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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리 Sep 14. 2020

제주 #11

음악 그리고 파도

04월20일 1257




안돌오름으로 발길을 옮긴다. 내비게이션이 이상한 곳으로 안내한다. 곧바로 새로운 길을 찾아 숲길을 지난다. 이런 숲길을 지날 때는 백예린의 Square를 틀어주면 좋다. 아주 청량한 기분이 든다. 푸른 하늘 아래 길게 뻗은 나무. 산들거리는 바람 속으로 퍼지는 백예린의 목소리. 아, 내가 여행을 왔구나. 백예린의 Square가 주는 청량함은 제주의 푸릇한 바람을 배가시켜준다. 역시 여행에는 음악이 빠질 수가 없다.


나는 무언가를 할 때 음악을 항상 배경으로 두는 편이다. 집중을 할 때는 Sasaki Isao의 Sky Walker와 같은 잔잔한 뉴에이지를, 땅거미가 잔잔히 내려앉을 땐 Eddie Higgins Trio의 Autumn leaves와 같은 재즈를, 작업을 할 때는 Lauv의 Never not 같은 잔잔한 노래를, 운동할 때는 Ellie Goulding의 Burn과 같은 신나는 노래를. 무언가를 할 때 음악을 배경으로 깔아주면 내가 존재하는 그곳의 분위기가 증폭된다. 와인 한잔과 높은 언덕에서 바라본 이쁜 노을에 재즈 음악이 깔리면, 어쩌면 그곳이 바르셀로나 혹은 빠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분위기에 맞는 음악.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만약 서양식 칵테일바에서 뽕짝노래를 듣게 되면 칵테일이 더욱이 맛없게 느껴질 거다. (뽕짝노래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성수의 한 바에서 그런 경험이 있었다. 사장님께서 디제잉을 하셨는데 본인의 입맛에만 맞는 노래를 틀어 사람들이 떠났다.)



친구B, 사진 찍는건 좋아하는데 찍히는걸 좋아하진 않는다.


에코백에서 아이패드와 키보드를 꺼내 트렁크에 앉아본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오름 주변을 바라본다. 청보리밭이 펼쳐진다. 제주에는 수많은 오름들이 있다. 그중에 안돌오름은 청보리밭이 두드러지게 이쁜 곳이다.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점점 거세어진다. 세찬 바람이 청보리에 담긴다. 청보리들은 자기만의 방법으로 바람을 담는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햇살이 만들어낸 그늘이 진다. 바다 위로 파도가 일렁이듯, 청보리밭 위로 그늘이 일렁인다. 저만의 파도를 만들어 낸다. 어쩐지 자연은 다 닮아있더라. 여전히 바람은 세차다. 친구 A와 B는 사진을 다 찍었나 보다. 바람이 차다. 트렁크 문을 닫는다. 출발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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