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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떠올리며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여행에세이 베스트셀러 <그렇게 몽땅 떠났습니다>

by 김지수

여행에세이 베스트셀러 <그렇게 몽땅 떠났습니다>

엄마의 마지막 말


2017년 3월 4일 토요일.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엄마가 계속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네. 주말에 너라도 집에 와서 하루 같이 있자. 상태 봐서 내일 병원도 가봐야 하니.”


아버지의 전화였다. 틈나는 대로 엄마를 문병하는 것이 일상이 된 지 오래전 일이었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1박 2일 호출은 갑작스러웠다.


“오늘요? 알겠어요. 서둘러 갈게요.”


당시 둘째는 태어난 지 백일도 안 된 갓난아기였다. 집안일이 쌓여 있었고, 아내 혼자 아이 둘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나는 우왕좌왕했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접어두고 하룻밤 집을 떠나 있을 채비를 마친 뒤 부모님 댁으로 갔다. 거실 환자 침대에 엄마가 누워 있었다. 몸이 더 쇠약해졌는지 목소리마저 잘 들리지 않았다.


당시 부모님의 모습은 항상 비슷했다. 아픈 엄마는 침대에 누워 뒤척이기를 반복하거나 허공에 손을 흔드는 일이 전부였고, 아버지는 늘 부엌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간병 생활 3년 차에 아버지의 요리 실력은 조리사급으로 발전했다. 그날 아버지는 환자식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엄마의 식사를 손수 만들려고 요리학원까지 수료한 로맨티스트라는 건 익히 알았지만 느낌이 조금 이상했다. 몸 가누기 힘든 엄마가 소화하기엔 음식 양이 지나치게 많았다.


“자, 먹자.”

“…….”

“자, 한술 떠봐.”

“안 먹는다. 못 먹겠다.”


두 분의 식사 시간이면 으레 들리는 대화였다. 음식을 삼키기 힘들어 그랬던 걸까. 그냥 누워서 쉬고만 싶었을까. 엄마는 음식을 막 차려온 아버지에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안 먹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엄마 몸 상태로는 식사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지만 아버지는 엄마의 입에 음식을 털어넣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어느 쪽 편을 들어야 하나 판단이 서지 않았으나 아버지가 지나치게 강압적으로 보였다. 옥신각신하는 두 분 모습에 내 마음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엄마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적극적으로 뭔가를 할 수 없어서 답답하고 억울한 듯했다. 긴 투병 기간 동안 자식들 앞에서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던 엄마가 유독 눈물을 많이 흘린 날이었다. 엄마의 눈물을 보면서도 나는 엄마 건강이 다시 좋아질 거라는 믿음이 컸고 그 불편한 상황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럼 한술 먹어보자’고 말하는 엄마 목소리를 기다렸는데 부엌 식탁 쪽에서 다른 음성이 들려 깜짝 놀랐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아버지가 무너지고 있었다. 처음 보는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힘 빠진 목소리로 흐느끼며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내뱉고 있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두 분은 서로에게 다가올 이별을 조금씩 준비하고 있던 것이었다.


“아버지, 밥이 좀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천천히 드려볼게요.”


아버지가 스트레스 때문에 판단력이 점점 흐려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손수 만든 음식을 엄마에게 모두 먹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건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누구보다 힘든 사람은 엄마이니까 내가 나서서 중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날 저녁 아버지가 흘린 눈물의 의미는 엄마가 떠난 뒤, 뒤늦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옛부터 사람이 곡기를 끊으면 머지않아 세상을 떠난다는 말이 있듯, 아버지는 음식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엄마를 보며 이별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눈물을 흘렸던 것이었다. 그날 밤, 엄마 곁에서 이것저것 챙기고 수다도 떨며 시간을 보내는데 엄마가 또 눈물을 흘리며 힘겹게 말했다.


“이래 가지고 이번 여름을 날 수 있으려나.”

“에이, 왜 그러세요.”


