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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Dec 30. 2023

신세 한탄



중년이 다 되어 신세한탄을 하는 건 약간 볼썽사나운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세상은 어른에게 기대하는 것 아닐까.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한다는 걸 억지로라도 배워내는 나이다. 어찌 되었건 그동안의 삶의 경험은 내게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 적지 않으며 그 뒷면에는 허락되지 않은 것도 제법 많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니 어떠한 심리적인 공격이 치고 들어온다고 해도 흐읍, 하고 잠시 숨을 멈추고는 견뎌내야 한다. 최소한 타인과 함께 있을 때만이라도.

    

  정작 그 자신은 늦은 밤 골방에 틀어박혀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 쥐고 답답한 숨을 고른다고 해도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한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서울 시내에 소재한 대학에 재직 중이고, 최근에 승진을 겸한 재계약을 마쳤으니까. 하지만 그 뒤쪽에 숨겨진 구질구질한 얘기는 차마 하지 못한다. 연봉이건 임금 체불이건 뭐건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허울뿐인 직장이라면 왜 박차고 나오지 못하나 하는 질문을 하며 개인적인 역량의 크기가 이것밖에 되지 않는 걸까, 하는 씁쓸한 기분에 잠긴다.  


  아니,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하고 항변을 해 본다. 20년 후의 세상을 명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젊은이가 몇이나 있을까? 내가 미래를 준비하던 시절에는 음악 시장이 지금과는 너무도 달랐다. 모두들 레코드판을 사던 때를 지나 씨디를 사는 것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조차도 음반을 사지 않는다. 소파 뒤에 쌓여있는 수없는 씨디들을 바라보며 다음번 이사 때는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부터 고민이 된다. 


  십 년 전에는 발매한 음반을 사 달라고 관객들에게 어필했다면 이제는 그런 말도 건네지 않는다. 그저 다음 공연에도 와 달라고 할 뿐이다. 그리고 그 공연을 마치고 받아 드는 돈은 이십 년 전과 동일하다. 자신의 활동 무대가 전 세계인 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시대일 수 있겠지만, 나처럼 내가 발 딛고 서있는 땅에서 마이너한 음악을 들려주며 살아가는 이에게는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 


  누칼협, 이런 젊은 세대의 언어가 너무도 폭력적이라 직접 나를 향해 던지지 않아도 상처가 된다. 


  그래, 누구도 내게 재즈라는 음악에 인생을 걸라고 협박하지 않았지. 하지만 20년 후의 세상이 이토록 달라져 있으리라고는 좀처럼 상상하지 못했어. 그건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어른들에게 마찬가지였지. 사진관, 서점, 문방구, 철물점.... 그곳에는 자신과 가족의 생활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고 있던 이들이 있었으니까. 


  내 잘못은 아니었어, 젊은 시절의 나는 한껏 고민했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성장해 왔으니까. 내게 주어진 인생은 대체로 이 정도였던 걸 거야. 그 경계선은 살아내면서 하나씩 그려낼 수밖에 없어. 이제 그 지도가 얼마간 명확해져 간 것뿐이야.


  그럼에도 어떻게든 버티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아니, 그렇다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재능의 한계를 새삼 느끼는 날에는 마음 한 구석이 와르르하고 무너져 내린다. 제법 큰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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