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선언

by 여유수집가

퇴사를 결정했다. 입사 2년 차 적성에 맞지 않는 일 대신 세계 일주를 계획하며 퇴사를 고민했었고, 입사 7년 차 엄마가 되며 육아가 버거워지는 순간마다 퇴사를 고민했었다. 그리고 입사 16년 차 길었던 고민을 끝내고 퇴사를 결정했다. 고민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결정을 하고 나면 시원할 줄 알았건만 아니었다. 결정 뒤에도 많은 난관이 존재했다.


딸 하이디의 결핍을 인지한 순간부터 우리 부부는 거의 매일 심야 대담을 나눴다. 하이디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나의 퇴사를 결정하고, 퇴사 후의 삶이 풍요로울 수 있도록 남편과 내가 사랑하는 제주로의 이주를 결심했다. 다음은 제주도 어디서 살아야 할지를 정할 차례. 주말부부를 해야 하니 공항에서 멀지 않고, 느긋하게 살고 싶으니 도심권이나 관광지는 아니며, 자연의 푸른빛을 매일 볼 수 있고,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작은 학교가 있는 곳을 찾았다. 이런 조건 역시 남편과 대화를 통해 결정했다.


여행을 다니며 마음에 두었던 타운하우스 단지가 우리의 조건에도 맞았다. 단지 안에 연세로 나온 집이 있는지를 빨리 알아보라는 남편. 반갑고 든든한 그의 재촉을 마음에 담고 그날의 심야 대담은 막을 내렸다. 다음 날 아침, 출근 준비로 분주한데 남편이 쓱 얼굴을 내밀었다. 잠시 망설이더니 폭탄 투하.

"이 집에 혼자 남으면 너무 우울할 것 같아. 퇴사는 하고 서울에서 같이 살면 안 되나?"


행동도 두뇌도 일시 정지. 출근길 스마트폰으로 연세를 검색하리라 생각하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나만큼 제주를 좋아하는 남편인데 그를 두고 나만 가게 돼서 미안했다. 가장의 책임을 혼자에게만 지우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그래도 찬성했던 일 아니었던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날 며칠을 나눈 이야기인데 머리가 멍했다. 얼어붙은 나를 피하고 싶었음인지 생각해보자며 급히 상황을 매듭지으려는 남편에게 나도 폭탄을 던졌다.

"서울에서 살아야 하면 회사 계속 다니지 뭐."


제주 연세는 무슨. 출근길에 양평, 광주, 강릉 등을 검색했다. 경기도에서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곳과 KTX로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을 찾았다. 퇴사 후 서울에서 그대로 사는 것은 싫었기에 제주도가 안된다면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퇴사는 곧 수입 감소.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는 하이디를 공립초등학교로 전학시켜야 한다. 같은 집에 그대로 사는데 좋아하는 학교를 그만 다녀야 한다면 하이디가 이해할 수 있을까. 이사는 필수. 15년의 커리어를 내려놓으며 자연 속에서 일상 여행자로의 삶을 꿈꿨는데 도시에서 그대로 사는 삶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나는 전국에 지점이 흩어져 있어서 주말부부 동료들을 자주 접했다. 주말부부는 내게 그리 큰일이 아니었던 것. 해외로 떠나 기러기 부부를 하는 일도 있는데 제주도는 마음만 먹으면 금세 올 수 있는 곳 아니었던가. 게다가 혼자 책 보고 글 쓰고 영화 보고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남편 역시 혼자 누리는 시간이 좋으리라 생각했다. 제주에 나만 가는 것은 미안했지만 혼자 남는 남편의 삶이 우울하리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집 안의 고요함이 어색하겠지만 곧 적응하리라 믿었던 것.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을 드러낸 그의 마음을 이대로 묻어도 되는 걸까. 우리는 심야 대담을 잠시 중지했다. 서로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강릉이나 양평도 괜찮아. 당신을 우울하게 만들면서까지 제주도를 갈 수는 없어."

