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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Oct 02. 2023

힘을 내요, 도파민




  오래간만에 여유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제법 긴 연휴가 시작되었지만 새벽에 눈이 떠진 탓에 피곤한 느낌은 온몸에 남아있다. 그래도 적당히 졸릴 때 한두 시간 낮잠을 푹 자고 일어나면 된다는 생각에 이른 시간이지만 조금만 미적대다 일어났다.


  찬물로 샤워를 하기 시작한 지 몇 주 되었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모기에 뜯겨가며 잠을 설치던 어느 날부터였다. 그때는 몸이 심하게 움츠러들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요즘은 샤워기의 물을 틀어놓고는 마음을 단단히 다잡아야 한다. 하나, 둘, 셋 하고 세고 나서 물줄기 아래로 발을 옮긴다. 온몸으로 찬물을 맞으면 당연하게도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도 몇 초만 지나면 견딜 만 해진다. 샤워 시간은 오분의 일 정도로 줄었다.


  찬물 샤워는 도파민 분비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앤드류 휴버맨이라고 유명한 스탠퍼드 대학의 신경과학자 교수님의 영상에서 봤으니 아마 맞는 얘기일 것이다. 찬물로 샤워를 하면 체내에 도파민을 지속적으로 분비하게 되는데, 그 총량은 코카인을 투여했을 때보다도 더 많은 정도라고 했다. 그래서 일상을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고 했다. 그리고 면역력 증진이며 체중 감량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고 했다. 뭐, 건강에 좋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실천에 옮기는 현대인이 몇이나 있을까. 끄덕거리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 이야기다.


  그런데 "돈 한 푼 들지 않는 일이니 해 볼만 하지 않나요, 체육관에 등록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복을 사야 하는 것도 아닌데." 하는 휴버맨 교수님의 말에는 바로 넘어가버렸다. 지금까지는 할 만 하지만, 십일 월이 되고 십이 월이 되면 어떨지 살짝 걱정이 되긴 한다. 아마도 그때가 되면 샤워기 앞에서 이십까지는 세어야 차디찬 물줄기 아래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샤워도 마쳤겠다, 커피를 만들어 홀짝이며 연습을 하려고 자리에 앉으니 오른손에 조금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통증이라고 하기도 뭐 한 가벼운 증상이지만, 악기를 연습하고 연주하는 것이 업이라 평소와 조금만 다른 느낌이 오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최근 이 주 정도, 연습을 꽤 많이 했었는데 그것 때문일 것이다.


  서글픈 얘기지만, 이 나이에 조금만 무리한 연습을 하면 실력이 늘기 전에 몸부터 다친다. 양 팔로 악기를 감싸 안다시피 하다 보면 허리가 좀 구부정해지고 어깨도 앞쪽으로 말린다. 중간중간 스트레칭을 하고 자세를 바로잡으려 신경을 써도 그저 잠깐일 뿐이다. 보면대에 놓인 악보를 쳐다보며 집중하다 보면 두세 시간이 휙하니 지나간다. 어떤 날에는 목과 어깨가 너무 뭉쳐서 대책이 없어진다. 극심한 두통까지 오는 날도 종종 있다. 며칠 열심히 연습하다가 며칠 강제로 쉬고 나면 모든 게 리셋, 원점으로 돌아가버리는 기분이 든다.


  그런 것에 비하면 손가락이 조금 뻣뻣하고 둔한 느낌인가, 하는 정도의 불편한 느낌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찜찜하게 계속 신경이 쓰이는 정도. 그래도 양팔에 맨소래담 로션을 바르고는 마사지를 시작한다. 한참 동안 주무르고 문지르고 하고는 비누로 씻어낸다. 냄새도 냄새지만 피부에 남아있는 끈적함을 지워내고 싶다.


  지난 이틀 정도 공들여 연습하고 있는 곡, <Hot House>의 멜로디를 다시 쳐 본다. 아니나 다를까, 잘 쳐지지 않는다. 편집에 서투른 유튜버가 업로드한, 화면과 음원이 미세하게 싱크가 안 맞는 영상을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양손 사이에 있다. 두 손의 컴비네이션 문제라고 할까, 오른손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아주 조금씩 밀린다. 그러면 원치 않는 잡음이 섞여서 지저분해지거나, 프레이즈의 타임 필이 흐트러지거나, 헛치는 음이 끼어들거나 한다.


