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은창 Jan 30. 2024

A Felicidade

Joe Henderson [Double Rainbow]




  조 헨더슨 하면 <Blue Bossa>, <Blue Bossa>하면 조 헨더슨을 떠올리게 된다. 짧고 간단한 멜로디를 가진 곡인데, 중간에 조성이 슬쩍 한번 바뀌었다가 돌아온다. 그것만 빼면 어려울 게 없는 곡이라 그런지, 재즈를 듣기 시작한 이들이 처음 만나게 되는 몇 곡 중 하나일 것이다. 한두 번만 들으면 기억에 남는 재즈 곡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조 헨더슨의 초기작인 [Page One]라는 음반에 수록되어 있는 곡인데, 정작 곡을 쓴 이는 케니 도햄이다. 



 


  나 역시 이 곡을 처음 들은 기억을 찾아 올라가면 분명 199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재즈클럽에서 연주되는 것을 들었지만 바로 기억에 새겨질 만큼 이 곡의 멜로디에는 뭔가 확실한 전달력 같은 게 있다. 나중에 실용음악이라는 전공이 생겨나고는 그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싫으나 좋으나 몇 곡의 재즈 곡은 연습하게 되었는데, 그들도 웬만하면 <Blue Bossa>를 연습해 보는 모양이었다. <Billie's Bounce>, <Blue Monk>와 같은 재즈 블루스 두어 곡과 <Autumn Leaves> 정도를 접하는 그런 시점에 말이다.


  그런 곡들은 보통은 lead sheet라고 부르는 간단한 악보를 통해 적당히 배우게 된다. 코드와 멜로디가 적혀있는 게 전부인 악보다. 어차피 재즈라는 건 코드 진행 위에 즉흥연주로 채워나가는 음악이니까 원곡은 굳이 들어보지 않고도 코드진행만 읽어낼 수 있으면 어떻게든 연주를 해 낼 수 있게 된다. 게다가 학생들은 악기를 다루는 실력도 아직 능숙하지 않으며, 즉흥연주는 더더욱 낯선 상태이다. 이쯤 하면 재즈 연주는 잘해야 각각의 코드에 맞는 음이 무엇인지 재빨리 생각해 내서 적당히 끼워 넣는 퍼즐 같은 게 된다. 보통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되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솔로의 시간을 적당히 채워넣는것만도 쉽지 않다. 


  그런 시절에 경험하는 곡이 <Blue Bossa>니까 조 헨더슨은 이 곡을 어떻게 연주했었는지 주의 깊게 들어보고 그럴 경황이 없다. 그런 시기에 흔히 듣게 되는 가르침이 '일단 어떻게든 뭐라도 쳐, 씨 마이너 코드에는 에올리안이나 도리안, 정 모르겠으면 블루스 스케일로 후려도 되고.' 이런 얘기라는 게 사실은 생각해 보면 제법 슬픈 일이다. 음악을 공부한다는 이유로 정작 음악을 마음으로 만날 만큼의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손도 못 대고 끝나면 안 되니까 어떻게든 다양한 스타일을 대충 느낌만 파악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듣는 것 말이다. 이 곡을 그런 식으로 접하게 되다 보니 오히려 진지하게 재즈를 연주하려는 이들은 또 좀처럼 선택하지 않는다. 학생들이나 하는 곡, 그런 느낌이 든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안타까운 일이다. 


  이 곡을 다시 찾아 제대로 감상하게 된 건 보사노바와 같은 브라질 음악에 좀 깊게 관심을 갖게 된 다음이었다. 브라질 음악, 특히 삼바와 보사노바를 좀 듣고 그 특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 본 사람들은 안다. 재즈 뮤지션들이 얼마나 보사노바를 대충 연주하는지를. 재즈뮤지션이란 곡의 멜로디와 코드 진행을 가져다가 그 위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즉흥연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주된 관심사다. 조금 나은 이들은 주변의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내용과 어떻게 하면 나의 연주를 관련지을까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음악적인 감정을 담아 관객에게 전달할 것인가 생각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 정도면 아주 훌륭한 음악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어떤 문화권이 가진 전통에 대한 respect -존중- 가 필요한 때가 있다. 보사노바를 연주할 때에도 그렇다.