며칠이 지난밤. 어색한 분위기에서 심야 대담은 재개됐다. 소주 한 잔을 꿀꺽 넘긴 뒤 남편은 입을 열었다. 며칠간 일이 손에 안 잡혔다고. 충분히 고민했다고. 그냥 제주도로 가라고. 어차피 평일은 바쁘고 주말은 제주도에서 보면 되니 괜찮다고 했다. 좋은 자연환경에서 하이디와 내가 행복하고 건강하면 괜찮다고. 자신 역시 주말은 늘 여행 가듯 살 수 있으니 괜찮다고. 제주에 가라는 그의 말을 그대로 믿어도 되는 걸까. 나는 거세게 흔들렸고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데 오히려 나를 흔든 남편은 단단해진 듯 보였다. 충분히 곱씹은 결과인지 갖고 있던 불안과 걱정에 답을 찾은듯했다. 그가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부동산에 연락을 취하고 제주도 숙소를 예약한 것. 집을 보러 가자고 했다. 1월 초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하고 두 달만의 일이었다.


KakaoTalk_20200907_115619331_03.jpg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한 날, 우리의 만찬

적극적으로 나서 준 남편 덕에 제주도에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았다. 이사 시기를 확정하고 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 그전에 부모님과 회사에 퇴사와 제주 이주를 알려야 했다. 제주도에 다녀온 1주일 뒤, 혼자 부모님 집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내 생일을 사흘 앞둔 날이었다. 두근두근. 퇴사를 선언하는 데 가장 어려운 상대는 바로 부모님이었다. 두 분이 내게 갖고 계시는 기대를 알고 있었고, 내가 회사 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하이디를 3년 동안 키워주시기도 했고, 지금도 아빠는 아침이면 우리 집에 오셔서 내가 출근한 뒤 하이디가 등교하기 전 생기는 30~40분의 공백을 채워주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엄마, 아빠, 나 퇴사하려고. 그만두고 제주도로 이사할 거야."

엄마가 차려준 정성스러운 저녁을 먹고 후식을 먹으며 나는 툭 말을 던졌다. 당황한 아빠와 엄마의 침묵이 너무 무거워 작은 것 하나까지 속속들이 이유를 말했다.


"생각 좀 해보자."

"제주도로 이사 가면 앞으로 나는 너 안 볼 거야."


퇴사는 몰라도 제주 이주는 안된다는 부모님. 아빠는 완곡한 반대를, 엄마는 거센 반대를 표현했다. 내 나이 마흔, 내 가정을 꾸린 지 11년 차. 부모님께 동의를 구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상의를 드리러 간 것도 아니었다. 우리 부부가 심사숙고해서 결정했으니 지지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미리 알려드리러 간 것이었다. 답을 정해놓고 통보하는 것으로 여기셔도 어쩔 수 없었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성인이니까. 성인이 되고도 한참의 시간이 흘렀으니까. 사실 내가 예상했던 상황은 반대가 아니었다. 서운하다, 아깝다, 마음이 편치 않다 같은 속상한 마음을 표현하시면 행복하고자 내린 결정이라고, 잘 살겠다고 내가 다짐하며 확신을 드리는 모습을 그렸었다. 하지만 부모님께 나는 여전히 품 안의 자식이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부모님께는 마음을 내려놓으실 시간. 내게는 부모님께서 반대하시는 마음을 이해할 시간. 특히 엄마의 거센 반대는 상처가 됐다. 아직도 나를 믿지 못하며 독립된 어른으로 바라봐주지 않는 마음이 버거웠다. 먼저 연락을 드리지 않고 버텼다. 허락해달라고 부탁하기도 싫었고, 허락하든 말든 갈 거라고 몰아붙일 수도 없었다. 동생을 통해 엄마가 점점 마음을 돌리시고 있다고 전해 들으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다행히 부모님이 마음을 돌리시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KakaoTalk_20200907_115619331.jpg 방송을 촬영하던 어떤 날

부모님 다음은 부장님이었다. 사내방송 기획과 제작을 담당하는 나는 코로나가 급격하게 퍼지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공들여 제작한 방송은 미방영으로 결정되고, 예정된 방송 아이템들은 급하게 변경되며 기획부터 모든 제작 과정을 새로이 진행해야 했다. 연이어 야근할 수밖에 없던 시기. 부장님께서는 고생한다며 점심을 사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날은 D-day가 됐다.


"요즘 정말 고생 많아. 하고 싶은 말 많을 텐데 편하게 해."

