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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공원 Oct 07. 2022

역마살에 맞았다


‘너 역마살이 있구나’

사주를 공부한다던 엄마의 친구가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말했다. 이사와 전학이 잦았던 이유도 내가 그 역마살이 있어서였던 건가? 중학생 시절 나는 지금과 달리 의미부여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역마살이라니, 뭔가 사연 가진 만화 주인공 같잖아.


역마살의 역마는 말이 주요 교통수단 겸 정보 전달 수단이던 시절, 관원이 먼 거리를 말을 타고 이동할 때 들리던 '역'마다 준비되어 있던 말을 지칭한다고 한다. 관원은 역에서 말을 타고 그 말을 다음 역으로 이동하는데, 이때 이동된 말은 다시 이전 역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음 순번의 관원을 태우고 그다음 역으로 이동한다. 역마는 그렇게 돌아갈 집 없이 앞으로, 앞으로 고단한 행진을 이어간다. 즉 역마살은 이렇게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늘 떠도는 ‘역마’와 어떤 모진 기운을 뜻하는 ‘살’이 합쳐진 단어이다. 이때 ‘살’은 우리가 아는 ‘살풀이’의 그 ‘살’이다.


물론 미신이다. 그렇지만 재밌는 점은 나에게 말에 관련한 이야기가 하나 더 다는 것인데, 바로 태몽이다. 26살의 엄마는 꿈속에서 넓은 들판 위에 서 있었다고 한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풀이 일렁이는 들판에서 검은 말 한 마리가 엄마를 태우고, 만국기 아래를 달렸다고 한다. 에너지 넘치는 태몽이다. 여러 나라(지역)가 걸린 만국기와 그 아래를 달리는 말이라니, 엄마의 태몽은 어쩌면 나의 역마살을 미리 보여줬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정말 그 ‘살’이 있고 없고를 떠나, 나의 학창 시절은 역과 역 대신 학교와 학교를 옮겨 다니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9살부터 기숙사 학교를 들어간 17살까지 8년간 총 9번의 전학이 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어디 다녔었는지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전학을 다닌 횟수만 간신히 기억이 난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이사를 다닌 부모님을 이해 하지만, 주변 친구에 영향을 받을 어린 나이에 잦은 변화는 확실히.. 좋지 않다.


MBTI ‘E’인 지금의 나를 아는 친구들은 모를 수 있겠지만, 어릴 적 나는 정말 내성적인 아이였다. 성격을 고쳐주기 위해 엄마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해보기를 시켰지만, 한참을 우물쭈물 서서 난감했던 감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성격이 외향적으로 바뀌었던 것은 그 9번의 전학 때문인 듯하다. 같은 나이더라도 동네마다 아이들의 성향과 유행이 다르다. 또 자기들만의 무리도 나이가 찰수록 그 유대감이 더 단단해져 있다. 그래서 였는지 돌이켜보면 전학을 간 학교마다 나의 성향은 환경에 맞게 많이 변했던 것 같다. 인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축구를 같이 할 친구가 많아서 활달했고, 안산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에는 입시학원을 다니느라 학교에서 거의 말이 없었다.


나의 학창 시절은 참 불안했다. 나의 성격이 어떤지 나 스스로 알지 못한 채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며 어떤 것이 나와 어울리고 맞는지를 아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애니메이션고등학교에 편입하게 되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구체적으로 바뀌면서 나의 자아도 더 뚜렷하게 바뀌었다. 지금의 나라는 사람의 성향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막연한 어린 시절부터 구체적으로 UX 디자인 일을 좋아하기까지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좁혀나가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나는 너무 만족스럽고 행복하지만, 어린 시절 동안 길게 만난 친구가 없다는 것은 종종 아쉽다. 경상남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여자 친구는 명절이면 고향에 내려가 어릴 적 친구를 만난다고 한다. 그녀는 자기가 돌아갈 집이 있지만, 이사가 잦았던 우리 가족은 집이 아닌 거쳐간 ‘역’만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명절이 되면 나는 가족이 ‘요즘’ 살고 있는 집에 잠시 들르고 나머지 시간을 자취방에서 보낸다.


나는 도전적인 삶을 지향하지만, 동시에 나와 내 주변을 안정화시키고 싶다는 바람도 크다. 어떤 부분은 더 이상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어줬으면 하는 것들이 점점 생긴다. 이런 바람은 나의 어릴 적 결핍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릴 때 가지지 못했던 안정적인 주거 공간과, 오래 만나서 한마디를 해도 많은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관계들을 많이 만들고 싶다.


시간이 지나 나의 바람은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겨우 정 붙인 낙성대라는 동네에 산지도 4년이 넘어가고, 나를 이해해주는 관계도 적지만 한 명 한 명 생기고 있다. (맞지 친구들아?) 가끔은 유동적인 인생들 중에 이렇게 하나씩 고정되는 것들이 생기는 과정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도 싶다. 안정을 꿈꾸면서도 당장 이직을 고민하고 다음 이사 갈 집을 걱정하는 어리고 불안한 현재의 삶이지만 언젠간 종착역이 금세 오지 않을까 싶다. 삶은 정신없지만 그만큼 또 짧기도 하니까.


*겨우 정 붙인 낙성대 이 동네도 강아지가 생기고 나서는 왜 이렇게 싫은 구석이 눈에 띄는지 모르겠다. 자의든 타의든 역마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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