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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북로 버스 투어 느낌

여행에세이 베스트셀러 <그렇게 몽땅 떠났습니다>

by 김지수

여행에세이 베스트셀러 <그렇게 몽땅 떠났습니다>

260킬로미터를 달려 자이언 국립공원에 도착하다


여행의 시작점이던 환상적인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뒤로 하고 우여곡절 끝에 첫 번째 목적지로 이동했다. 우리의 첫 국립공원 탐험지인 ‘자이언 국립공원’이 목적지였다. 네바다주를 관통하며 유타주로 이동하면 나오는 작은 국립공원인데, 다른 공원에 비해 작을 뿐 실제로는 서울시 크기와 비슷하다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공원의 둘레만 해도 160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하니 미국에서 ‘크다’라는 표현은 쉽게 쓰면 안 되는 말인것 같았다.


PJxAsYWomkNKqSsAqLczxhQtXeo Temple of Sinawava 버스정류장, Riverside Trail Walk 입구에서


자이언 국립공원은 1919년 유타주의 첫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브라이스 캐니언, 아치스, 캐니언랜즈, 캐피틀리프 등 세계적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진 국립 공원이 유타주에 즐비한데 그중에서도 가장 첫 번째로 국립공승격이 되었다는 말에 자이언 국립공원의 위상을 실감 할 수 있었다. 공원 이름은 옛 예루살렘의 산 이름인 ‘시온’을 뜻하는 ‘Zion’과 같다. 이는 이 지역을 개척한 몰몬교 사람들이 이름을 붙인 까닭이라고. 공원이 거대하고 아름다워서 급이 높은 이름을 차용해서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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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s Landing, 출처=http://www.lovethesepics.com


유타주 경계선을 넘어서니 풍경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네바다주는 넓은 사막 평야에 회색 모래가 깔린 느낌이었다면, 유타주는 제법 굴곡이 느껴지는 산이 보이기 시작했고

흙 색깔도 회색보다는 붉은색에 가까웠다. 붉은 사막을 주파하며 30여 분을 더 달리니 하늘과 맞닿을 듯한 큰 산이 하나둘 씩 보였다. 그곳이 국립공원의 시작이라고 해서 다소 어리둥절 했다. 첫 국립공원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국립공원임을 알리는 화려한 지형지물이나 요란한 입간판이 세워져 있을 줄 알았는데 어디서부터가 공원의 경계선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소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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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도 차에서 오랫만에 내리니 즐겁다.


차를 타고 공원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엄청난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잘 정돈된 공원도 멋졌지만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위산의 크기였다. 못해도 30층 건물 높이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산이 입구부터 웅장하게 펼쳐져 있었는데, 그 크기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입을 다물 수 없게 했던 풍경 또 하나는 <스타워즈>에 나오는 우주선같이 거대한 바위가 거의 90도 각도로 깎여 있는 모습이었다. 공원을 가로지르는 버진강의 지류가 아주 오랜 시간 침식 작용을 통해 만들어낸 협곡이라는데 공원 협곡의 깊이는 어마어마했다. 어쨌거나 몇 시간 동안 거친 사막을 달린 끝에 만난 첫 공원이라 더욱더 반갑고 멋졌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더위였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맛본 뜨겁고 거칠던 섭씨 41도를 탈출했다지만 여전히 기온은 35도에 육박하고 있었다. 공기가 조금 시원해졌 을 뿐 강렬한 햇볕 맛은 똑같았다.


뜨거운 공원과 뜨거운 조우 후 차에서 내려 셔틀버스로 갈아탈 시간이 되었다. 자이언 국립공원은 11월부터 3월까지를 제외한 기간에는 자가용으로 공원 주요 도로에 진입할 수 없다. 미국의 국립공원은 매우 자연 친화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어느 글이 떠올랐다. 입구를 따로 표시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공원의 아스팔트마저 붉은 흙 색깔로 칠해져 있었다. 더군다나 자동차가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보니 끝내주게 관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차를 세우고 셔틀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했다. 인터넷에서 수없이 찾아본 장소였음에도 막상 현장 느낌은 달라서 우왕좌왕했다.


우리가 차를 주차했던 곳
3번 정류장인 Canyon Junction 이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뜨거운 햇볕이 격하게 우릴 반겼다.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도 끼고 짐을 주섬주섬 챙겨서 일사불란하게 버스를 타러 이동했다. 그때쯤 대장님의 본격적인 진두지휘 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자, 우리는 버스를 타고 제일 끝 정류장, 9번 역 ‘템플 오브 시나와바’까지 올라간다.”

