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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Oct 02. 2023

4분 음표로 걷기




  몇 시간 뒤면 큰 기대 없이 반쯤은 일하러 가듯 연주하러 나갈 것이다. 연주생활을 한지 벌써 이십 년이 훌쩍 넘어가고 나니 그런 날들이 많다. 이데아의 재즈는 늘 새로운 연주가 펼쳐지는 생명력 넘치는 것이겠지만, 현실 세계의 재즈는 자주 권태롭다. 즉흥 연주로 가득한 뻔한 음악이라니, 그것 또한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얼마간 이유를 알고 있긴 하다.


  팻 메씨니가 케니 지를 가차 없이 까내리던 인터뷰를 슬쩍 언급했었다. ".... 재즈는 정말 좋은 음악이다, 하지만 아주 좋은, 일부의 재즈만 그렇다, 아마도 90퍼센트의 재즈는 별로일 것이다....", 하면서 케니 지의 음악이 마치 재즈를 대표하는 것 같은 상황에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이 분 정도였을까, 길지 않은 인터뷰 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재즈는 정말 좋은 음악이다(끄덕끄덕), 하지만 일부의 재즈만 그렇다(끄덕끄덕), 아마도 90퍼센트의....(끄덕끄덕 끄덕끄덕).


  내가 연주하는 음악 역시 90퍼센트에 속할 것임을 안다. 아주 높은 확률로 별로인 재즈일 것이다. 세상에 넘치는 그저 그런 재즈를 한 번 더 선보이는 데에 일조하게 된다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서는 길이 상쾌할 리 없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어쩌면 그게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일단 하는 것, 시작한 일을 멈추지 않는 것, 언제 도달할지, 도달하기는 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들지 않는 그 10퍼센트의 세계를 향해 꾸준히 다가가는 것. 어쩌면 그 꾸준한 행위 안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몇 년 전에는 뉴욕에서 영업을 하는 한 일식 셰프의 하루를 영상으로 보았었다. 그의 일과는 온전히 예약을 받은 그날의 저녁 식사 준비에 맞춰져 있었다. 직접 생선을 고르고 손질하여 숙성시켜 식재료를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오픈 직전에 가게 안팎을 정돈하고는 꽃병에 꽃을 꽂는 것까지, 모든 크고 작은 일이 손님의 예약시간을 향해 있었다.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고작 8명의 손님만 받을 수 있는 식당이었다. 아침 여덟 시 반에 시작한 하루의 일을 마치고 나면 한밤중, 한 시까지 또 정리정돈이다. 그래야 다음 날의 동일한 일과를 매끄럽게 수행할 수 있게 된다. 그 일을 매일같이 반복하는 이가 한 마디씩 던지는 말에는 작지 않은 성찰이 담겨 있었다. 앳된 얼굴과는 다르게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시간이 지나도 가치를 유지하는 것에 의미를 두게 되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제아무리 비싼 돈을 주고 최신 기종을 산다고 해도 수명이 있다. 아무리 조심조심 쓴다고 해도 배터리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으니 시한부 인생이라고 해야 할까. 자동차 역시 그보다 비싼 만큼 조금 더 수명이 길 뿐, 한계점을 향해 출발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아, 잘 관리해서 타는 사람들 같으면 조금 다른 얘기일 수도 있겠네.


  2008년 혹은 2009년이었을 텐데, 처음 맥북프로를 사고는 몇 년이고 정말 잘 썼었다. 글도 많이 쓰고, 음악 작업도 적지 않게 했었다. 수명을 다한 배터리를 두 번이나 교체해 가며 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하지만 결국 그 녀석이 더는 버텨주지 못하는 때가 왔고, 그게 제법 슬픈 경험이었다. 그다음 컴퓨터로는 왠지 글도 잘 안 써지는 게 생각이 툭툭 막히는 기분이었다(음악 작업은 잘 되었다, 아무래도 훨씬 퍼포먼스가 좋아진 새 컴퓨터였으니).


  기계식 시계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점에서 위안이 된다. 적절히 관리해주기만 한다면 나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조금씩 낡아가기는 해도). 금속으로 이루어진 부품들은 분명 인간의 장기들보다 더 튼튼하니까. 사람들은 스테인리스 스틸을 정교하게 갈고 깎아 시계로 만들고는 갑자기 귀금속처럼 대한다. 변함없는 정확한 움직임 역시 빛을 잃지 않는 금붙이처럼 아름답다. 태엽을 감으면 한동안 멈춰 서 있던 시곗바늘이 움직인다. 그 움직임은 나의 육체가 소멸한 뒤에도 지속될 것이다.


