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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Oct 03. 2023

협상의 기술




  켄 번즈의 <Jazz>라는 다큐멘터리를 접한 건 미국 유학시절이니까 2000년대 초반이었다. 재즈 학과의 대학원생으로 석사과정을 하던 중이니, 교수님이건 친구들이건 다들 그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켄 번즈는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이고 <Jazz>이외에도 <The Civil War>, <Baseball> 등을 통해 미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작업을 계속해 왔었다고 한다. 그가 이전부터 재즈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나는 존경하는 이들의 영상을 한가득 접하게 되리라는 기대로 10부작 영상을 꼼꼼히 보았었다.


  하지만 10부작의 6화가 다 지나가도록 그저 루이 암스트롱이며 듀크 엘링턴 같은 그 옛날 얘기만 계속 반복하고 있어서 크게 실망했었다. 1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재즈를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인데 왜 초기 삼사십 년 간만 저렇게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지 이해할 길이 없었다. 이제는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어쩌면 감독은 균형감 있게 재즈의 역사를 조망하는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르지. 재즈라는 렌즈를 통해 미국 사회와 역사,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네' 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당시에는 우리 세대, 혹은 가까운 세대의 이야기는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제법 소외감을 느꼈다. 역사는 꼭 먼 옛날의 이야기여야 하나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가 연주하던 1940년대 후반, 사람들은 킹 올리버며 빅스 바이더벡, 시드니 베쉐 같은 사람들만 추앙하고 있었을까?


  마일스 데이비스는 1962년에 이미 다운비트의 Hall of Fame,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때면 마일스의 60년대 퀸텟 -웨인 쇼터, 허비 행콕, 론 카터, 토니 윌리엄스로 구성된- 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을 때라는 얘기다. 물론 [Birth of The Cool]이나 [Kind of Blue] 정도라면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 당시의 재즈팬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며 일어나는 역동적인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있었지 않았을까? 현대의 재즈 커뮤니티는 지독하게 지난날의 화려하던 시절만 곱씹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의 음악은 그렇게나 가치 없는 것인가?


  살짝 달갑지 않던 <Jazz>를 다시 보게 된 건 수업준비 때문이었다. "역사 수업을 하고 있기는 해도, 나 역시 여러분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연주자 -역사학자가 아닌-입니다." 하는 변명으로 매 학기를 시작하지만, 아무래도 좀 껄끄러운 기분이 들어 매 학기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고 생각을 정리해 본다. 역사책이건 다큐멘터리 영상이건 대체로 늦은 밤에 꾸벅꾸벅 졸면서 보니까 몇 번 봤다고 해도 기억나지 않는 게 많아서 늘 새로운 기분이다.


   대학원 과정의 수업이니 뻔한 역사적 사실 관계를 나열하기보다 고민해 볼 만한 논점을 찾아 같이 이야기해 보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재즈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라면 재즈의 역사 전반에 걸친 흐름 정도는 이미 잘 알고 있으리라고 가정해도 괜찮겠죠? 굳이 십 년 단위로 끊어서 스윙, 비밥, 하드밥, 이런 얘기를 하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그러면 학생들 중 반 정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나머지 반 정도는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윈튼 마살리스는 <Jazz>의 첫 편부터 주구장창 나와 전체 다큐멘터리를 이끌어가는 전문가 패널 같은 역할을 한다. 워낙에 탁월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지난 학기에는 다큐멘터리 초반에 나오는 “.... that negotiation is the art”란 윈튼 마살리스의 말에 눈이 확 떠졌다. 예전에 봤을 때는 빨리 좀 지나갔으면 하고 지루해하던 대목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던 말인데,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갑자기 저 말이 내게 훅 하고 다가왔다. 영화도 그렇고 책도 음악도 마찬가지인데, 작품은 늘 같은 모양으로 그 자리에 있지만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무슨 관심사에 정신이 팔려 있는가에 따라 늘 다른 부분이 보이고 들린다.



   “.... The innovation of jazz is, that a group of people come together and create art, improvised art and can negotiate their agendas with each other. And that negotiation is the art.” - Wynton Marsalis.

    ".... 재즈의 혁신이라면, 여럿의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즉흥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어 갈 때, 각자가 가진 의제를 협상해 가면서 창작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 협상의 기술이 바로 예술이다. -윈튼 마살리스



  오랫동안 내가 잘 연주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고, 또 그만큼 잘 연주하는 이들을 만나면 음악이 술술 잘 풀려갈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만큼 음악이 잘 그려지지 않을 때면 (1) 부족한 자신을 질타하거나 (2) 같이 연주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곤 했다. 나름대로 참고 누그러뜨리려 애는 썼지만 다 드러났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제법 부끄럽다.  


  하지만 윈튼 마살리스는 니고시에이션, 다시 말해 설득과 타협, 협상의 기술이 재즈라고 했다. 나는 그 얘기를 이십 년 정도 외면하다가 이제야 받아들이게 되었다. 협상의 기술이 곧 재즈라면, 주변에 타인이 있으며 그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야 설득을 하고 서로 타협하는 과정을 거쳐 협상이 완결되는 것일 테다. 쉬운 합의에는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어쩌면 즉흥 연주라는 것의 본질이 니고시에이션인지도 모른다. 내가 노래하고 싶은 멜로디와 주어진 원곡사이의 타협, 그게 즉흥 연주이고 재즈일 테니까. 어떤 곡의 화성이 나에게 조건으로 주어지고 나는 그걸 바탕으로 내가 그 시점에 노래하고 싶은 소리를 찾아 그 위에 던져놓는다. 무작정 다른 길로 갈 수는 없다. 내게 주어진 조건과 나의 직관 사이에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혼자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이들과의 대화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 재즈에서의 즉흥 연주이다.


  쉬운 합의가 아니라 끈질긴 협상 뒤의 타협,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되 나의 나 됨은 잃지 않으려는 투쟁, 그 힘겨루기가 만들어내는 예기치 못한 결과가 art of negotiation, 협상의 기술이며 곧 재즈란 얘기다. 이제 나는 그 협상의 기술을 갈고닦아야 한다, 그것이 재즈의 본질임을 인정한다면.







누군가가 딱 저 부분만 편집해서 올려둔 것을 보면 나만 감동받은 것은 아닌 듯하다.

켄 번즈의 <재즈> 중 일부, 만약 저작권 침해 사유가 있다면 즉시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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