“어? 템플요? 아버지, 지금 절까지 올라가기에는 너무 덥지 않나요?”

“갈 수 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가자.”


이 더위에 산속의 절을 찾아가는 것은 다소 무리가 아닐까 싶어 움찔했다. 하지만 나 또한 “제군들이여, 자이언 국립공원 속으로 입장하라”는 계획 말고는 아무것도 준비해오지 못했기에 아버지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음, 그래요. 가시죠. 저기 버스 온다.”


-Kfk2yzJJMhrHahGM5p8d3Zmuek 맑은 날씨에 3번 정류장에서 모두가 한 컷



신문 사회면에 나올 뻔한 일이 벌어졌다


버스에 모두가 올라탔다. 갑자기 아버지가 연신 재채기를했다. 평소에도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가 있으면 재채기를 자주했기에 우리에겐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하필 버스는 만석이었고 승객 모두 오밀조밀 붙어 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체격이 매우 크고 퉁퉁한 전형적인 미국인 옆자리에 앉았다. 그 미국인은 장충체육관 특설 링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몸집이었다. 거의 30초 단위로 나오는 아버지의 재채기를 그 거구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맞이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재채기는 정확한 박자에 맞춰 연주하듯 ‘에취’를 노래했다. 그 잔여물은 쉴 새 없이 유타주 하늘을 향해 뿜어나왔다. 당연히 옆자리에 앉은 거구는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뒤에서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나 또한 모든 신경이 아버지에게 집중되었다.


o0_if_N3dCEi6IfBdOrrXU-aYhk.JPG 셔틀 버스 내부. 아주 더웠던 기억 뿐이다.


시간이 지나도 아버지의 재채기는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였다. 옆자리의 그분은 이제 대놓고 기분 나쁘다는 듯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미국 문화에서 재채기는 아주 큰 결례라고 들었는데 역시나 그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거구는 아무 말없이 따가운 눈빛을 날릴 뿐이었지만 거대한 체구에서 뿜어내는 눈빛이 어찌나 매서운지 주변 사람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버지, 제발 입이라도 가리고 재채기하세요.’


아버지에게 조력자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에 무슨 말이라도 전하려고 했으나 입가에만 맴돌았다. 거구의 눈빛에 나도 위축되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거구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나는 아버지만큼은 보호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상황을 예의 주시했다.


‘공격할 테면 해봐라. 방어해주마.’


나뿐만 아니라 거구의 뒷자리에 앉은 한 아주머니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나를 한 번 힐끔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거구의 아내인 듯했다. 현명한 여성의 촉이 발동했는지 그녀가 거구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기 시작했다. ‘당신, 잠자코 있어. 상대편 일행 중에 남자가 둘이나 더 있어. 우리가 열세다’라고 말했을까. 아주머니는 계속해서 남자의등을 쓰다듬었고 거구의 불쾌함은 순식간에 누그러드는 듯했다. 여차하면 자이언 국립공원 4번 정류장에서 싸움에 임하려 했는데 상황은 싱겁게 정리되었다.


버스에서의 촌극을 추억으로 간직한 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첫 국립공원에서 즐겨야 할 에너지를 버스에서 모두 소비한 것 같았다. 게다가 몹시 뜨거운 날씨 탓에 아이들은 목마르다고 아우성이었다. 본인도 모르게 탈수 증상을 야기한다는 미국 날씨를 간과하면 안 된다고 누나가 말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모두 식수대에서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목적지로 삼았던 9번 정류장, 템플 오브 시나와바에 도착했지만 ‘산속의 절’은 보이지 않았다. 절은 절답게 속세와 차단 된 깊은 산속에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우리는 잠시 쉬며 사진도 찍고 여유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서운한 감정과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지치기도 했고 하이킹하기 좋다는 공원에 그냥 버스를 타러 온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점점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허무한 감정은 더욱 짙어졌다.


pZZNV16EkBc1RmCW_3Jir2deRx4.JPG 아이들도 내려서 물마시고 헉헉 거리며 쉬고 있다.


촬영 장비를 빠르게 조립하던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눈깜짝할 사이에 무리를 이탈한 아버지는 초대형 삼각대에 대형 카메라를 얹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마저도 아버지가 안 보여서 한참 찾은 뒤에나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아버지는 진작부터 무리를 떠나 사진을 찍고 있던 것이었다. 지친 나와는 달리 아버지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자연 속에 들어와서 멋지고 신비한 피사체를 바라보며 원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이 순간이 아버지가 꿈꾸던 여행의 참맛이 아닐까 싶었다.