  베이스는 두 손의 전혀 다른 움직임을 합쳐서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악기다. 현악기들은 대부분 그렇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왼 손으로 지판을 눌러 음정을 찾아내고 오른손으로는 활을 잡고 줄을 문질러 소리를 만들어 낸다.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옮겨갈 때 왼손의 운지와 오른손의 보윙이 잘 맞아 들어가지 않으면 끼긱, 하는 듣기 싫은 소리를 내거나 원하는 박자에 음정을 집어넣을 수 없게 된다. 의도하지 않은 뉘앙스로 어색한 표현을 하게 된다.


  기타도 마찬가지다. 프렛이 있어서 미세한 음정의 위치를 지판에서 찾아내야 하는 극한의 도전에서는 자유를 얻긴 했지만, 왼손이 음정을 찾아내고 오른손의 움직임을 합쳐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하는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활을 사용하는 대신 피크나 손톱으로 줄을 튕기니까 아무래도 활을 사용하는 바이올린 족의 악기보다는 조금 더 직관적인 느낌이 들긴 한다.  


  이건 피아니스트가 한 손가락으로 하나의 건반을 눌러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과는 다르다. 킥 드럼과 스네어, 심벌을 같이 연주해서 폭발적인 액센트를 음악에 던지는 것과도 다르다. 두 손을 다 사용해서 겨우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뿐이라니, 효율이 떨어진다고나 할까. 하지만 자기 위안이 필요할 때면 관악기 주자를 생각해 본다. 색소폰 주자는 양손으로도 모자라서 입술, 그 안에 숨겨진 혀까지 활용해서 겨우 투우-하고 한 음을 만들어낸다. 역시 각자의 고충이 있기 마련이다.


  아주 가끔씩 기술적으로 어려운 악기를 들고는 아니, 이게 왜 안된다는 거죠? 하는 것 같은 소리를 들려주는 사람도 있다. 이를테면 윈튼 마살리스. 내가 트럼펫 주자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지, 트럼펫을 불었다면 윈튼을 들으며 어떤 기분이 들 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반면에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악기라면 다들 빠르고 정확하게 잘 연주한다. 그러니 경쟁은 치열해지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연주력을 요구하게 된다. 그렇게 보면 결국 쉬운 악기는 없는 셈이다.   


  며칠 동안 연습했던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려 할 때 마음을 다잡는 것, 그게 지금 내게 주어진 과제이다. 이 정도의 곡이라면 슥슥 쳐낼 수 있어야 하는 게 맞다. 젊다 못해 어린 친구들도 작정하고 연습하면 무리 없이 연주해 낼 수 있는 수준이다. 그들이야 이런 구닥다리 스타일의 음악에 끌리지 않아 굳이 연습하진 않겠지만, 그건 취향이 다른 거고 역량의 차이는 아니다. 좀처럼 잘 쳐내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짜증을 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열등감이건 좌절감이건,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또 사로잡는다. 오랫동안 나는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한 나를 미워했었다.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끝없이 꼬리를 무는 생각의 고리를 어디에선가 끊어내려고 애쓴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양손을 턴다. 가슴을 쭉 편다. 그래도 여기까지, 제법 멀리 왔다는 걸 안다. 이십여 년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하던 연주를 하고 있다. 조금씩 성장하는 것에 발맞춰 자신에게 부여하는 꿈의 크기 역시 커졌으니 꿈과 현실 사이의 차이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언제나 비슷하다. 사십 대 후반, 지금의 내게 주어진 과제는 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를 덜 미워하는 것,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러면서 한 걸음 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말처럼 쉽지는 않으니 새벽에 찬물을 뒤집어쓸 때 분비된 도파민이 힘을 써주길 바랄 수밖에.








악기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베이스로 <Hot House> 같은 곡의 멜로디를 연주하는 게 쉽지는 않다.

Provided to YouTube by Universal Music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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