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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Oct 11. 2023

스윙 필, 알듯 말듯한




  도통 말이나 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게 있다. 소리가 만들어내는 느낌도 그렇다. "그 드러머는 정말 사뿐사뿐한 느낌이 들지 않아?", "휴우, 타임 필이 어찌나 무거운지 진흙탕에 장화발이 쑥쑥 빠지는 느낌이라 같이 연주하기 정말 힘들었어." 하고 말하고 나면, 상대방이 공감하는지 아닌지 살피게 된다.


  그래서일까, 음악에 대해서는 종종 설명적이기보다는 선언적으로 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굳이 잘난 척을 조금 섞어 영어로 예를 들자면, “Yeah man, he swings hard.  He knows the shit.” 같은 표현 말이다. 저 녀석은 뭘 좀 아네, 하는 식으로 말하게 된다.  


  저런 표현은 (1) 나는 어떤 주제에 관해 누군가가 정통해 있다는 것을 판단할 능력이 있으며, (2) 그는 제법 경지에 다다른 사람이고, (3) 내가 지금 그 사실을 알아보았다, 하는 이야기다. 그러니 듣기에 따라서는 꽤나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에 대한 칭찬의 의미로 자주 쓰게 되니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말로는 왠지 평가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일까, 연주를 마치고는 서로 '수고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대충 넘기는 게 일상적이다.


  스윙 필에 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하면 대뜸 이런 대답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이 곡(혹은 연주 또는 연주자)에서는 스윙필이 느껴지지 않는데요."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굳이 캐묻는다. "대체 왜 그렇게 느끼는 거죠? 라이드 심벌은 스윙 패턴을 연주하고 있고(딩 딩가 딩 딩가 딩 딩가 딩.....), 베이스는 꾸준히 사분음표로 워킹 베이스를 연주하고 있는데 말이죠(둥 둥 둥 둥....). 심지어 솔로 주자가 연주하는 8분 음표 역시 싱코페이션이 섞여든 스윙 8분 음표니까(두비두밥 바-),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가 스윙 리듬을 설명할 때 특징적인 요소로 꼽는 것들을 다 포함하고 있잖아요?" 하고. 그러면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기 마련이다. "그렇긴 한데요, 제가 느끼기에는 전혀 스윙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냥 미디로 찍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그 역시 명확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느낌으로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중이다.  


  어떤 이들은 집요하게 스윙 8분 음표의 길이 -혹은 깊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에 집착한다. 8분 음표로 표기되어 있다 해도 앞의 8분 음표를 길게, 뒤의 8분 음표를 짧게 연주한다는 것, 그게 2:1의 비율인지 혹은 3:1의 비율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각자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연주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한 문장으로 완벽하게 설명하기 어려우니 템포에 따라, 연주자에 따라, 혹은 시대와 스타일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덧붙이곤 한다.


  하지만 그들도 덱스터 고든의 <Willow Weep For Me>를 주의 깊게 들어보자고 하면 어느새 말문이 막혀버린다. 이 드러머는 한 곡 안에서 셋잇단음표와 16분 음표를 제멋대로 뒤섞어가며 연주하고 있다. 인트로에서는 철저하게 셋잇단음표에 기반한 연주를 하다가 곡의 멜로디가 시작되고 나면 아차, 이게 아니었지, 하며 16분 음표에 기반한 라이드 심벌의 패턴으로 스윙 리듬을 연주한다. 그러면서도 필인이 들어갈 때마다 셋잇단음표로 돌아온다. 한 곡, 한 템포 안에서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는 얘기다. 이쯤 하면 이 사람 대체 누구야, 무슨 듣보잡 아냐?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드러머의 이름은 케니 클락이다. 라이드 심벌로 타임을 유지하고 베이스 드럼은 액센트를 주는 컴핑 악기로 활용하는 비밥 스타일의 드럼 연주 방식을 확립한 사람이다. 웬만한 재즈 역사책에는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게다가 피아니스트는 버드 파웰이고 리더는 덱스터 고든이다. 음반은 그의 대표작인 [Our Man In Paris]이다. 함부로 난도질하기 쉽지 않은 이름들이다. 그러면 내가 들은 게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하며 다시 주의 깊게 들어보게 된다. 하지만 몇 번을 들어도 케니 클락은 느릿느릿한 템포의 블루지한 곡에서 제멋대로 휘청이는 연주를 하고 있다. 덱스터 고든은 그 스윙 리듬 위에서 예의 그 굵직한 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그다음, 블루 미첼의 대표적인 연주인 <I’ll Close My Eyes>를 들려주고 꼼꼼히 들어보게 한다.  일단 한 번 듣고 난 다음, 이 곡이 스윙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하로 물어본다. 그러면 도대체 당연한 얘기를 왜 물어보는 거지?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럴 만큼 너무도 스윙하는 느낌이 가득 찬 연주이다. 듣고 있자면 아주 기분이 좋아진다.


  자, 그럼 드러머가 연주하는 스윙 8분 음표에 집중해서 한 번 다시 들어볼게요, 하고는 음악을 다시 튼다. 역시나 드러머들에게서 제일 먼저 당혹스러운 표정이 엿보인다. '아니, 스윙 8분 음표조차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렇게 명확하게 스윙하는 느낌은 도대체 뭐지? 내가 저렇게 스윙 8분 음표를 연주했을 때는 저런 느낌이 나지 않았는데, 저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셋잇단음표에 기반한 스윙 8분 음표를 연주했을 때도 이만큼 스윙하게 들리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스윙 필이란 이쯤 하면 마법과도 같은 얘기가 된다. 명확하게 설명할 길이 없어진다.


  그러고 나면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다. 몇 가지 외형적인 설명을 할 수 있을 뿐, 세밀한 영역에 대해서는 그저 느껴질 때까지 반복해서 들으라고 말하는 것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얘기의 전부이다. 이럴 때면 음악을 가르친다는 것이 살짝 두렵게 느껴진다. 같이 카운트 베이시를 듣고 따라 불러 보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 약간 초라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게 최선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틈만 나면 베이스를 들고 그들과 같이 연주해 보려고 애쓴다. 설명하기 어렵다면 들려주는 수밖에 없으니까.







덱스터 고든의 <Willow Weep For Me>, 그냥 들을땐 마냥 멋진데 라이드 심벌의 비트에 집중해서 듣기 시작하면 혼란스러워지는 곡.

Provided to YouTube by Universal Music Group




블루 미첼의 <I'll Close My Eyes>, 이보다 더 기분 좋게 스윙하기도 쉽지 않겠죠.

Provided to YouTube by Universal Music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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