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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ck Dec 01. 2016

거:리의 거리 Street of Distance #02

한강, 서울

대학 재학 시절,

처음으로 카메라를 장만했었다.

평범했던 등교길도 카메라를 메고 나면 이유 없이 행복했다.



사진을 공부해보겠다고 전공 서적보다 두꺼운 책도 사서 읽고, 이런 저런 의미를 담아서 사진을 찍어보려 애썼다.

그 당시에는 사진을 찍을 때 마다 흥분하고 모든 사진이 마음에 들곤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들춰보면 대부분 형편없는 아마추어 사진일 뿐이다.

다만, 사진을 시작했던 그 때 그 시절의 서툰 마음이 생각날 때가 종종 있다.


@한강, 2009.6


여전히 집으로 향하는 길이면, 충동적으로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자주 가는 곳이 선유도다.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을 가득 실은 버스 안에서 한강 다리를 건너다보면 어쩐지 급하게 내려 걷고, 사진을 찍고, 쉬고 싶다.

한 시간이고 두시간이고 한강을 따라 걷고 고요한 강변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사진을 찍는 일은 그 옛날 대학생 때에도, 지금도 변하지 않는 취미가 되어버렸다.


@한강, 2009.6


비가 오는 한강은 평소보다 사람이 적다.

가끔 우산을 쓰고 어디론가 향해 가는 사람들이 보일 뿐이다.

어디로 가는 걸까.

빗소리에 사람의 목소리, 발소리 마저 가려지고 나면 사람이 더욱 궁금해진다.


@한강, 2009.5


특별히 비 오는 한강에선 RF카메라의 진가가 발휘되곤 한다.

한손에는 우산을 들고, 남은 한손에 카메라를 존 포커싱으로 맞춘 다음에 셔터를 누르면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창문처럼 뚫린 뷰파인더를 통해 무언가 특별한 장면을 포착하는 순간, 그 장면의 앞 뒤 상황을 모두 볼 수도 있다.

그 날도 역시 뷰파인더를 통해 누군가와 마주쳤고 그들이 걸어가는 거리를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멀어졌다.


@한강, 2009.5



1) 선유도 : 양화대교 중간에 위치한 선유도공원은 과거의 정수장 건축구조물을 재활용하여 국내 최초로 조성된 환경재생 생태공원이자 “물(水)의 공원”이다. 당산역, 합정역, 선유도역에서 하차하여 갈 수 있다.  개방시간은 6시부터 24시까지다. (http://parks.seoul.go.kr/template/default.jsp?park_id=seonyudo )


2) RF 카메라 : 거리계연동카메라(Range Finder Camera)는 거리계(range finder)와 카메라의 초점기구를 연동시킨 카메라로, 초점기구를 움직임에 따라 초점 검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카메라이다. RF 카메라는 미러 박스와 펜타프리즘이 필요 없기 때문에 SLR에 비해 작다는 강점을 가진다. 미러의 움직임에 의해 생기는 미러 쇼크가 없기 때문에 사진의 흔들림이 적은 것도 이점이다. 숙련된 사진가라면 삼각대 없이 1/15초까지도 흔들림 없이 촬영이 가능하다. 또한 미러업에 의한 블랙아웃 현상이 없기 때문에 사진가는 언제든지 주변 상황을 관찰해가며 상황에 대처하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렇기에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RF 카메라를 주력 기종으로 사용하고 있다. (위키백과 참고)


3) 존 포커싱 : 존 포커싱이란 RF카메라에서 사용하는 팬 포커싱을 이용한 기술이다. AF 렌즈처럼 빠른 포커스를 위해 촬영시의 노출조건을 감안해서 조리개나 셔터스피드를 고정하고 피사체의 거리를 파악한 후, 피사계 심도를 이용하여 초점을 맞추지 않고 촬영하는 것이다.


Camera : Leica M3, Leica M7

Lens : Summicron M 35mm F2 1st, Summicron M 35mm F2 asph.

Film : Portra 160nc, natura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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