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에서 제주도민이 되다

프롤로그

by 여유수집가

내 청춘이 왜 여기서 낭비되어야 하나, 나는 왜 이 순간 이런 대접을 받고 있나. 때론 치사하고, 때론 더럽고, 때론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참아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성인이 됐으니 당연히 스스로 생계를 유지해야겠고, 내 집 마련과 같은 재산 증식도 필요하고, 갖고 싶은 물건도 사야 한다. 하지만 내게는 이런 이유보다 더 앞서는 이유가 있다. '내 돈으로 떠날 수 있는 여행'이다.


장기휴가를 쓰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매년 한 번 이상은 눈을 질끈 감았다.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몇 개월의 에너지 충전이 가능했다. 5일 휴가, 7박 9일의 여행, 몇 개월의 버팀. 퇴사로 향하는 마음을 다독이는 나름 가성비 높은 전략이었다. 물론 휴가가 필요 없는 주말여행은 언제나 계획에 있었다. 원하는 '일'보다 '돈'을 우선해 선택한 직장이었기에 버티게 만드는 요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역마살이 있는 직원으로 통하던 시절. 이건 다 엄마가 되기 전의 이야기다. 엄마가 되고 보니 눈 질끈 감을래야 감을 수가 없었다. 아기 한 명을 데리고 떠나기 위해 챙겨야 할 짐이 너무 많았고, 고려해야 할 요소도 너무 많았다. 그렇다고 아기를 떼어놓고 떠날 배포도 없었다. 게다가 아기가 갑작스레 아플 비상상황을 대비해 휴가도 아껴야 했다.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간절해지는 법. 몸이 머물러야 한다면 머리로라도 떠나야 했기에 내 손에는 육아 지침서가 아닌 여행 에세이가 들려 있었다.


"뒤따라올래?"


목, 금 1박 2일 일정으로 제주도 출장을 가게 된 남편. 여행 에세이를 붙잡고 있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뒤따라오라는 제안을 한다. 금요일 오전이면 끝나는 업무. 금요일 점심 무렵에 내가 딸 하이디와 제주도에 도착하면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기회를 놓칠쏘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냉큼 대답이 튀어나왔다.


"당연하지!"


남편은 자신의 섣부른 제안을 곧바로 후회했다. 딴생각을 자주 해 길에서 종종 부딪히고 넘어지는 내가 딸 하이디까지 데리고 이동하는 것이 불안하다고 했다. 혼자서 유모차에 짐까지 챙겨야 하는데 무리라고 했다. 그러나 낙장불입. 말은 이미 입 밖으로 나왔고 후회는 늦었다. 꾹꾹 눌러가며 참았던 마음에 빗장이 풀린 나를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금요일 휴가를 내고 공항버스를 타고 뒤이은 비행기 탑승까지. 나는 무적 엄마가 되어 하이디와 단둘이 여행길에 올랐다. 18개월이 된 하이디는 비행기도 제주도도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하이디도 엄마의 긴장을 느껴서일까. 소리 빽 지르는 것 없이 남들에게 민폐 끼치는 것 없이 엄마가 무사히 아빠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왔다. 물론 하이디가 나를 돕게 하기 위해 공항버스 이동 1시간 동안은 하이디의 귓가에 쉼 없이 노래를 불러줘야 했고, 비행기에서 1시간 동안은 음소거된 뽀로로 영상을 보여주며 하이디가 소리를 찾아 칭얼거릴 때마다 내가 대신 성우가 되어야 했지만 괜찮았다. 여행에 대한 들뜸은 모든 것을 다 괜찮게 했다.


엄마 편이 되어준 하이디와 달리 날씨는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비가 내렸고 바람도 제법 거셌다. 그렇다고 답답한 실내 관광지로만 다닐 내가 아니다. 유모차에 레인커버를 씌우고 비옷을 입은 뒤 비자림에 갔다. 천년의 울창한 나무는 비와 바람을 막아주었고 비 냄새를 얹은 비자 향은 온몸 깊숙이 퍼져 들었다. 회색 빌딩 속이 아닌 넘치는 초록빛 세상. 딱딱한 아스팔트가 아닌 발걸음에 맞춰 스륵 움직이는 화산송이 길. 걷는 걸음마다 마음은 가벼워졌고 내 모든 감각은 깨어났다. 글과 머리가 아닌 몸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생생함. 내가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였다.


