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 그리고 사진
다음엔 세화해변으로 향한다. 제주도에 왔으니 바다를 봐야지. 바다로 향한다. 제주 바다 중에서는 애월읍의 금능해변을 가장 좋아한다. 새하얀 모래밭과 맑은 파도, 바다 위로 점점 짙어지는 사파이어층이 빛나는 곳. 어찌 보니 세화해변은 금능해변을 닮았다. 그래서 좋다.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걸으며 하늘과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곳. 주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내 생각만 할 수 있는 곳. 그래서 난 금능해변이 좋다. 오늘부터는 세화해변도 좋아해야지.
세화에는 오일장도 열린다. 흔히 아는 장이다. 한 바퀴 돌며 간단하게 먹을 레드향을 한 봉지 사들고 차로 간다. 제주여행의 묘미다. 제주에 올 때면 꼭 감귤이든 한라봉이든 손으로 까먹을 수 있는 씨트러스계의 과일을 사 먹는다. 엔젤렌트카 안에는 항상 그 과일의 껍질 향과 껍질에서 갓 나온 싱그러운 씨트러스 향이 풍긴다. 세화해변을 잠깐 거쳐서 김녕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아 여길 와보니 오히려 세화보다는 김녕이 금능을 닮아 보인다. 응?
사실 지금 날씨가 조금 쌀쌀하다. 4월인데도 말이다. 티셔츠 하나에 린넨셔츠를 하나 걸치고 왔는데 바람이 차다. 다행히 커피템플에서부터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내리쬐기는 하지만 바람이 차서 봄의 기운은 온데간데없다. 4월인데 제주의 날씨는 오락가락한다. 참 아이러니한 게, 지금의 분위기를 정적인 사진에 가두어 놓으면 맑은 바다와 햇살 때문에 정말 따스하고 평화로운 풍경으로 남는다. 사진이란 게 참 아이러니하다. 실상은 추워서 덜덜 떨고 있는데 말이다. 파도도 그렇고 하늘도 그렇고 사진에 담긴 풍경들은 항상 평화로워 보인다. 극적으로 먹구름 집 한 채를 집어삼킬 듯한 커다란 파도만 아니면 말이다. 소개팅도 마찬가지다. 사진으로 판단하기는 힘들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메뉴에 올려져 있는 사진으로는 판단하기 힘들다. 그저 참고만 하는 거다.
우리네의 삶은 사진에 둘러싸여 있고 그 사진이 만들어낸 왜곡에 둘러 쌓여 있다.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들어 카카오톡을 실행해버린다. 속세의 습관은 쉽게 멈추어지지 않는다. 이번 여행은 아날로그 여행이지. 카카오톡은 잠깐 접어두도록 한다. 세상과의 단절, 오로지 두 명의 친구에 집중하자. 그리고 나에게 집중하자. 제주의 자연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