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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이런 돌은 처음이지?

여행에세이 베스트셀러 <그렇게 몽땅 떠났습니다>

by 김지수

여행에세이 베스트셀러 <그렇게 몽땅 떠났습니다>

아치스 국립공원을 섭렵하며


TUSzytby4IVT5op5BA5wIr_YkNM.jpeg 오늘 방문하게 될 Arches National Park. 그 중에서 'Landscape Arch'의 모습. 출처=utah.com


인간의 몸이 시차 적응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나의 미국 여행 경험치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닷새 정도는 필요한 듯하다. 강행군을 한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새벽이면 눈이 떠지더니 5일 차가 되니 정상적인 시간에 졸렸고 새벽에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었다. 제 컨디션을 되찾자 그제야 제대로 된 서부 여행을 해볼 수 있을 듯했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 거실로 나가보니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일찍 일어난 아버지 혼자서 외출한 것 같았다. 전날 밤 맥주도 많이 마셨는데 아버지에겐 숙취 따위도 없는 걸까. 혼자 아침 산책을 지체 없이 떠난 것으로 보아 아버지는 남은 멤버의 스타일을 이미 다 파악한 듯했다. 어쨌거나 홀연히 미국 땅에서 사라진 게 벌써 네 번째. 또다시 아버지 구출 작전을 수행하러 뛰어나가야 하나 싶다가 오늘도 굼뜬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한 마음이 앞섰다.


몇시에 출사를 나가셨을지 짐작하기 힘든 아버지의 모닝 메모.



남은 무리들은 산책을 마친 아버지가 돌아온 뒤에도 모두 꿈나라에 있었다. 헐레벌떡 일어나 짐을 챙기고 나설 채비를 하느라 호텔 조식조차 먹지 못했다. 숙소를 예약할 때부터 조식 값을 지불해뒀는데 식당에 가니 모든 것이 치워져 있었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몸은 몹시 가벼운 상태로 짐 정리를 마쳤다. 체크아웃 후 우리의 네 번째 국립공원인 아치스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아치스 국립공원은 이름 그대로 아치 형태의 돌이 가득한 국립공원이다. 아주 오랜 시간 비와 바람에 의해 천연 조각물이 생겼는데 크고 작은 아치 형태를 갖춘 돌이 한곳에 이토록 많이 모인 곳은 이곳이 유일해서 학자들에게도 연구 대상이라고 한다. 유타주 자동차 번호판에 그려진 배경 그림도 아치스 국립공원의 바위라고 하니 이 공원이 갖는 대표성과 상징성은 굉장하다. 매년 약 180만 명이 다녀가는 이곳을 빨리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아치스국립공원 지도, 출처=인터넷



공원의 너비는 무려 310제곱킬로미터가량, 서울시의 절반 규모라는 사실에 경탄했다. 넓어도 너무 넓은 공원이기에 몇 시간 내에 모든 포인트를 다 돌아볼 순 없었다. 전략이 필요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 여행지를 느껴야 했다.


“자, 여기 잠시 정차!”


아버지가 갑자기 소리를 쳤다.


“사진을 찍거나,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딱 5분씩 만 볼일 보고 간다!”


5분 여행 전략이라고나 할까. 대장님의 명령이 유타주 하늘에 울려 퍼졌다. 늦잠 자느라 호텔 조식도 먹지 못한 우리에게 느긋하게 여행하는 것은 사치였다. 대장님의 전략에 아무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했고 재빠르게 이동했다.