비 오는 제주도 이렇게 좋은데 쨍한 날씨의 제주는 얼마나 좋을까. 숲의 향이 이렇게 싱그러운데 바다의 향은 어떨까. 비자나무가 아닌 삼나무 한가운데서는 어떤 느낌이 들까. 아쉬움이 남았다. 게다가 제주는 눈 살짝만 감아도 떠날 수 있고 아이랑 함께 오는 것도 가능하기에 아쉬움은 더더욱 포기가 안 됐다. 어렵다는 처음도 쉽게 넘기지 않았던가. 두 번째는 더 쉬울 수밖에.


SAM_9017.jpeg 2015년 3월 22일, 대평리

동백꽃이 핀 제주, 유채꽃이 핀 제주, 벚꽃이 핀 제주, 수국이 핀 제주. 꽃만 보러 가도 몇 번. 그렇게 초여름까지 누리고 나면 바다 물놀이를 위한 한여름의 제주가 기다리고, 억새 만발한 가을을 넘어 눈썰매를 탈 수 있는 겨울의 제주까지. 매번 돌아오는 길에 남는 아쉬움을 채우고자 다시 또다시 찾았던 하이디와 함께한 제주 여행은 어느새 열세 번이 됐다. 18개월 처음으로 제주를 찾았던 하이디는 어느덧 아홉 살로 자랐고.


제주도는 같은 대한민국이지만 전라도, 강원도를 찾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섬이 주는 고립감이 일상과의 간극을 더 크게 하고, 제주만의 현무암과 오름, 곶자왈이 시간을 느리게 만들어준다. 내 여행욕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라도 제주에 가면 일상의 많은 고민과 내가 분리되고, 머리가 아닌 몸으로 세상을 만나며,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솔직한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편안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은 매번 나를 다시 제주로 이끈다. 여기에 제주가 가진 수많은 여행 명소들은 부록으로 따라와 여전히 낯선 매력을 발산한다.


20170403.jpg 2017년 4월 3일, 가시리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제주에 더 볼 것이 있냐고. 지겹지 않냐고. 뭐 숨겨 놨냐고. 제주의 오름 숫자만 해도 360여 개. 그중 내가 오른 오름은 5개 남짓. 아직도 너무 많은 오름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휴양림과 해수욕장도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 남아있다. 또 같은 곳이라도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몇 살의 하이디와 같이 왔느냐에 따라 다르니 어찌 지겨울 수 있으랴. 그래서 자꾸만 더 욕심이 났다. 2박 3일에서 3박 4일, 1주일에서 2주일, 결국에는 한 달까지 머무르게 된 제주. 한달살이를 하고 나면 제주에 대한 갈증이 해소될까 했지만 반대로 더 심해지기만 했다.


지독한 제주 사랑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남편도 제주를 너무 좋아했다. 남편과의 술자리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 중 하나가 제주였다. 퇴직하면 제주에서 살자, 그럼 은퇴는 언제 할 거냐, 꼭 그 나이까지 기다려야만 하느냐. 어떤 날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어 머무는 제주를 상상했고, 어떤 날은 남편이 남아 있는 육아휴직을 쓰고 하이디와 둘이서 내려간 제주를 상상했고, 어떤 날은 '인생 뭐 있어'를 외치며 온 가족이 서울 생활을 다 접고 당장 내려간 제주를 상상했다. 상상을 거듭하면 현실이 되는 법. 2020년 3월, 열 살이 된 하이디와 열네 번째 제주를 찾았다. 제주에 살 집을 구하기 위해.


20200521_110355.jpg 2020년 5월 21일, 서울집

서울살이의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남편 삶의 주 무대는 서울로 남겨둬야 했다. 마흔네 살의 남자와 마흔 살의 여자가 부릴 수 있는 객기, 철없음, 무모함의 한계가 여기까지 이기도 했고, 상상과 현실이 다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 15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주말부부를 하며 아이랑 제주로 터전을 옮긴 것만으로도 큰 변화이고 도전이 아닐까. 조급해하지 않기로 한다. 바라던 모든 것이 한 번에 뚝딱 이뤄지는 것은 동화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일 테니. 하나씩 이뤄가고 조금씩 맞춰가며 우리만의 방식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첫 페이지를 지금 이렇게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