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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Sep 09. 2020

제주도로 이사하다

서울에서 제주로의 이사. 누군가는 제주 이민이라고도 했다. 바다를 건너는 일이니 보통의 이사와는 다를 터. 차근차근 준비하고 싶었다. 게다가 우리는 서울집을 그대로 남겨두는 두 집 살림을 시작해야 했기에 챙길 것이 더 많았다. 


5월 21일로 이삿날을 정했다. 6월 3일 등교 개학 전에 이사하기 위해서였다. 예정했던 7월 말에서 한참 당겨진 날짜. 준비할 시간이 확 줄어들었다. 새로운 삶을 꼼꼼하게 준비하고 싶었고 단단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려놓아야 했다. 우선순위를 정해 중요한 것부터 효율적으로 챙겨야 했다. 효율은 15년 내내 회사 생활을 하며 익힌 가치니 걱정 없었다. 걱정하지 않는다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느긋하게 살고 싶은 퇴사 후 삶마저 왜 급하게 시작해야 하는지 참 복도 없다 싶었다. 


회사에서 배운 가치는 회사에서 배운 방법으로 실천해야 했다. 엑셀 파일을 만들었다. '제주 이주 프로젝트' 파일이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경험을 살려 프로젝트 일정관리 방법을 도입했다. 5월 21일을 D-day로 정하고 해야 할 일을 세분화해 일정을 짰다. 


이사 준비 중 가장 어려웠던 일은 책 정리였다. 돈을 버는 동안 책값만큼은 아끼지 않겠노라며 책을 샀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모두 샀고, 관심 있는 주제의 책도 아낌없이 사들였다. 물론 베스트셀러 중 꽂히는 제목의 책도 어느새 우리 집 책장에 꽂혀 있었다. 다 읽고 안 읽고는 나중 문제였다. 책장에 꽂힌 책들이 내 취향을 말해주고, 책 제목만으로도 뇌는 자극을 받는다고 믿기에 책 사는 일은 언제나 신났다. 내게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큰 책꽂이 5개를 넘긴 책들을 모두 다 이고 지고 갈 수는 없었다. 재산을 줄여야만 했다. 


제일 먼저 남편 취향의 책을 골라 서울에 남길 책꽂이에 꽂았다. 다음은 하이디 책. 나이를 기준으로 구분해 물려줄 책을 노끈으로 묶었다. 이제 남은 내 책들. 팔 것과 가져갈 것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기준을 세워야 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 두 번 이상 읽은 책, 아직 안 읽은 책, 제목만으로도 나를 설레게 하는 책을 남기기로 했다. 마지막 기준에서 늘 마음이 왔다 갔다 했지만 될 수 있으면 판다는 마음가짐으로 독하게 책을 나눴다. '제주도에 가면 새로운 관심사가 생길 거야. 많이 팔아야 많이 살 수 있어.' 귀한 재산을 처분하며 나는 계속 주문을 외웠다. 


사야 할 물건을 줄이는 일도 쉽지 않았다. 결혼 11년 차. 이번 기회에 살림을 다 바꾸고 싶었다. 맞벌이의 마지막 순간, 마음 편히 돈을 쓸 수 있는 마지막 찬스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사야 할 물건이 되기도 했고 이미 가진 물건이 되기도 했기에 나는 계속 갈팡질팡했다. 요리하지 않겠다는 남편도 라면은 종종 끓여 먹을 테고, 하이디와 내가 서울에 오면 요리할 일이 있을 것이기에 기본적인 주방 살림은 남겨야 했다. '기본'이 대체 냄비 2개인지 3개인지 마음이 수시로 바뀌었다. 최대한의 소비 대신 최소를 택했다. '자연을 누리러 가는 삶에 환경을 보호해야 해. 미니멀리즘이야.' 이번에는 이 주문을 외워햐 했다. 


미니멀리즘을 다짐하고 다짐해도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 있었다. 먼저 찻잔, 지금까지는 선물 받은 찻잔을 쓰고 있었다. 내 취향이 아닌 꽃무늬 가득한. 집에서 차나 커피를 마실 일이 많지 않아 하이디 방문 선생님 접대용으로 쓰는 정도였기에 취향이 무시돼도 괜찮았다. 유명 브랜드의 찻잔이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이사를 하면 집에서 차나 커피를 마실 일이 늘어날 텐데 내 취향을 맘껏 드러내고 싶었다. 제일 공들인 대상. 아마 인터넷에서 구경 가능한 찻잔은 거의 다 구경한듯했다. 신중하게 고르고 골랐다. 내 취향을 듬뿍 담았다. 심플한 무늬에 투박한 디자인, 아늑한 색상으로. 