보사노바를 연주할 때에도 가차 없이 스윙 리듬이 섞여든다, 너무도 아름다운 음악이라 할 말은 없지만.


  그런 면에서 조 헨더슨의 [Double Rainbow]는 훌륭한 참고자료가 된다. 마치 그때 그 시절 LP에서 A면과 B면을 구분하듯이 하나의 음반 안에 두 가지 세션이 들어있다. A면은 조 헨더슨이 브라질 출신의 리듬섹션과 함께 연주하고, B면은 조 헨더슨이 재즈 리듬섹션과 연주한다. A면의 연주자는 엘리아니 엘리아스를 제외하고는 나 같은 재즈팬들에게는 낯선 브라질 뮤지션들이다. 그에 비해 B면은 잭 디조넷, 크리스챤 맥브라이드, 존 스코필드, 그리고 허비 행콕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올스타 재즈 세션이다. 지극히 다른 두 밴드가 공유하고 있는 건 톰 조빔의 곡을 연주한다는 사실뿐이다. 두 리듬 섹션은 지극히 다른 태도로 조빔의 곡을 연주하고, 조 헨더슨의 솔로를 뒷받침한다. 하나는 꾸준히 리듬 그 자체를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감정의 깊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활화산처럼 다 같이 불타오르기를 주저하지 않아서 어느새 돌아보면 먼 길을 와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말년의 조 헨더슨의 연주는 정말로 놀라운데, 젊은 시절의 거친 느낌이 매끈하게 다듬어진 채로 끝없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끌어낸다. 음색은 가볍다고 해야 할 텐데, 그렇다고 텅 빈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풍성하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되짚어봐도 테너 색소폰에서 이만큼 개성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음색을 찾아낸 사람은 드물다. 듀크 엘링턴의 오른팔이던 작곡자 빌리 스트레이혼의 곡으로 채운 [Lush Life] 역시 훌륭하다. 빅밴드 음반도 기분 좋게 들었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내게는 조빔의 곡을 연주한 [Double Rainbow]이 조 헨더슨 음반의 정수이다. 그중에서도 첫 곡, <A Felicidade>는 조 헨더슨의 솔로를 줄줄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듣고 또 들었다. 




  편견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브라질 음악이라면 나일론 기타가 있어야 한다. 브라질 음악을 노래하려는 가수가 밴드 편성을 줄이고 줄이다 한 명의 반주자만 남겨야 한다면 나일론 기타를 연주하는 기타리스트를 선택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기타는 브라질 음악에 있어 핵심적인 악기이다. 싱코페이션이 가득한 리듬 프레이즈에 제법 복잡한 화성을 담아 끝없이 펼쳐나가는 부드러운 음색의 물결이 없다면 브라질 음악의 이미지는 절반 이상 날아가버린다. 정작 나일론 기타는 음량이 크지 않아 밴드와 함께라면 다른 악기의 뒤편으로 물러나는 듯이 대단히 주목을 끌지는 못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기타를 치는 학생들에게 종종 말하곤 했다. 내가 기타를 친다면 블루스 락을 연주하거나 브라질 음악을 연주했을 거라고. 그런 음악은 기타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제대로 연주하는 기타 한 대라면 충분히 보사노바를 부르는 가수의 음악을 채워나갈 수 있다.


이런 기타를 칠 수 있다면.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나 조 헨더슨의 <Blue Bossa>를 다시 듣는다. 예전에는 재즈 뮤지션들이 '브라질 음악이라는 거, 대충 이런 거 아냐?' 하면서 적당히 가져다가 자기네 방식으로 연주해 버리는 것이 그토록 거슬렸었다. 이제는 그런 점보다 이렇게나 명확한 스타일을 가진 한 곡을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더 주목하게 된다. 어쩌면 질투심에 가득 차 어떻게든 흠을 잡으려던 태도에서, 조금씩 그들의 성취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나 새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꽤나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듣는 <Blue Bossa>는 참으로 아름다운 음악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