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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Oct 11. 2023

지금, 여기에서 길을 잃기




  인스타그램이 대세가 된 지도 오래다. 어쩌면 인스타그램마저도 한물 간 다음인데 나만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사실 그 이전에는 마이스페이스라는 것도 있었는데- 은 열심히 했었다. 나의 정서와 그 시절이 맞아 들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은 달랐다. 이미지가 중심이 되어 그 자체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했다. 쉽게 말하자면 사진을 잘 찍는 게 필수적이란 얘기다. 나처럼 긴 글로 장황하게 말하는 이들을 위한 플랫폼이 아니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사용하고 있다. 굳이 십 대, 이십 대들의 삶을 엿볼 생각은 없지만, 그보다 조금 위의 세대들도 인스타그램으로 세상과 대화하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틱톡까지 쫓아갈 생각은 없다. 틱톡이 요즘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 필수적인 플랫폼이라고 한다면 그냥 뒤처지고 말 생각이다.


  젊음이란 뭔가 멋지고 힙한 공간을 찾아 모여들기 마련이고, 그런 곳에 그들만의 아지트를 만들곤 한다. 그러다가 제법 소문이 나고 알려지게 되면 조금 낡은 취향의 사람들이 섞여 들기 시작한다. 그러면 젊음은 슬쩍 자리를 피한다. 나도 그랬으니 굳이 억울해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때 어른들은 이런 감정이었겠구나, 하며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도다. 세상은 젊음을 숭배하고, 우리 모두는 한때 그 시기를 누리고는 어느새 주변으로 밀려나간다.


  십 년쯤 전이었을 것 같은데, 페이스북에서 잠시 바이럴 하게 돌아다니던 영상 얘기를 하려고 하다 보니 뭔가 다른 얘기가 새어 나와버렸다.




  브라이언 블레이드는 웨인 쇼터, 다닐로 퍼레즈, 존 패티투치와 함께 연주하고 있는 중이었다. 멋진 공연장에서의 가슴 벅찬 공연이었겠지만, 그걸 담은 영상은 화질이며 음질이 엉망이었다. 십 년쯤 전의 일이니 당연한 일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성능이 아주 떨어지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했을 것이다. 아마 공연장 스태프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찍었을 것이다. 이 분 정도 될까, 길이도 짧았다. 영상에는 웨인 쇼터 퀄텟, SF Jazz 어쩌구 하는 제목이 달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SF면 샌프란시스코다. 한동안 많은 이들이 선망해 오던 도시. 스탠포드와 빅 테크 기업들 덕분에 정신없이 변해가는 세상을 그보다도 몇 걸음 앞서 달려 나가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깃든 곳이었다. 뉴욕이나 로스에인절레스 같이 지독하게 큰 도시와는 또 다른 매력이 넘친다. 자연도 집도 거리도 아름답다. 당연히 관광객도 넘쳐났다. 겨우 며칠 둘러보았던 게 전부인데도, 들려오는 마약이나 치안에 관한 뉴스를 보면 약간 서글퍼진다. 나는 아름다운 곳이 여전히 아름다운 곳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바람을 가진 것뿐인데, 페이스북이며 인스타그램이 광고판이 되어버리는 것도 막을 수 없고,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들도 어찌할 수가 없다.


  여전히 샌프란시스코가 많은 이들에게 희망 가득한 도시이던 시절, 웨인 쇼터 퀄텟은 예의 그 추상적인 재즈를 연주하고 있었다. 딱히 어디부터가 곡인지 좀처럼 알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곡이 아닌 것도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재즈 연주 말이다. 다닐로 퍼레즈는 처음 웨인 쇼터의 밴드 멤버로 발탁이 되고 난 다음, 공연을 앞두고 "우리 리허설은 안 하나요?" 하고 물었고, 웨인 쇼터는 "How do we rehearse the unknown? - 알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리허설하지?"하고 답했다고 한다. 지극히 웨인 쇼터다운 대답이다.  


  대략 2000년 언저리, 젊은 후배들을 모아들인 웨인 쇼터는 좀 더 명확하게 곡을 가지고 연주했었다. 최소한 그들의 [Footprints Live!] 음반에서는 그랬다. <Sanctuary>, <Aung San Suu Kyi>, <Footprints>, <Juju>.... 그리고 내게는 좀 더 특별한 <Masquelero> 등등. 하지만 같이 연주한 시간을 쌓아가면서 그들은 점점 더 대담해지더니 곡이 없어지는 지경에까지 가버렸다. 저 영상에 담긴 공연 때는 어땠을지 확신할 수 없긴 한데, 그래도 대충 짐작은 간다.