포기할 수 없는 두 번째는 노트북이었다. 2년이 갓 넘었지만 멀쩡하게 잘 작동하는 노트북이 있었다. 웹서핑, 사진 편집, 문서 작성 등이 쓰는 기능의 거의 전부였기에 더 나은 사양의 노트북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새로 사야만 했다.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퇴사 후의 삶을 위해 꼭 필요한 도구. 퇴사 선물로 최신형 노트북을 골랐다. 새로운 삶, 새로운 이야기를 새로운 노트북에 담고 싶었다. 


남편이 포기할 수 없는 영역도 있었다. 바로 TV였다. 서울집에서도 TV는 남편 방에 있었다. 하이디를 TV로부터 조금이라도 지키기 위한 의지였고 TV를 잘 보지 않는 나의 요구였다. 나와 하이디가 주 생활자인 제주집에는 TV가 없었으면 했다. 책과 음악이 가득한 집을 꿈꿨다. 하지만 남편은 꼭 TV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행 오듯 쉬러 오는 제주집에 자신의 휴식을 위해 TV는 꼭 있어야 하고, 손님들을 위해서라도 TV는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자주 오지 않을 손님들은 모르겠고, 남편이 제주집에서 잘 쉬고 갔으면 하는 마음에 한발 물러섰다. 작고 싼 TV를 손님방에 두기로 했다. 


드디어 대망의 5월 21일이 됐다. 이삿짐은 거실과 하이디 방에 모두 모여 있었다. 서울에 남을 짐과 제주에 갈 짐이 헷갈려서는 안 됐기에 취한 조치였다. 거실에는 남겨둬야 할 가구들도 섞여 있어 포스트잇으로 한 번 더 구분했다. 분홍색 포스트잇에는 서울, 주황색 포스트잇에는 제주를 써서 붙였다. 


오전 10시, 이삿짐 트럭이 도착했다. 


"정리하느라 고생 좀 하셨겠어요. 덕분에 수월하겠습니다."


이삿짐을 둘러본 직원분의 첫인사. 고마웠다. 내 고생을 알아주는 사람이라면 내 짐들도 고이 옮겨줄 것 같았다. 탄탄한 체격의 한 분과 왜소한 체격의 한 분이 팀을 이뤘다. 오래 손발을 맞춰본 듯했다. 동선을 미리 협의한 것처럼 착착 움직였고, 테트리스를 오래 같이해본 것처럼 탁탁 짐을 쌓아 올렸다. 


베란다로 나가는 유리문과 베란다 창문이 분리됐다. 집이 밖을 향해 뻥 뚫린 것. 뻥 뚫린 집은 사다리를 통해 땅과 연결됐다. 드르륵드르륵 사다리차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소리는 나를 긴장시켰다. 중력을 거스르며 올라오는 소리는 가벼움에 덜컹거려 불안했고 중력을 따라 내려가는 소리는 묵직함에 가속도가 붙어 사고가 날까 불안했다. 물론 이사가 끝날 때까지 내 불안은 그저 불안에만 그쳤을 뿐 어떤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뻥 뚫린 집은 어색했다. 세상을 향해 내 배 속 들여다보라며 입을 벌린 것 같았다. 너무 많이 먹어 부대꼈던 배 속이 점점 가벼워졌다. 배 속이 비워지면 편안해지기 마련인데 오히려 반대였다. 빈자리를 바라보며 사람이 난 자리를 매번 느껴야 하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오후 3시 무렵 제주로 가야 할 짐은 모두 서울집을 빠져나갔다. 휑했다. 뻥 뚫렸던 집에 다시 창문이 채워지자 더 어둡게 느껴졌다. 해도 지고 있었지만 그건 안중에 없고, 활기가 빠져나간 자리로만 보였다. 안방으로 보내 둔 가구들을 다시 제 위치에 가져다 놓았다. 짐이 빠지고 드러난 먼지를 밀고 닦았다. 반짝반짝 윤을 내야 했다. 사람 손 구석구석 닿게 해 온기를 불어넣고 싶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헛헛함을 조금이라도 감추고 싶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남편. 나갈 때와 달라진 모습에 놀란 반응이었다. 이제 나와 하이디가 떠나는 것이 실감 난다며, 몇 개 남기지 않은 하이디의 물건 중 유아 테이블 위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다행히 달라진 집을 오래 느낄 여유가 없었다. 제주도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야 했다. 남겨둔 서울집에 대한 복잡한 마음은 공항으로 가며 옅어졌다. 공항에서는 늘 그렇듯 설렘이 앞서니까. 