  물론 기계식 시계에도 치명적인 흠이 있다. 대체로 꽤 많이 비싸다는 것. 하지만 그 점이 또 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쉽게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은 더더욱 그 대상을 갈망하게 한다. 사실 대를 넘어 물려주는 시계니 하는 얘기는 모두 사치품을 열망하는 소유욕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아닐까 종종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해도, 존 메이어가 거대한 IWC의 빅 파일럿과 함께 수없이 많은 무대와 그 주변의 호텔방을 보낸 이야기는 여러모로 마음에 든다. 빅 파일럿, 워낙 시간을 읽기 쉽게 만들어진 시계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슬쩍 눈길을 주는 것만으로 이륙한 지 몇 분이 지났는지 바로 알아볼 수 있어야 하는 도구였다. 철저히 기능적인 디자인이었다는 얘기지만, 지금에야 과연 누가 파일럿 워치를 가지고 비행기를 조종하며 항로를 계산하는 데에 쓸까 싶다(아마도 탐 크루즈 정도라면 영화에서 할 만하다).


  무대 위에 기타를 메고 선 존 메이어의 손목 위에서 빅 파일럿은 아무런 위화감이 없었다. 키도 덩치도 제법 큰 존 메이어라, 큼직한 시계는 아주 근사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시침과 초침이 하도 뚜렷이 보이는 손목시계라 객석에서 찍은 공연 사진에서도 몇 시 몇 분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음, 일곱 시 오십 삼분이니 이쯤이면 Neon을 부르고 있었겠군 하는 식으로 말이다.


  투어를 계속하다 보면 아티스트는 거의 매일 밤 새로운 도시로 이동하게 된다. 한참을 지속하다 보면 새로운 도시에 대한 기대감도 사라지기 일쑤다. 어차피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 공연장으로 이동하고, 사운드체크를 하고는 공연을 한다. 그걸 반복하다 보면 지금 어느 도시에 있는지도 깜빡깜빡하게 된다. 나도 일 년 정도 투어 밴드를 해봤는데, 진짜 그랬다. 투어를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나면 아무런 생각이 없어진다. 그냥 하루하루 투어 매니저의 지시에 따르게 된다. 자, 이제 공연 마쳤으니 각자 방에서 샤워하고 밤 한 시에 투어버스로 모이세요, 하는 식이다. 존 메이어의 경우에는 내일 새벽 여섯 시 반에 체크아웃해서 공항으로 이동합니다, 정도였을 것이다. 디테일은 달라도 본질은 비슷하다. 그는 지금까지 미국땅을 몇 번이나 돌았을까.


  공연을 마치고 늦은 밤에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는 머리맡에 그 빅 파일럿을 풀어서 세워놓았다고 했다. 마치 탁상시계처럼. 제아무리  빅 파일럿 시계라고 해도 모든 기억을 다 담아 두지는 못할 테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기억이 그 시계에 담겨 있을 것은 분명하다.


  식단을 바꾼 지 반년 정도, 적지 않은 살이 빠졌다. 대학생 때에도 경험하지 못했던 체중이 되었다. 바지는 벨트를 하지 않으면 그냥 흘러내려버리는 지경이 되었다. 그렇다고 벨트로 허리를 조이면 허리둘레가 온통 쭈글쭈글해져 보기에도 좋지 않고 불편하기까지 했다. 셔츠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오버핏이라고 우겨보려고 해도 그 한계를 넘어가버렸다. 어쩔 수 없이 옷을 하나둘씩 버리고 새로 사야 했다. 요즘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나 제법 공을 들여 검색을 했다. 사실 조금 신이 난 게 사실이었다. 어쨌건 십여 킬로그램을 빼고 난 뒤였으니까. 그러다가 청바지에 관심이 생겼다. 예전의 나는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체형이 아니었다.


  굳이 전통적인 방식을 유지해서 과거의 리바이스 청바지를 현재의 리바이스보다 더 그럴듯하게 재현해 내는 브랜드들이 있다고 했다. 역시나 일본 얘기다. 그중 하나, 모모타로 진즈의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았다. 사실 그 브랜드에서 나온 제품의 치수를 보아하니 길이가 너무 길어 살을 좀 뺐다고 해도 내가 입을 사이즈는 아닌 것 같아 아쉽긴 했지만, 데님 원단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웠다.


  실을 천연 인디고 물에 맨손으로 담갔다가 짜서 바람에 말리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장인의 손은 실과 함께 같이 시퍼렇게 물이 든다. 며칠이 지난다고 색이 빠질 것 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장인은 그 물든 손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이런 재래식 염색 기법을 사용해야 실의 겉은 인디고 염료에 염색이 되지만 안쪽은 흰색으로 남아있어 시간이 지나 청바지의 색이 바랠 때 특유의 희끗희끗함이 비쳐 나오게 된다고 했다.


