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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Oct 11. 2023

박제가 되어버린 블루스를 아시오?




  유튜브에 제법 많은 플레이리스트가 존재한다. ‘재즈’와 ‘카페’를 같이 검색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성실한 몇 개의 플레이리스트를 발견하게 된다.


  호기심에 그들 중 몇 개를 클릭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카페에서 들려오던 음악이 그런 플레이리스트였다는 것 말이다. 개중에는 적지 않은 브랜드 파워까지 얻어낸 것도 있다. 이를테면 essential; 이라던가 말이다. 검색해 보니 3일 전에도 essential;은 Autumn Cool Jazz라는 플레이리스트를 업로드했다. <Autumn In New York>, <Take 5>, <Bobplicity>.... 나쁘지 않은 취향이며 선곡이다. 그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주문한 커피가 나올 때까지 서서 그런 플레이리스트를 듣게 된다. 길어야 일 분 정도겠지만.


  하지만 기존에 발매한 곡을 유튜브에 업로드하면 바로바로 구글의 이메일을 받게 된다. 잘 읽어보면 저작권 침해 사례가 있으니 영상을 내리거나 아니면 수익 전액은 저작권자에게.... 하는 이야기다. 구독자 수의 힘을 믿는 이들은 영상의 수입은 음원의 원작자들에게 전부 돌려준다고 해도 영상을 살려두는 것을 택할 것이다. 나도 한번.... 하면서 자신의 연주를 올려봤던 재즈 뮤지션들은 찜찜한 마음이 든다. 원곡이 있다고 해도 나의 연주인데, 내 솔로인데 그래도 나의 지분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니면 좀 더 똘똘한 친구들도 있는데, 직접 음원을 녹음해서 저작권 수입을 넘겨주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어차피 카페의 배경음악으로 소비되는 음악이란 적당히 괜찮으면 된다. 너무 강렬해서 주의를 끌면 오히려 적절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흘려들을 때 적당히 세련된 느낌이면 된다.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잠시 말이 끊긴 사이를 아무런 위화감 없이 채워줄 수 있으면 된다. BGM, 백그라운드뮤직은 원래 그런 거니까. 그런 음악을 만드는 건 사실 크게 어렵지 않다.  


  그리고 어떤 재즈는 기가 막힌 BGM이 된다. 이파네마의 해변가, 그리고 그 모래사장을 걷는 큰 키의 멋진 여성을 노래하는 톰 조빔의 곡 같은 경우가 그렇다. 처음 들은 지 벌써 삼십 년은 지났을 텐데도 아직까지도 들을 때마다 감동한다. 연주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사실 쉽지 않은 곡인데 –브릿지 부분의 코드 진행은 마법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조빔의 천재성이 마음껏 녹아들어 있다- 듣는 이는 그런 걸 고려할 필요가 없고, 그 곡은 스탄 겟츠와 주앙 질베르토의 버전으로 이미 완결된 채 세상에 나왔다. 그 곡보다 더 아름다운 버전은 아직 듣지 못했다.


  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BGM이 되기 위해 만들어진 재즈는 재즈가 아닌 것 같이 들린다. 박제, 마네킹, 석고상, 그도 아니라면 홀로그램 같다. 그런 음악에 '내 이야기를 들어봐요, 나는 이런 세상을 꿈꾼다구요' 하는 의지가 담겨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다.


  듣는 이에게 말을 거는 음악이 있는가 하면, 굳이 내 얘기를 들을 필요는 없잖아요, 하는 음악이 있다. 후자라면 제아무리 스윙 리듬 위에 블루스적인 프레이즈로 즉흥연주를 한다고 해도 재즈처럼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좋게 봐준다고 해도 무언가 제법 중요한 걸 잃어버린 상태의 재즈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슬프게도 그런 음악을 종종 만난다. 카페나 호텔 로비 같은 곳에서, 그리고 플레이리스트에서.   


  많은 이들은 블루스가 재즈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들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게 체감되지 않았고, 그건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었다. 종종 블루스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재즈 뮤지션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콤플렉스 따위는 조금도 느끼지 않고도 몇 날 며칠이건 지내기도 한다. 며칠 아프다가 또 얼마간 괜찮아지는 발바닥의 염증 같은 느낌이었다. 블루스의 의미를 형식이나 스케일, 블루스 프레이즈며 블루스적인 표현방식에 가두어 두었을 때 그랬다. 하지만 블루스는 그런 것에 갇히기에는 너무도 보편적이며 커다란 의미다.


  스토리텔링, 어쩌면 그게 블루스의 본질일 것이다. 적당히 가다듬은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던지는 것, 그게 스토리텔링이다. 블루스가 여전히 포크 음악, 문자 그대로 민중의 음악이던 시절에는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시답잖은 이야기일지라도 적당히 이야기를 만들어본다. 자동차의 타이어가 펑크 난 얘기라고 하건, 뚱뚱한 와이프에 대한 얘기건 말이다. 아니면 malted milk일 수도 있다. 홍수에 관한 얘기여도 상관없다. 삶의 한 조각을 떼내어 이야기를 만들 때 슬쩍 자조적인 유머가 섞여 들어가면 더 좋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피식하는 웃음이 새어 나올 때 일상의 무게는 아주 조금 가벼워진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블루스를 좋아한다면 일단 기타를 잘 쳐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손맛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배운다. 누가 더 그럴듯하게 따라 하고 있는가의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스토리텔링은 사라지고 표현만 남았다. 작가의 정신은 온 데 간 데 없이 문체만 읽히는 소설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재즈 연주자들은 즉흥 연주를 처음 배울 때 블루스 곡의 형식을 빌려다 쓰는 것이 흔하다. 그러다 보니 블루스나 한 번 연주할까? 하는 말은 우리에게 너무도 일상적이지만, 그때 연주하는 음악은 아주 높은 빈도로 블루스가 아닌 정체불명의 음악이다. 블루스를 연주한다면 필연적으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말하고 싶은가 하는 질문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멋진 화성과 멜로디를 조합하고 나면 갑자기 없던 이야기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겠지.  







너무도 유명한 게츠/질베르토의 <The Girl From Ipanema>, 수백 번은 들었을 테지만 이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나올 때면 무척 행복해진다.

Provided to YouTube by Universal Music Group



로버트 존슨의 <Malted Milk>, malted milk는 술을 지칭하는 속어인 듯하다. 금주법 시대의 밀주를 말한다는 얘기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고. 하여간 ‘나는 몰티드 밀크를 계속 마시는데 그게 머리로 확 올라와서 알딸딸하네,’ 하는 시답잖은 이야기의 노래라 제대로 블루스다운 느낌이 든다.  

Provided to YouTube by Believe S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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