한라산보다 높은 해발 2,000미터 지점이었다. 더 높은 언덕을 향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자동차로 지그재그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지러운 길을 5분 정도 올라가다 첫 전망대인 코트하우스 타워스가 나타났다. 아직 아치 모양이 되지 못한 돌산이었는데 반듯하게 각진 모양이 마치 견고한 법원 건물을 보는 듯 했다. 그 때문에 이 구역의 이름도 ‘코트하우스’라고 지어진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라 살 마운틴스 뷰포인트’라는 곳에 오르자 영화 <마션>의 화성 모습과 견줄 만한 드넓은 평원이 펼쳐졌다. 어젯밤 멤버들이 별 구경을 떠났을 때 잠시 머물던 지역이기도 했다. 5분 만에 둘러봐야 하는 미션을 잊지 않고 차에서 내려 바람도 쐬고 기념 사진도 찍은 후 재빠르게 다음 포인트로 이동했다.


Courthouse Towers 지역에 모여있는 웅장한 사암들이다. 첫 포인트라 사진이 많다.


코트하우스 타워스 인근에는 풍화 작용의 영향을 덜 받은 돌산이 많았다. 도로를 따라 두 번째 구역으로 이동할 때에도 왼편으로 큰 돌산이 솟아 있었다. 그중 ‘더 그레이트 월’이라는 구역이 눈에 띄었다. 거대하고 큰 바윗덩어리가 왼쪽 구역을 막고 서 있었다. 이름 그대로 큰 성벽 또는 거대한 우주선 같았다. 아쉽게도 이곳은 우리의 두 번째 목적지가 아니라 그냥 지나치긴 했지만 일행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6o1MIf1Yn3d_j6cQ39tfsXlTRkU.jpg The Great Wall, Arches National Park,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worldofarun/835694848


왔으면 끝을 봐야지


우리의 두 번째 지점은 ‘밸런스드 락’이라는 곳이었다. 이른바 ‘균형 잡힌 돌 타워’. 이곳 또한 아치스 국립공원의 대명사나 다름없었다. 호리호리한 몸통 바위를 따라 점점 좁아지는 목 위에 아주 큰 바위가 위태롭게 얹어져 있는 구조였는데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모양새라 더욱 신비했다. 인간이 이렇게 조각하려면 정밀 역학이 동원되어 꼼꼼하게 설계해야 할 텐데 바람과 물이 만든 완벽한 조각품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풍화 작용이 일어 났으면 이런 모양이 나왔을지 경이롭다


밸런스드 락 구역도 5분 동안만 둘러본 뒤 공원의 중심지로 이동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아치스’라는 이름에 걸 맞게 풍화 작용으로 구멍이 뻥 뚫렸거나 뚫리고 있는 듯한 아치형 바위가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 우리가 향했던 지점은 ‘윈도우즈 섹션’이라는 곳으로 거대한 구멍이 난 바위였다. 얼마나 큰 구멍이길래 이름을 ‘창문’이라고 지었을지 궁금해지던 찰나, 멀리 언덕 위에 위치한 한 무리의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나 거대했다. 바위 높이는 약 20층가량 되어 보였고, 뚫린 구멍의 크기도 아파트 10층 높이는 되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정말 커다란 창이 열린 듯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 바람결도 바위를 열심히 깎아내는 중인 듯했다. 공원 전체를 둘러볼 필요도 없이 윈도우즈 섹션에서만도 아치 바위를 실컷 볼 수 있었다. 윈도우즈 섹션 입구에는 ‘코끼리의 행진’이라든지, ‘더블 아치’ 같은 이름도 독특한 바위가 관광객을 맞이했다.


North Window라는 곳을 향해 올라가는 사진인데 뒷 배경에 코끼리 처럼 생긴 돌이 제법 많이 보인다.


윈도우즈 섹션 중 진짜배기는 ‘노스 윈도우’와 ‘사우스 윈도우’였다. 구릉 수준의 언덕이라 부담 없었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서 뜨거운 햇볕도 견딜 수 있는 지점이었다. 뜨거운 하늘 아래 냉장고 바람이 불어오니 풍화 작용도 활발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멀찍이 아버지가 하이킹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동안 실컷 보았던 붉은 돌덩이와는 다르다는 것을 아이들도 눈치 챘는지 차에서 내려 즐거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North Window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보는 바위 속 거대한 구멍이다.