  아마도 브라이언 블레이드가 무엇을 치는 것으로 공연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혹은 다닐로 퍼레즈가 그 역할을 한 날일수도 있다. 사실 그런 건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고, 당사자들은 기억조차 하지 못할 테니 내 마음대로 상상을 해 본다. 누군가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는 다들 각자의 소리를 세상에 꺼내어 덧붙였을 것이다.  


  그들은 도대체 왜 그런 소리가 세상에 필요한가 하는 의구심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오면 그걸 거침없이 따라갔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정 반대일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 이 공간에 이 소리가 들려야 할 이유가 있는지 확신할 수 있는 근거라고는 하나도 없으니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소리를 세상에 던져보지 않고는 알 길이 없다. 뭔가 마음속에 작은 떨림 같은 게 있었을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인 누군가가 먼저 말을 걸었을 것이다. 동료들에게, 관객들에게, 그리고 그들 모두를 감싸고 있는 허공에게.


  그렇게 그들은 마음껏 길을 잃고 헤매었을 것이다.




  약속 장소에 늦지 않고 도착하려고 마음먹은 날이라면 지하철을 타야 한다. 도착시간을 제법 정확하게 분 단위까지 맞출 수 있다. 정해진 노선을 정해진 속도로 달린다.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험상궂어진다고 해도 창 밖의 광경은 늘 똑같다. 오직 열차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만 달라진다. 하긴 그조차도 비슷비슷하긴 하다. 그런 게 지루하고 답답한 날이면 버스를 탄다. 같은 길을 달리는 건 매한가지겠지만, 그래도 휙휙 지나가는 창 밖에는 제법 많은 볼거리가 있다. 종종 교통 통제를 한다거나 도로공사 현장이 있어 꽉 막힌 길에서 갇혀있게 되는 낭패를 겪기도 하지만.


  하지만 새로운 걸 발견하고 싶다면 낯선 길을 걸어야 한다. 더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잘 마련된 등산로를 옆으로 하고 아예 길이 나지 않은 수풀 속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잠깐이면 괜찮아, 저기까지만 들어가 보고 돌아 나오면 되니까, 하면서 말이다. 그러기에는 적지 않은 믿음이 필요하다.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 남았고, 나는 길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으며, 체력도 충분하다는 믿음 말이다.


  그들은 이미 몇 번이고 산길 밖으로 걸음을 옮겨 봤으며, 그때마다 별일은 아니었다는 경험이 쌓인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질퍽한 진흙에 등산화가 발목까지 빠져버리는 일이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 그러다가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혀 작은 흉터가 남는다거나 하는 것은 그들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된다. 나같이 평범한 이라면 안전한 산길에서 내려다보는 것으로 족한데 말이다. 그들은 도대체 아무도 걷지 않았던 산속에서 도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기어이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일까?


  브라이언은 다른 셋과 함께 제법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이미 해가 기울어가고 있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슬아슬하게 바위를 지나 깎아지른듯한 산의 한쪽 벼랑을 등지고 선 것이었을까. 그때 브라이언을 지탱해 주던 장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스네어 스탠드가 고장 난 것이다. 비틀비틀하던 스네어 드럼은 결국 쓰러져서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얼마나 북을 심하게 두들겨댔으면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하드웨어가 견디지 못하고 고장이 난 걸까.


  하지만 그것도 브라이언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으리라. 음악은 바로 지금, 여기에 스네어 드럼의 강렬한 폭발음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요구에 브라이언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브라이언은 바닥에 떨어진 스네어에 허리를 굽혀 두들겨댔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스네어를 주워 들어 다리 사이에 끼웠다. 양손으로 쥔 스틱으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내리쳤다. 그 시점, 그때의 현재에는 그 소리가 세상으로 나와야만 했다. 브라이언은 그 광경을 보아야만 했다.


  제법 깊은 밤중이었는데, 십 년쯤 전의 나는 페이스북에서 이 짤막한 영상을 보며 “그래, 이게 재즈지”하는 혼잣말을 내뱉고는 흠칫 놀랐다. 원래 평소에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일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스윙 리듬도, 블루스 릭도 들리지 않는 추상적인 음악의 끝에서 나는 무엇을 발견한 것이었을까.  








웨인 쇼터 퀄텟의 <Masquelero>, 끝까지 듣다 보면 그들 스스로 감격에 벅차하는 게 명백하게 느껴진다.

Provided to YouTube by Universal Music Group



SFJazz에서의 웨인 쇼터 퀄텟, 그리고 being in the moment 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우리말로는 뭐라고 해야 할까 제법 고민했는데, '현재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어쩌면 현재성이야말로 재즈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조각일지도 모르겠다.

공연 실황을 관객이 촬영한 영상인 듯한데, 저작권 침해 문제 발생 시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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