괜한 소리 말라며 넘겼지만 힘이 풀린 엄마의 눈빛을 마주한 그 순간 나 또한 엄마의 죽음을 떠올리고 말았다.다음 날 아침, 어제와 똑같은 투병과 간병이 반복되겠지 하며 거실에 나갔다. 이미 일과를 시작한 아버지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씀했다.


“엄마가 또 열이 나는 것 같다. 일단 병원에 가보자.”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옷을 입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엄마를 태울 구급차였다. 거대한 이동식 침대가 집으로 들어왔다. 구급대원이 집에 들어오는 상황은 상상도 못했던 터라 당황했다. 엄마를 실은 구급차는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병원으로 출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병원에서 수액 맞고 의사 한 번 만난 뒤 엄마는 집에 돌아올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그날 병원으로 향하던 길은 엄마가 20년 동안 살던 집에서 마지막으로 외출하는 길이었다. 전날 밤 이상하리만큼 푸짐하게 차린 저녁상은 아버지가 엄마에게 해준 마지막 식사였다.


엄마는 고열로 병원에 입원해도 일주일 내로 퇴원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오랫동안 퇴원하지 못했다. 퇴근 후 엄마를 잠깐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시간은 점점 흘러 2주 차가 되어도 퇴원하지 못했다. 그래도 컨디션은 2주 전 집에 있을 때보다는 좋아 보였다. 가끔 문병 오는 친구와 즐겁게 수다를 즐기는 엄마 모습을 보며 걱정은 차츰 누그러들었다. 조만간 다시 집에 돌아가 회복할 거라 생각했다.


정신없이 지내느라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를 다듬기 위해 집 앞 미용실을 찾은 주말. 다녀오는 길에 스마트폰을 확인하니 부재 중 전화가 여러 번 와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발음이 더 어눌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대장부같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어디고.”

“엄마, 집 앞에서 머리 자르고 있었어요.”

“왜 안 오냐?”

“이제 다 잘랐으니까 곧 갈게요.”

“빨리 와라.”


다급하게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무슨 일이 생겼다기 보다는 그제와 어제 퇴근하면서 들르지 않아 섭섭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닐까 싶었다. 7층 병실로 뛰어 올라갔다. 평소처럼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 모습에 큰일이 난 건 아니구나 싶어 안도감이 들었다.


“엄마, 저 왔어요. 어제 못 와서 죄송해요. 좀 어떠세요.”


엄마는 작정한 듯이 내가 의자에 앉기도 전에 말을 꺼냈다.


“여기 앉아봐. 엄마가 어찌 될지 모르겠는데, 아버지 힘드시니까 네가 좀 잘 챙겨라. 너도 건강 챙기고, 항상 아껴 쓰고.”

“네. 알겠어요. 걱정 마세요. 좀 어떠세요?”

“…….”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피곤해서 잠시 숨을 고르는 줄알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몰랐다. 그 말이 엄마의 유언이라는 사실을.


그 뒤 엄마는 돌아가신 3월 31일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입을 열지 못했으니 말을 할 수 없었다. 다시는 아들과 대화할 수 없다는 걸 느꼈는지 마지막 사력을 다해 나를 호출한 것이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짧은 말로 엄마와의 마지막 대화가 끝나버렸다.


이후 엄마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혈압이 불안정했고 피부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가끔 ‘음, 음’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게 전부였다. 눈을 감은 채 숨소리만 냈다. 간호사 말로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잠깐 정신이 또렷해지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혼자 남을 아버지를 나에게 맡기고 잿빛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심장 박동 측정기의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아버지 잘 모셔라!”


엄마의 유언이 미국 아치스 국립공원에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듯했다. 미국 땅에서 아버지께 짜증을 냈던 것이 후회되었다. 엄마의 마지막 말이 마지막인지도 모른 채 흘려보냈던 시간을 떠올렸다. 아버지와의 여행도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소중한 시간이었다. 짜증을 거두고 다시 여행을 즐기기로 마음먹으니 한결 편해졌다.


어찌나 침식이 많이 되었으면 이렇게 될 꼬. 안전 펜스 등이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 절대로 가까히 가면 안될 만큼 낭떨어지니 조심해야 한다.


아버지와 단 둘이 떠난 브라이스캐년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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