  구식 방직기를 구해다가 낡은 부품을 교체하고 고쳐서는 어렵사리 원단을 짠다, 천천히, 거칠게. 작업 효율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은 얼씬도 하지 않는다. (1) 예전에 이런 식으로 만들었고 (2) 그런 방법이 좋은 제품을 내주었으니, (3) 같은 방식으로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믿음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이미 신념이 되어 버린 것이니 내가 딴지를 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렇게 원단을 만들고 재단하고 봉제해서 각자의 청바지를 만드는 몇몇 회사가 코지마라는 시골마을에 모여 있는 모양이다. 작은 데님 페스티벌까지 열 정도라고 하니 이쯤 하면 천안, 하면 호두과자, 하는 정도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청바지가 오래간다고 해도 현대의 기준으로 보자면 대단한 건 아니다. 목화솜에서 가늘게 뽑아 꼬은 실이 질겨봐야 얼마나 질길 것이며, 그 실을 가로세로로 촘촘하게 짜서 만든 천이 튼튼해봐야 또 얼마나 튼튼할 것인가. 다 상대적인 얘기다. 그때 그 시절, 금을 캐러 서부로 떠난 아메리카의 광부들에게는 최고로 튼튼한 원단이었다는 정도이다. 데님이라는 원단은 험한 작업을 하면서도 몇 년이고 오래 입을 수 있을 만큼은 튼튼했지만, 색이 빠져 바래가고 닳아서 구멍이 나거나 찢어지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청바지는 낡아가는 것, 나이 들어가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신기한 물건이다. 스마트폰, 컴퓨터, 자동차, 아파트.... 모두 새것을 좋아하는 시대다. 심지어 사람마저도 어리고 젊은 이들을 좋아하는, 젊음이 최고의 가치인 듯한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어찌 된 일인지 청바지만큼은 낡은 것을 좋아한다. 새것이라도 처음 살 때부터 몇 년 이상 낡은 느낌을 원한다. 청바지를 워싱 처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도 있었는데 그것 역시 제법 흥미로웠다. 거친 줄 같은 공구로 바지를 막 밀고 사포질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상처를 내고는 세탁을 하기를 반복해서 샘플의 색깔과 무늬에 맞춰가는 작업은 꽤 손이 많이 가는 모양이었다.


  그도 아니라면(이쯤 하면 데님 마니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생지 데님을 사서 빨지도 않고 몇 달이고 매일같이 입기를 반복하는 이들도 있다. 바지가 오랜 시간에 걸쳐 낡아가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긴다니, 이미 생지 상태의 청바지를 살 때부터 몇 년에 걸쳐 주름이 잡히고 해져갈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시간의 흔적이 데님 위에 상처로 남아야 나만의 바지가 완성이 되는 거라고 믿으며 말이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청바지는 명확하게 그 기대에 부응한다. 입은 사람의 경험을 온몸에 새겨가며 낡아간다. 양쪽 다리에 흰 수염 같은 주름을 그려낸다. 지갑을 넣어두던 뒷 주머니는 유독 빨리 닳아 구멍이 나기 직전이다. 걸을 때마다 쓸리는 다리 안쪽 부분도 꽤 희끗희끗해진다. 허리나 무릎 주변은 슬쩍 늘어나서 조금 여유가 생겼고 뻣뻣하던 원단은 점차 얇아져 부들부들해지기까지 한다. 이렇게 나이 들어있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 청바지 말고 다른 예가 있을까? 아, 악기. relic처리된 악기도 있으니까 있기는 하네.


  문득 시계며 데님 뒤에 가려진 장인들을 생각해 본다. 너무도 명확하게 유한한 존재가 그들의 손을 써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어떤 것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이 시계며 청바지에 자신의 기억을 의탁하는 동안, 장인들은 조금씩 늙어간다. 기술은 두어 세대 넘게 전수될 수도 있지만, 몇 대가 지나면 그조차도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에 청바지는 만들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굳이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 옛날 중세시대 기사들이 몸에 두른 갑옷을 우리가 굳이 만들고 입지 않는 것처럼.




  내가 꾸준히 연습하는 4분 음표를 생각해 본다. 과연 나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의 화려하던 시절을 기억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커다란 의미가 있어, 지금 너희들은 공감하지 못하겠지만.’ 하는 독백을 나도 모르게 내뱉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4분 음표를 제 자리에 집어넣는 것만으로 스윙 필은 생겨난다고 믿는다. 제 자리가 어디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4분 음표를 균등한 세 음표로 쪼갰다가 합치는 것이 필요하다. 때로는 네 개로 쪼개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리고는 슬쩍 어깨를 내밀듯이 4분 음표를 아주 조금 앞으로 밀어낸다. 자칫하면 빨라지기만 하니까 적지 않은 연습이 필요하다. 어쨌건 중요한 건 이 과정을 의식의 세계에서 훈련하여 무의식의 세계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생각하고 있는 것을 느낄 정도가 되면 이미 늦는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행위이다. 실제의 세상에는 오로지 4분 음표만 들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막연할 수밖에 없다. 나라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왜 없을까. 하지만 쉽게 이해받을 수 없을 만큼 세밀한 영역을 갈고닦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바로 알아차릴 만큼의 큰 덩어리가 아니다. 아무리 봐도 똑같은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미세하기 짝이 없는 시간을 나누고 또 나누고 있는 중이다.


  이제 곧 나는 수많은 4분 음표를 라이드 심벌이 쪼개는 박자 안에 집어 넣게 될 것이다. 그래도 포켓이 명확한 드러머와 함께하는 밤이라 그것만으로도 모든 게 한결 쉬워진다. 그건 다행이다.







이 젊은 셰프의 하루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여전히 기계식 시계란 사치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존 메이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샌가 조금 설득당하고 만다.




장인의 손이 저렇게 물든다는 것만으로도 존경심이 절로 이는 모모타로 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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