"부장님, 저... 퇴사하려고요."


갈비탕을 앞에 두고 나는 퇴사를 선언했다. 툭 툭 툭. 뚝배기만 두드리던 그는 다시 한번 물었다.


"뭐라고?"

"퇴사하려고요. 힘들어서는 아니고 제주도에서 살고 싶어서요."


힘들어서라고 하면 업무를 조정해주겠다는 말로 내 마음을 돌리려 하실까 봐 제주 이주를 밝혔다. 15년 내내 일복이 넘쳤는데 업무가 조정된다고 해도 일복은 줄지 않을 것이고 에너지 소진을 막을 수 없음을 나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힘들어서는 아니라고 하니 부장님은 다른 이야기를 꺼내셨다. 고과가 좋아 내년 승격도 무난한데, 요즘 여성 부장들이 많은데 욕심내도 될 것 같은데, 지금 하는 일과 너무 잘 어울리는데, 워킹맘 후배들이 롤모델로 생각하던데. 마음을 돌려보려 애쓰셨지만 나는 완강했다. 먹는 둥 마는 둥 식사가 끝날 무렵 그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재고 여지가 없는 거지?"

"네!"


카페로 자리를 옮기며 부장님은 체념하신 듯했다. 죄송하다는 내게 미안해할 일이 아니라고 하시며 남은 것은 자신의 몫이라고 내 마음을 가볍게 해 주셨다. 문제는 가벼운 마음은 이날뿐이었다는 것. 부장님께 퇴사 의사를 밝히고 나면 부장님께서 인사파트에 의사를 전달해주시고, 그 후 나는 인사파트와 퇴사 일정과 절차 등을 협의하고, 협의가 완료되면 부장님께서는 업무 후임자를 정해주시고, 나는 업무 인수인계와 퇴사 인사를 하는 프로세스를 예상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다. 그냥 묻어두고 있으면 내 마음이 돌아설 것으로 예상하셨던 것일까. 잠잠해지지 않는 코로나 환경 속에서 방송 아이템은 계속 변경됐고 퇴사를 선언했음에도 나는 계속 야근을 하고 있었다.


예정된 퇴사일까지는 한 달이 남았지만, 2주는 휴가를 쓸 계획이라 마지막 출근 날까지는 2주가 남은 주말. 나는 여전히 방송 원고를 쓰고 있었다. 분명 부장님과 협의한 퇴사일과 마지막 출근일인데 일부러 모른 척하시는 것인지,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러시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2주를 앞두고도 부서원 대부분이 나의 퇴사를 모르고 있는 상황은 답답했다. 일요일 밤 완료한 방송 원고를 메일로 보고하며 내 마음을 남겼다. 업무 후임을 정해달라고. 부서원들도 이제는 알았으면 좋겠다고. 주말 내내 망설이다 메일을 드린다며 완곡한 표현을 골라 단호한 의사를 전했다. 인생의 가장 큰 변화를 잘 맞이하고 싶다고. 그제야 부장님은 잘 마무리하라고 하시며 퇴사 프로세스를 진행하셨다. 평소 과묵하셔서 속내를 알기 어려웠던 분. 마지막 날에서야 뒤에서 애써주셨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단지 그 시기 우리 부서가 너무 바빴고, 내가 맡은 방송에 이슈가 많은 탓에 여유가 없어 드러나지 못한 마음이었다.


KakaoTalk_20200907_115619331_02.jpg 집을 계약하러 간 제주에서

누구 하나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남편도 부모님도 부장님도 나를 붙잡았다. 남편이 붙잡을 때는 아팠고, 부모님이 붙잡을 때는 서운했고, 부장님이 붙잡을 때는 답답했다. 물론 가장 앞선 감정이었을 뿐. 단어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내 결정에 확신이 없어서 스스로 잘한 결정인지 묻고 다짐하느라 여력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꼭 내 변화를 막아서는 것 같아서.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들이 붙잡았기 때문에 한 번 더 고민했고 한 번 더 확신했기에 내 의지가 더 단단해졌음을. 흔들렸지만 꺾이지 않았고 연약했지만 굳세진 내 결심은 결국 나를 퇴사하게 했고 제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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