천천히 언덕을 따라 올라갔다. 누나 가족은 사우스 윈도우 방향으로 향했고, 아들과 나는 계속해서 노스 윈도우 방향으 로 직진했다. 뜨거운 햇볕 아래라 아들 녀석이 걱정되었는데 다행히 다람쥐처럼 가볍게 산을 올라타고 있어서 대견했다.


“그만 올라갈까? 이쯤에서 사진 찍으면 되지 않아?”

“아빠, 왔으면 끝까지 가봐야지.”


아들 녀석은 뒤도 안 보고 나를 끌고 올라갔다. 백번 칭찬할 만했다.


가까이서 보니 크기는 생각 이상이다. 돌 밑에 보이는 사람들의 크기를 보면 그 크기가 엄청난걸 알 수 있다.
아들 녀석도 윈도우 까지 함께 했다


다음은 아치스 국립공원의 백미라고 불리는 ‘델리킷 아치’로 향했다. 10분여를 달려 주차장 부근까지 갔는데 지도를 보니 델리킷 아치까지는 제법 오랫동안 등산로를 따라 걸어 올라 가야 했다. 윈도우즈 섹션에서 힘을 많이 소진한 게 문제였다. 게다가 날씨가 너무 더워서 누구도 차에서 선뜻 내리려 하질 않았다. 결국 탐험 정신 투철한 아버지만 차에서 내렸다. 5분 쯤 뒤 차에 돌아온 아버지가 외쳤다.


“덥다. 그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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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Delicate Arch 로소이다. 출처=flikr.com


바로 결단을 내려준 아버지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귀국 후 아치스 국립공원을 복기해보니 바로 이곳, 델리킷 아치만 한 명소가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주차장에서 후퇴한 것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 델리킷 아치가 유명한 이유는 바위가 산 정상 부근에 자리 잡고 있고, 바위 뒤는 아무것도 없는 지평선이라서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란다. 대충 찍어도 작품 사진이 나온다는 말에 가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공원 끝자락에 있는 ‘데블스 가든’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악마의 정원’이라니 이름 참 화끈하다. 자이언 국립공원에서는 ‘천사가 내려온 곳’이라는 앤젤스 랜딩이 있었는데 아치스 국립공원에는 악마의 정원이 있다니, 유타주는 온통 선악이 극렬하게 충돌하는 곳이 아닐까 싶었다.


Devil's Garden 주차장에서 찍은 '정원'의 모습이다.
무엇인가가 쭈삣쭈삣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 같은 모양이다.


공원 입구부터 데블스 가든까지 쉬지 않고 이동했으나 차로 30분이 넘게 걸렸다. 어떤 이유에서 이름에 ‘악마’가 붙었는지 궁금했는데, 입구에서 보이는 바위의 아찔한 형상을 보니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산책로 주변에 삐죽삐죽 솟은 바위는 입장객을 하나하나 내려다보는 듯했다. 역시나 이곳에서도 날씨가 발목을 잡았다. 데블스 가든에 도착했을 때 일행 중 어느 누구도 이 뜨거운 태양 아래 서서 악마의 정원으로 들어갈 시도를 하지 못했다. 너무 더운 날씨 때문에 주차장에는 대형 구급차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공원 내부는 더 뜨겁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났다. 누구도 선발대로 자진하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이곳에서도 아버지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홀로 사라졌다 돌아왔다. 몹시 죄송스러웠다.


악마의 정원을 떠나 30여 분을 달려 다시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방문자 센터가 있었다. 짧은 5분 투어 전략으로 다섯 지점을 구경하다니 매우 아쉬웠지만 자이언 국립공원의 버스 투어보다는 허무하지 않았다. 오히려 밀도 높게 주요한 지점을 다 둘러보고 왔다는 뿌듯함이 일었다. 아치스 국립공원 에 머문 시각은 고작 몇 시간이었지만 중요한 지점을 잠깐씩 보는 새로운 여행 기법이 생긴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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