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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민 Jul 01. 2023

어떤 시간은 약간 단편소설 같아

위트, 유머, 재치, 센스 있는 말장난을 사랑한다. 내 기준을 통과한 그것들에는 배려 또는 다정함 또는 사랑 중 적어도 하나는 꼭 들어가 있거든. 둘 또는 셋 모두가 있으면 더더욱 완벽하고. 그래서 나는 시인 오은 그리고 그가 쓰는 시와 그가 하는 말을 좋아한다. 지난 오 년간 그가 쓴 시를 모은 새 시집이 나왔다. 시집의 구성은 정말이지 오은다웠다. 시집을 채우고 있는 시들 역시 오은다웠다.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남들 다 같이 늘 쓰는 언어를 꼭 나만의 방식으로 쓰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멋질까. 잔잔하게 그러나 늘 충만하거나 매일 모험을 하는 기분이 아닐까, 내 멋대로 상상해 본다. 그가 쓴 단편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차, 그냥 산문시 그대로도 좋다 싶다. 


그리고 작은 책방에서 낭독회가 있었다. 당장 신청을 했지만서도 전업 주부로 한 살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 남편의 퇴근시간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느라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오랜만에 지상철을 타고 가겠노라 생각했는데 이래저래 하다 보니 시간이 빠듯해서 차를 가져갔더니만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오 분여 시간을 남기고 책방에 주차할 곳을 물어보러 들어갔는데 먼저 온 일행 옆에 응? 고명재 시인이 앉아있는 것이다. 잔잔한 팬심으로 그의 SNS에 가끔 언급된 말로 오은 시인과의 친분 같은 건 추측했었지만 그래서 혹시 같이 오려나 헤헤헤 했었지만 그가 가끔 들른다던 나도 가끔 들르는 단골 책방에서 혹시 마주치면 사인을 꼭 받고 싶다 주접 정말 잘 떨 자신이 있는데 싶었지만 세상에, 정말 그 자리에 고명재 시인이 있었다. 잘못 본 줄 알았는데 맞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주차를 해야 해서 일단 주접은 접어두고 부랴부랴 오은 시인의 낭독회 시작시간을 이 분 남기고 자리를 잡았다.


시인은 정말 멋진 직업임에 틀림없다. 그의 모든 말과 웃음 그리고 대답이 내게 좋은 영향으로 스며든 시간이었다. 그중 내 기억에 오래도록 남겠다 싶은 부분이 있다. 시인에게 자신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그는 딴, 틈, 걷기라고 대답했다. 부연 된 설명을 들으며 시인은 어쩌면 직업이라기보다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떤 좋은 찰나를 포착한 행복도 있었는데, 오은 시인을 다정한 눈빛을 다해 휴대폰 카메라에 담고 있는 고명재 시인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내가 알거나 경험했거나 목격했던 다양한 우정이나 친애의 형태 폴더에 새로운 인덱스를 붙이고 싶은 순간이었다. (물론 나는 그들이 쌓아온 시간이나 우정, 관계의 질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저 그 순간의 모습을 보고 미루어 짐작할 뿐.) 나이나 경험의 연차 따위를 떠나 저 끝까지 평평하게만 펼쳐진 세계에서 뛰어놀거나 천천히 산책하는 어떤 우정의 모습. 그래서 열심히 낭독하는 오은 시인을 다정하게 찍는 고명재 시인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낭독회가 끝나고 오은 시인에게 사인을 받기 전 고명재 시인에게 다가가 (약간) 주접을 떨었다. 그리고 용기 내서 내가 찍은 사진도 보여드렸다. 내게 참 좋았던 어떤 순간을 그러나 타인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 어떤 것을 나만큼 공감해 줄 때는 배로 기분이 좋다. 공감을 받기 전 약간 쫄리고 조마조마 한 마음의 효과랄까.


아무튼 그래서 여러모로 행복했다. 익숙하지 않은 동네 골목에 빈자리가 보이는 대로 주차를 하고 냉큼 달려왔던 터라 돌아오는 길에는 차를 찾느라 한참 헤맸다. 그것도 내가 데려다주겠다고 큰소리 뻥뻥 친 나의 일행과 함께. 이조차 웃기고 즐겁고 사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살다 보면 가끔 단편소설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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