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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s Apr 29. 2022

[OB'sDiary] 요즘 사는 이야기

오랫동안 기다렸던 봄

글을 올리지 않았던 몇 달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일은 역시 이직이겠지. 아직 완벽히 적응하지 못했고,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만 굴뚝인 지금이지만 그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일이 취미 만큼 재밌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더 잘 하고 싶고, 내 상사처럼 더 멋지고 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으로 사는 삶이 얼마나 좋은 건지 하루하루 깨닫고 있다. 가끔 억울할 정도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단 말이야?" 하면서.


내 일에 만족하고 일을 재밌어하며 살아보니 인생이 참 단순해진다. 물론 일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파고의 감정을 마주하고 하루에도 몇번씩 자책하지만, 그게 나를 좀먹지는 않는다. 상사에 대한 분노나 그를 저주하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는 삶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를, 그 삶에서 탈출하고 나니 알 것 같다. 사람을 가장 많이, 흉하게 갉아먹는 건 타인에 대한 혐오다.


나만 잘 하면 되는 일, 나만 더 노력하면 되는 일은 나를 채찍질하지만, 나를 우울하게 만들진 않는다. 내가 스스로에게 관대한 사람이라 그런 걸 수도 있지만 ㅎㅎ 채찍도 내가 나에게 휘두르는 게 낫다. 나는 내가 무엇에 상처를 받고 언제 아파하는지 알고 있기에. 그렇게 나를 잠시 미워했다가 나를 또 어르고 달래다 보면 하루가 금세 간다. 타인을 미워하고 증오하며 회사에 불 지르는 걸 깜빡하고 퇴근했다는 농담이나 하고 살던 때와는 시간의 속도도, 질도 다르다.


오늘도 행사 하나를 마치고 만원 지하철에 실려 퇴근하면서도, 어제 오랜만에 한 운동의 여파에 반나절 동안 서 있어서 더욱 굳어버린 다리를 두들기고 있던 그 순간이 왠지 모르게 행복했다. 예전 같으면 하루 종일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발을 종종거렸던 나를 누군가 위로해주길 바랐을 텐데. 내가 나의 수고를 생각하기도 전에 수고했다 말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지금은 하루의 끝이 허무와 무기력이 아닌 뿌듯함으로 채워진다. 약속이 있어 함께 저녁 식사를 하지 못한 게 아쉬워서 신기하다.


이 삶을 더 잘 살아내고픈 욕심에 운동을 할 의욕이 생겼다. 더 이상 '무거운 몸뚱이'가 아닌 '고마운 내 몸'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바랄 게 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요즘 나는 모든 이유와 결론이 나로 향하는 삶을 살고 있다. 저 인간은 대체 왜 저러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단순하고 명쾌해진 삶 위에서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다 느낀다. 참 신기하다.


나는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닮고 싶었다. 그들의 에너지, 그들의 의욕, 그들의 열정. 며칠 전 내가 늘 에너지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 나와 대화하면 덩달아 기분이 좋다며, 좋은 에너지에 감사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늘 되고 싶었던 사람, 그렇게 들어보고 싶었던 말. 눈물이 날 만큼 기뻤지만 마음속에만 감춰두고 있다가 이제야 이렇게라도 꺼내본다.


나를 웃게 해주어 고마웠던 사람에게 배우며 되도 않게 따라해본 것들이 어느새 내것이 되어준 걸까. 나도 모르게 점차 닮아갈 수 있었던 걸까. 앞으로도 나는 더욱 크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싶다. 그러다보면 나도 나를 닮고 싶어하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지 않으려나, 뭐 그런 커다란 꿈을 품고 사는 봄이다.


기나긴 겨울이 끝나고 찾아왔던 올 봄, 햇살이 유난히 따뜻한 색을 띤 채 골목골목을 비췄다. 꽃이 피는 나무인지도 모른 채 지나쳤던 나무 위에 핀 꽃들이 발길을 붙잡았다. 너무 피곤해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던 아침에도 이 봄이 너무 찬란하게 아름다워 눈을 바로 떴다. 세상은 언제나 아름다우니, 나만 눈을 크게 뜨고 살면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어느날엔 바람이 선선하게 불며 공기 위에 라일락 향기를 훅 끼얹었다.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 오래 남는, 고마운 날들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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