음악을 들어왔으니 멜로디가 귀에 익숙한 곡도 적지 않았지만, 그렇게 들어본 것과 연주하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격이 존재한다. 게다가 나는 몇 번 들어보는 것으로 곡이 파악되고 머릿속에 새겨지는 그런 재능은 없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없는 재능이긴 한데, 그렇다고 그게 딱히 위안이 되는 건 아니다. 내가 한국사 연표를 남들보다 쉽게 외울 수 있었던 것처럼 누군가는 음악을 소리 자체로 받아들여 저장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   


  예전처럼 워킹 베이스 몇 코러스 연습해 보고는 코드 네임에 스케일이며 코드톤, 릭 등을 끼워넣기하는 연습으로는 낯선 재즈 스탠다드 곡들이 머릿속에 저장되지 않았다. 연습량을 좀 더 늘리면 조금 더 기억에 남는 듯도 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코드 진행의 색깔이 들린다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열심히 외웠으니 생각이 조금 더 수월하게 빨리 돌아가는 것에 불과했다.


  영어로는 earworm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어떤 음악이 귀에서 계속 맴도는 현상을 말하는 단어다. 택시에서 의지와는 상관없이 잠깐 듣게 된 트로트곡의 간드러진 멜로디가 하루종일 귓속에서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은 일은 다들 겪지 않나? 요즘은 다들 귀에 이어폰이나 헤드셋 등으로 그럴 일을 원천봉쇄하고 다니는 것 같기도 하긴 하지만.


  재즈곡들이 earworm이 되어 나를 따라다니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몇 번을 들어보아도 음반에서 들려오는 멋진 연주는 대체로 너무 복잡하고 달팽이관은 그런 음악을 담아두기에는 너무 좁았다. 내 귀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정보의 양이 줄어야 했다. 결국 내가 피아노로 코드와 멜로디를 치는 길 말고는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피아노는 초등학교 1학년때 바이엘 하권을 치다가 그만두었으니 거의 못 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도 별안간 재즈 피아노에 매료되고 난 뒤 코드를 치는 걸 아주 조금 연습해 두긴 했었다. 피아노라는 악기가 두렵지는 않은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니 원곡의 멜로디와 코드 진행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연습을 해야 했다는 것이 있다. 한두 번 스윽, 하고 쳐보는 것으로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왼손으로 <Autumn Leaves>의 코드를 꽝꽝 누르며 오른손으로 멜로디를 치기 위해서는 몇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그렇게 코드진행과 멜로디 자체만 연습을 반복하다가 온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자려고 해도 귓속에서는 몇 시간 전에 연습실에서 내가 치던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울렸다. 드디어 재즈 earworm 한 마리를 기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는 그 소리가 지워지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면서 워킹베이스며 솔로를 그 위에다가 연습해 보기 시작했다. 아니면 다른 키로 멜로디와 코드 진행을 옮겨보기를 반복했다.


  글로 쓰니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이걸 반복하면서 몇 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 과정에서 곡의 난이도가 올라가기도 했고, 곡이 머릿속에 저장되는 속도가 아주 조금씩 빨라지기도 했다. 다른 키로 옮기는 것이 약간 수월해지기도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연습하고 연주해 온 곡은 굳이 코드 진행을 생각하지 않아도 그저 머릿속에 들려오는 소리와 지판 위의 음들을 잘 매치시켜주기만 하면 연주가 가능해지는 것 같았다. 나도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음악을 사고하는 것 같았다. 수준의 차이가 명확하다고 해도 프로세스 자체는 비슷해졌다.




  그로부터 또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수준의 차이를 느낀다. 아직까지도 음악을 더 세밀하고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한탄한다. 하지만 긴 좌절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명확히 성장한 게 있긴 하다. 듣는 능력도 조금은 나아진 게 사실이다. 그리고 들어내기 위해 모든 의지를 동원하여 집중하는 것이 습관이자 태도가 되었다. 이런 자세는 연주자로서의 나에게 확실히 큰 도움이 된다. 잘 알아듣는 것이 어떤 것이며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게 된 것도 있다. 그건 내가 잘난 사람인 것 같은 착각에 오래 머무르지 않게 해 준다.   


  그런 것에 더해서 조금 더 큰 걸 얻었는데,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오래 빠져 있지 않고 슬쩍 돌아 나오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전의 나는 재능이 부족한 나를 미워했었다. 사람들이 늘 하는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는 식의 말은 조금도 내 마음에 닿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삶은 명확히 다른 세계에 있는데, 내 몸은 엉뚱한 곳에 와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가 닿을 수 없는 대상의 뒷모습만 지켜보고 있는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을 멈추는 데에 이십 년은 족히 걸렸다.


  이제는 뭐 어쩌란 말인가, 그렇다고 내가 나 말고 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하고 받아들이려 애쓴다. 여전히 애써 노력해야 하지만 나라는 사람의 탈을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게 그래도 대충 할 만 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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