“아버지, 다들 이제 정리하는 분위기인데 저희 다음엔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너희들 먼저 가라.”

“네?”

“난 사진 좀 찍다 갈 테니, 밑에 롯지에 가서 밥 먹으며 쉬고 있어. 이따 갈게.”

“전화도 안 되는 곳이에요. 괜찮으시겠어요?”

“내려가서 쉬고 있어라.”


fASKqvRPo0vWa146DroVqdzaCJM.jpg 첫 국립공원에 오셔서 들뜬 마음으로 촬영에 여념이 없는 아버지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한 채 우리는 강변북로 버스 투어를 마치고 올림픽대로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여행객 꼴이 되어버렸다. 9번 정류장보다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더위로 벌겋게 부어오른 아이들의 볼을 보고 있자니 전진보다는 후퇴가 현명한 선택인 듯했다. 아이들과 잠시 쉬고 배도 채우기 위해 5번 정류장인 ‘자이언 롯지(Lodge)’로 향했다. 산장이 있어서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었고 음식점도 있었다. 음식점 건물에는 기념품 가게도 있었다. 그곳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이끌려 땀을 식히러 들어갔다. 그런데 꽤나 중대한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이 기념품 가게가 이번 미국 여행 계획의 많은 부분을 뒤흔들어놓는 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Zion Lodge 중앙의 풀밭 및 Catle Dome Cafe, 출처=http://www.zionlodge.com/


여행의 목표가 생기다


국립공원 기념품 가게는 어딜 가나 비슷한 듯했다. 자이언국립공원 로고를 단 수천 가지의 상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기념으로 냉장고에 붙일 장식용 자석을 하나씩 모아보라는 제안이 있었지만 내 취향이 아닌 것 같아 다른 것을 찾았다. 그중에서도 볼펜이 눈에 들어왔다. 자이언 국립공원의 로고와 사진이 볼펜에 그려져 있고 종류는 세 가지, 가격은 1.5달러밖에 안 해서 부담도 없었다.


회사 팀원 열한 명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고 있던 터라 가성비 높은 볼펜을 보는 순간 바로 이거라며 손뼉을 쳤다. 하나씩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번 여행에 우리가 방문할 국립공원은 총 여섯 군데. 가는 곳마다 볼펜을 세 개씩 사면 총 스무 개 남짓의 볼펜을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팀원들의 선물을 단번에 해결해서 매우 기뻤다. 외국 여행 시 단골 선물인 초콜릿보다는 특별한 아이템이 될 듯했다. 그렇게 국립공원 기념품 볼펜 수집이 이번 여행의 핵심 목표가 되어버렸다.


eapgz2qX2bfk75QGeqeQBjc2d0E.jpeg 두툼한 그립감에 제법 기념이 될 만큼 멋지게 생긴 볼펜이다.


급하게 볼펜을 계산하고 피자, 콜라, 빵, 물 등을 구매한 뒤 허기를 채우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여섯 멤버 모두 조금씩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아, 이게 미국인가. 참 여유롭고 좋다.’


입에 피자를 털어넣고 사막 속 오아시스 같은 풀밭을 보며 낭만을 곱씹고 있으니 멀리서 아버지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피곤해 보였다.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서 잃어버렸다고 했다. 아버지는 피자 한 조각을 드시더니 이내 모두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자이언 국립공원을 찾기 위해 수십 시간을 준비했는데 단 세 시간 만에 돌아가게 된 것이었다. 허탈했지만 오후에는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에 가야 하는 일정이 있어 어쩔 수 없었다. 나만 아쉬웠던 걸까. 셔틀버스에 앉은 멤버들의 표정은 꽤 밝아 보였다.


첫 국립공원에서의 첫 점심, Pizza와 콜라, 감자칩이다.


Castle Dome Cafe 앞의 잔디 밭이다.


서울에 돌아와 여행 기록을 다시 들췄을 때 자이언 국립공원의 ‘냄새만 맡고’ 돌아온 것이 무척 아쉽고 후회되었다. 국립공원 1회 입장권이 일주일이나 유효한 까닭을 이해하게 되었을만큼 자이언 국립공원에는 숨겨진 명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곳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최소 1박 이상을 할애해서 이 공원을 만끽하고 싶다.


lRfFdSGSVQVWow7sRimTSHV4_-U.jpg Canyon Overlook Zion NP, 출처 = http://uniquew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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