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걸음만에 시를 짓다

감수성과 통찰력이 공짜로 생기는 건 아니다

by 현실컨설턴트

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
본디 한 뿌리에서 자랐건만
왜 서로 들볶아야만 하는지.


고등학교 다닐 때 한문이 정규과목이었습니다. 그때 한시라는 것을 배웠는데 아직까지 인상에 남아있는 시가 바로 저 시입니다. 저도 처음 보고 '참 재미있는 시구나' 했습니다. 재미있기는 했지만 해석된 내용을 봤을 때 대단해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 시의 제목은 칠보시(七步詩). 말 그대로 일곱 걸음을 떼는 동안 시를 지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멋진걸!"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이 시에 대한 제 인상의 전부였습니다. 십 수년이 지나고 회사에서 중국으로 파견을 가게 됩니다. 중국어를 배우게 되었죠. 어느 정도 중국어에 익숙해진 후에 이 시를 다시 만났습니다.

image.png 중국 주재원으로 있을 때, 중국어 공부 열심히 했더랬죠. 그때 현지에서 적어 본 칠보시입니다

중국어를 알고 적어보니 깜짝 놀랍니다. 7걸음 딛는 동안 동시같은 랩을 하기도 힘든데, 한자를 5자씩 딱 맞췄고, 중국어 발음으로 보면 라임까지 맞췄습니다. 절로 "대단해!"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진짜 감탄은 시와 얽힌 이야기를 마음으로 이해했을 때입니다. 이 시는 삼국지의 영웅인 조조의 셋째아들인 조식이 지은 시입니다. 조조가 죽고 첫째 아들인 조비가 왕이 됩니다. 신하들은 조조 생전에 총애를 받던 조식을 처단하라 닥달을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술에 절어있던 조식을 불러 올린 형이 조비를 보고 명합니다.

"7걸음을 떼기 전에 시 한수를 지어봐라."

동생의 문학적 소질을 의심하던 형은 조조에게 지어올리던 시가 조식이 직접 지은 것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부하들에게 시켰을거라 생각한거죠. 일종의 시험이었습니다. 그 명령에 답한 '칠보시' 입니다. 이제 시가 다르게 보일 겁니다. 정말 슬픈 시죠.


"어떤 경험 많은 컨설턴트도 고객의 상황을 100퍼센트 완벽히 이해하고 일을 시작할 수는 없어. 컨설팅을 한다는 건 고객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반복이에요. 그 과정에서 얼마나 좋은 질문을 끈질기게 던지느냐가 좋은 컨설턴트와 평범한 컨설턴트를 가르지요."

컨설팅 일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주니어 컨설턴트는 방금 들은 말이 바로 이해가지 않았습니다. 잠시 버퍼링에 걸렸다가 조심스레 되물었습니다.

"그럼, 경험이 중요하지 않네요?"

맥킨지에서 20년간 한 산업만 팠다는 그 시니어 파트너는 커피를 한모금 삼켰습니다.
"이런 차이는 있지. 특정 산업을 한 번만 본 사람은 모든 점이 있어야 첫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데, 다섯 번 본 사람은 그 점의 5분의 1만 있어도 그릴 수 있지요. 그런데 몇 백 번씩 들여다본 사람은 백지상태에서도 그려내지요."


컨설턴트나 경영자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합니다. 작가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하죠. 경험이 미천할 때 저는 이 두가지가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재능인줄 알았습니다. 물론 타고난 천재가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런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극히 드물더군요. 그리고 그런 분들은 우리의 상대가 아닙니다. 나머지 99.999퍼센트의 인류는 통찰력과 감수성을 쌓는다고 생각합니다. 칠보시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적어도 세 개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일곱 걸음 안에 지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중국어를 알아서 원어로 발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생을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뜻과 다르게 해를 끼쳐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는 연륜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칠보시를 듣고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감수성은 어떤 면에서 그저 얻어지지 않습니다. 많이 알수록 많이 경험할수록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컨설턴트의 통찰력도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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