여행이 아닌 살러 가는 길. 띠띠띠띠. 제주집 문을 열었다. 깜깜했던 집에 불을 켜며 반짝! 내 마음에도 불이 켜질 것 같았다. 불이 켜지자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더욱 도드라질 뿐이었다. 이 집이 우리를 환영하는 건지 아닌 건지 헷갈렸다. 우리 집이라고 말하기도 어색했다. 우리 집은 두고 온 서울집이고 이곳에서 우리는 손님 같았다. 어수선한 부모의 마음과 달리 하이디는 스케이트를 타며 집을 뱅글뱅글 돌았다. 허전함과 설렘이 교차하는 복잡한 마음의 아이다운 표현일까. 아니면 마냥 해맑은 아이의 개구진 행동일까. 그래도 하이디를 보고 웃으니 좋았다. 다행히 4월 말에서 5월 초 연휴에 미리 가져다 둔 이불 덕분에 찬 바닥 신세는 면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오후 드디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넌 이삿짐이 도착했다. 익숙한 물건들이 차곡차곡 집을 채워가자 실감이 났다. 여행이 아니구나. 내가 이 집에 살러 왔구나. 내가 드디어 제주도로 이사를 왔구나. 이번에는 무려 네 명의 장정이 짐을 날랐다. 남편까지 거드니 비어있던 집은 빠른 속도로 사람 사는 집의 모습을 갖춰갔다. 짐이 빠질 때는 두 명, 짐을 채울 때는 네 명. 빠져나가는 마음은 느리게 채워지는 마음은 빠르게를 바라는 이삿짐센터의 배려라고 생각됐다. 내 말에 따라 위치를 잡고 탁탁 척척 옮겨지는 짐들. "행복한 제주 생활되십시오!" 덕담과 함께 이사는 마무리됐다. 물론 짐이 다 집 안으로 들어왔을 뿐 정리라는 큰 산이 남아 있었다. 


금요일 오후 제주 이사를 마치고 남편은 자기가 머무는 토요일과 일요일 서둘러 정리를 하자고 했다. 혼자 하면 힘들다고. 하지만 혼자 하고 싶은 영역이 많았다. 책 정리. 내 방식대로 분류하고 내 방식대로 꽂고 싶었다. 주방 살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진정한 주부로 거듭날 시간. 내가 쓰기 편하게 정리해야 했다. 드레스룸도 다르지 않았다. 어차피 앞으로 시간 많은 몸. 정리는 혼자 하겠다고 선언하고 화장지, 세제, 청소도구 등 미처 챙기지 못한 물건을 사러 가자고 했다. 꼼꼼하게 메모해서 대형마트를 다녀왔음에도 또다시 가야 했다. 사도 사도 사야 하는 마법에 걸리 것 같았다. 선언하지 않았어도 됐었다. 정리는 할 시간이 없었다. 마트 가고 청소하고 마트 가고 청소하고. 제주도에서 첫 주말이 분주하게 흘러갔다. 


'제주 이주 프로젝트'의 완결. 익숙한 살림에 새 가구들이 섞여서일까. 가구 배치가 달라져서일까. 거실 베란다 너머로 돌담이 보이기 때문일까. 제주집은 우리 집 같지가 않았다. 여전히 낯설었다. 제주 한 달 살이를 할 때처럼 꼭 긴 여행을 떠나온 것 같았다. 괜찮았다. 어차피 자연 속에서 일상 여행자로 사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이제 목표를 실현하며 행복할 일만 남았다. 제주도에서 사는 나와 하이디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왔다 갔다 해야 할 남편까지도. '이 집에 혼자 남으면 너무 우울할 것 같아.' 제주 이주를 고민하며 남편이 했던 말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가 서울에서 우울하지 않도록 좋은 순간, 행복한 순간, 더러는 속상한 순간을 쉼 없이 나누며 떨어져 있어도 일상을 함께 보내는 그런 가족이 될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다시 시작! 이번에는 '주말부부와 외동딸의 제주 행복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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