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속 15주년 퇴사를 결정하다

by 여유수집가

어느 심리상담센터 상담실, 50여 분이 지나 문이 열렸다.


"어머! 서서 기다린 거야?"


나를 앞서 상담실을 나선 상담 선생님의 놀란 목소리. 옆으로 비켜서서 앞을 보니 딸 하이디가 서 있다. 벌게진 얼굴로 손톱을 물어뜯다 말고.


"얼마나 서 있었어?"


평소 마음껏 읽지 못하는 학습만화가 많아 신난다며, 내가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동안 잘 기다릴 수 있다고 의기양양했었다. 손을 들어 파이팅까지 보여준 하이디의 모습에 마음 편하게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뒤였다.


"... 40분 정도요."


선생님을 앞질러 하이디에게로 갔다. 와락 나를 끌어안더니 서러운 울음을 터뜨린다. 하이디의 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이 말했다. 대부분 아이는 문을 열고 들어온다고. 노크라도 한다고. 가만히 서서 기다린 아이는 처음 본다고. 낯선 공간에 홀로 남겨진 불안함, 선생님과 엄마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기다려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으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엉거주춤 40여 분을 문 앞에서 견딘 것은.


심리상담센터를 찾은 것은 하이디의 손톱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연필을 깨물더니 손톱까지 깨물기 시작했다. 연필 뒤꼭지만 깨물 때는 그러지 말라고 당부하며 플라스틱 연필 뚜껑을 씌워줬는데 손톱까지 깨물기 시작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대체 왜 자꾸 깨무는 것일까. 깨무는 원인은 불안에 있다는데 무엇이 하이디를 불안하게 하는 것일까. 알 수 없어 애타는 마음은 괜한 화풀이로 표출돼 하이디를 향했다. 대체 왜 그러냐고. 그만 좀 깨물라고. 타이르거나 화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무엇을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대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방향이라도 잡기 위해 하이디는 풀 배터리(full battrey) 검사를 받았다. 인지, 정서, 지각, 사고 등을 종합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검사로 정서적 특징, 행동 특성, 대인관계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이디의 불안은 결핍에 있었다. 워커홀릭 엄마로 인해 늘 엄마와의 시간이 부족했던 하이디는 그 아쉬웠던 시간을 모두 생생하게 기억하고 쌓아두며 마음에 빈틈을 키워갔다. 짧게 만나는 엄마에게는 늘 인정을 바랐다. 그 인정을 받고자 40분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기다린 것이었다.


KakaoTalk_20200830_172656234_01.jpg 야근하던 어떤 날

주 3일은 야근을 하는 엄마였다. 야근도 야근 나름. 10시에 사무실을 나서면 그나마 다행. 12시를 넘겨 나서는 날이 잦았다. 주 52시간이 시행되며 퇴근 시간은 빨라졌지만 이번에는 줄지 않은 업무량이 문제였다. 짧은 시간에 높은 성과를 내야 했기에 모든 에너지는 회사에서 소진됐다. 빈털터리가 되어 집에 돌아온 나는 소파에 널브러졌다. 하이디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야근할 때와 별다른 것이 없었다. 오히려 눈앞에 있으면서 하이디의 마음에 아쉬움을 더 크게 만드는 엄마였다. 아빠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야근이 많은 엄마를 대신해 평일 주 양육자는 아빠였지만 그 역시 직장인. 정시 퇴근으로 돌아온 집에서도 업무 전화는 멈추지 않았다. 엄마도 아빠도 하이디에게 내어줄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가 회사에 있는 동안 학원 뺑뺑이 대신 학교에 최대한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하교 시간이 상대적으로 늦은 사립초등학교를 보냈다. 하교 후에는 집에서 시터 이모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 음악을 좋아하기에 집으로 선생님을 모셔 피아노 레슨과 바이올린 레슨을 받게 했다. 하이디가 힘들지 않기를 바라며 한 사람의 월급 대부분을 하이디에게 쓰고 있었다.


돈을 버느라 부모는 시간이 없고, 그 돈을 제일 많이 쓰는 하이디는 부모가 없어서 결핍을 느끼고. 잘못된 연결고리를 끊어야 했다. 손톱 깨물기 외에 드러나는 큰 문제가 있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조급했다. 지금 생긴 틈을 채우지 못한다면 나중에 손 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순수하고 예쁜 하이디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미안함. 성취가 주는 행복보다 하이디가 주는 행복이 더 소중함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는 자책이 뒤섞였다.


남편이든 나든 둘 중에 하나는 하이디에게 시간을 내어주어야 했다. 돈의 효율 대신 시간의 가치가 우선되어야 했다. 한 사람의 월급이 고스란히 하이디에게 가고 있으니 한 사람이 그만두는 것은 가정 경제에 큰 무리가 되지는 않았다. 하이디의 결핍 충족을 위해 필요한 선택이었다. 처음부터 한 사람의 퇴사를 고민한 것은 아니다. 업무량을 줄여 에너지를 확보해 저녁 시간만이라도 충분히 하이디에게 내어주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다짐이었다. 일정 업무량을 소화하고 있는 직원의 일을 줄여줄 상사는 없을 테니. 시간을 돈으로 사는 자본주의 시대에 맞지 않는 계산법이니까.


우리 부부는 선택해야 했다. 남편이 퇴사하느냐, 내가 퇴사하느냐. 하이디가 더 결핍을 느끼는 대상은 엄마. 여자 아이다 보니 감정을 살펴줘야 하는 일이 잦은데 이것에 더 능한 것도 엄마. 늘 더 피곤해하는 것도 엄마. 멀리 내다봤을 때 고용 안정성이 더 낮은 직장에 다니는 것도 엄마. 게다가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또 다른 꿈이 있는 것도 엄마였다. 모든 부등식에서 큰 쪽은 엄마였기에 나의 퇴사를 선택했다. 근속 15주년이었다.


KakaoTalk_20200830_163257686.jpg 제주 이주 후 하이디와 함께 하는 하굣길

단지 퇴사만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퇴사 후 제주 이주까지 결정했다. 하이디의 결핍을 채워주기 위해 내게도 아쉬움이 없어야 했다. 15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는데 하이디 탓이 되면 안 됐다. 엄마가 앞서느라 '나 자신'이 뒤로 밀려나 억울해지면 안 됐다. 제주라면 아쉽지 않을 것 같았다. 꼭 한 번은 살고 싶었던 제주에서 퇴사 후의 삶을 시작한다면 15년간 쌓아온 성취를 되돌아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살고 싶은 곳에서 쓰고 싶은 글을 쓰며 사는 삶. 내 꿈을 이뤄가며 하이디의 마음을 키우는 삶. 무엇보다 자연 속에서 넓어지고 품어주는 사람이 되어가는 삶. 퇴사의 시작은 하이디의 결핍을 채워주기 위함이었지만 그 끝은 내가 바라는 삶을 살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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